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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3-09 (월) 04: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35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눅 8:16-21)

우리의 사회생활, 대인관계에서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 듣거나, 건성으로 듣거나, 다 듣지 못하거나 해서 오해를 하거나 불이익을 당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듣는 것도 기술(listening skill)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은 그의 좋은 친구가 됩니다. 사람을 얻습니다. 좋은 선생, 좋은 학생, 좋은 부모, 좋은 자녀, 좋은 남편과 아내가 됩니다. 서로에게 유익합니다. 그러나 잘 듣지 않는 사람, 들을 줄 모르는 사람, 듣는 기술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줄 모르고, 자기를 잘 들어달라고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성경도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고 하였고,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 1:19)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인관계에 있어서 잘 듣는 것은 일시적인 유익을 가져다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은 영원한 유익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잘 들으라고 수없이 강조하셨습니다. “내 백성이여 들으라 내가 네게 증거하리라 이스라엘이여 내게 듣기를 원하노라”(시 81:8)고 하셨고, 하나님께서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막 9:7)고 하셨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말씀을 듣지 않을 때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렘 13:10).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정말 그들은 하나님을 듣지 않아서 망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은 착하고 좋은 마음, 씨 뿌리는 목적에 부합하고 선하고 유익한 마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눅 8:4-15). 강퍅한 마음이나, 얄팍한 마음이나, 세상에 얽매인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착하고 좋은 마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도 사실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길 가에 떨어진 씨나, 바위 위에 떨어진 씨나,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씨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나 다 하나님의 말씀인 씨는 받기 때문입니다. 모두 다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어떤 마음으로 반응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는 것은 어떻게 듣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18절상)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느냐, 청종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다 귀는 있어서 들어도 안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종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 11:15; 13:9; 눅 8:8; 14:35; 계 2:7, 11, 29; 3:6, 13, 22; 13:9) 라고 하였습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문제는 마음가짐입니다. 잘 들으려는 마음이나 생각이 없어서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도 행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약 1:22). 예수님께서는 지금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서 잘 듣는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짧은 비유를 이야기 하십니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16절)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밤에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곧 침대 아래 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경’ 즉 받침대(lamp stand) 위에 놓고 방에 빛이 비추어지게 합니다. 즉 등불을 켜는 목적은 어두운 방을 밝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에게나 잘 듣는 자에게 알게 하시고 믿도록 주신 것이지, 감추어 놓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면 잘 듣고 깨달아 믿게 됩니다. 잘 들으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듣는 사람은 주위에 빛을 비추듯이 말씀을, 믿음을 잘 전합니다.
그래서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7절)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다 알려지고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의 말씀은 신약에서 거의 다 성취되었고, 앞으로 주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사도들을 통하여 다 드러나고 알려지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성도들로 말미암아 진리의 말씀은 드러나고 알려지고 나타났으며, 앞으로도 드러나고 알려지고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마태는 이 비유를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빛이기에 등경 위에 두어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고 했습니다(마 5:14-15). 그러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세상에서 선한 행실을 하면서 살기에, 사람들이 보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되어 믿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18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들어야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보니 구원을 받지 못하더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속고 있더라는 말씀입니다.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말씀입니다. 구원 받은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지 않은 결과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 가졌던 사람과 달리 한 달란트 가진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나중에 그 한 달란트를 빼앗긴 것처럼 말입니다(마 25:14-30). 예수님께서 한 달란트 가졌던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30절)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열매가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또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남겨서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셨듯이, 좋은 땅에 뿌린 씨처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가 있습니다. 상을 주십니다. 왜냐하면, 잘 듣는 사람은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아 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8장 2-3절에 등장한 여인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수잔나와 같이 예수님에게 은혜를 받고, 예수님을 따르며 모든 것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던 여인들처럼 말입니다. 즉, 잘 듣는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님을 보려고 왔지만 무리들 때문에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예기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정말 예수님의 가족인지 설명하십니다.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20-21절)고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었기에, 여기 동생들은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배다른 자녀들을 말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너희가 지금까지 내 이야기를 들었느냐? 가족관계가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나의 사명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게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나는 준비된 자들,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잘 듣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가르친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 가족을, 새 공동체를 세운다. 진정한 내 가족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는,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 12:49-50)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혈연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하나님 나라의 보편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출생 신분이나 자라난 환경이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한번은 예수님께서 거짓 선지자들과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가리켜, 말로만 ‘주여’라고 외치며 삶에 믿음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시면서(마 7:15-23), 구원 받는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을 집 짓는 건축가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 7:24-27). 해답은 집의 기초를 반석 위에 짓느냐, 모래 위에 짓느냐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자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자기 삶의 기초를 세우는 자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집 짓는 두 사람이 똑 같이 말씀을 듣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다 듣기는 듣습니다. 집을 건축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여 무너질 집을 짓고자 하겠습니까? 처음 의도는 자신이 살아도 괜찮은 집을 짓는 것이지요. 집을 짓는 주거 환경이나 장소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둘 다 나중에 폭풍을 같이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 두 사람의 삶에 겉으로 드러난 환경은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보다 나은 환경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마을에서, 어쩌면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같은 설교를 듣고, 교제하며, 세상에서 고생도 비슷하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차이가 났습니까?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순종하여 기초를 반석 위에 놓았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여 기초를 모래 위에 놓았던 것입니다.
즉, 참 성도, 참 제자의 표시는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고 마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들은 후 믿고 행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3-25)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을 안다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금방 잊어버리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돌 위에나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처럼 잠깐 주님의 은혜를 맛보며, 새 삶을 맛볼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금방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4-6)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5-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그 진리를 듣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그 진리 안에 살지 않는다면 자신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의지로 짓는 것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만족, 자기 의지로 집을 짓는 사람을 진리를 받아 들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사는 삶입니다. 변화된 삶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그 증거가 나타나는 변화 말입니다. 들은 말씀에 순종하려는 몸부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습니까? 잘 듣고 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냅니까? 건성으로 듣습니까? 잘 듣고 마음에 새기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받은 구원이 확실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상이 있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잘 듣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씀을 드러내고 사는 빛을 비추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권속, 가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 66권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 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는,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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