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08,780
오늘방문 : 3361
어제방문 : 3594
전체글등록 : 3,865
오늘글등록 : 1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3-24 (목) 05:4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607    
의인의 믿음의 기도 (약 5:13-20)
야고보 사도는 바로 앞 문단(5:7-12)에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이 확실하니, 이 소망을 붙들고 참고 인내하라고 합니다.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야고보서를 끝맺으면서 다시 기도의 주제로 말씀합니다. 맨 처음 서론에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고 하였습니다(1:5).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고 구하라고 하였습니다(1:6-7). 즉, 야고보서의 시작과 끝이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우선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13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전체 내용의 요약입니다. 여기 “고난”은 일상적으로 찾아오는 어려움들 때문에 생기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고통을 말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동안 계속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급하게 도움을 요청한 후에 기도를 멈추지 말고 극복할 때까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고 하였습니다. 환난이 끝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고 “즐거워하는” 것은 기분이 좋은 상태,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을 멀리할 수 있기에, 자기를 영화롭게 할 수 있기에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즐거움 속에서 모든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찬송하라(ya,llw, sing praises)”는 단어를 사도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라고 할 때에도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감사하면서 그 표현을 노래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찌니라”(14절)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은 교회의 장로들, 곧 목사 혹은 장로에게 기도를 요청하라는 말씀입니다. 병든 자들은 소외 당하기 쉽습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사실 요청하기 전에 찾아가 주어야 합니다.
교인들을 돌보며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아픈 자들을 위하여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도 받기를 거절하는 자가 아니라면, 아픈 자를 위하여 옆에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안수해주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도록 해야 합니다. 이 기름은 문자적으로 감람유(Olive Oil)를 말합니다. 물론 당시에 감람유가 질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유대 땅에 파송하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을 때, “저희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 6:12-13)고 하였습니다. 여기 기름도 마찬가지로 감람유를 말합니다. 감람유를 사용하여서 성령님의 역사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성령님의 선물인 일반은총을 사용하셔서 병을 고치십니다. 의술이 발달하고, 좋은 약이 발명되어서 병을 고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의술의 도움이 없이 성령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치유하기도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어떤 방법이든지 다 동원하여서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 바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든지, 병원에서 기도하면서 치료받는 중에 낫게 되든지 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신비한 역사를 바라며 ‘의사나 약사의 도움을 거절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고 예기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어리석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15절)고 한 것입니다. 주님의 뜻이면 분명히 고쳐 주시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그의 질병이 죄 때문에 온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병이 다 죄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기에, “혹시” 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이 들면 그 병이 죄 때문에 온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에 죄 때문이라면 본인이 회개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십자가의 공로로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으시기 때문에 죄가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서 용서를 받게 되면 저절로 치유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16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기 때문에 서로에게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합니다. 특히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범한 경우를 말합니다. 상대방이 용서해주던 용서하지 않던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들으시고 계시니까요.
한편, 이 말씀이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고해성사를 하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신자가 신부를 찾아가서 고백하라는 뜻이 아니라, 신자들 사이에서 잘못한 것을 서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죄 때문에 찾아온 질병이라면 죄 사함을 위하여 서로 중보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아무에게나 쉽게 죄를 고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고백은 오히려 더 큰 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중보기도에 헌신이 되고 비밀을 지켜줄 만한 신뢰가 가는 분들에게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한 것입니다. 정말 효과적인 기도는 의로운 사람의 기도입니다. 말로만 떠드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순종의 삶을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보여주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그런 분들의 기도는 끈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려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오. 의인의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낫게 한다고 약속하셨지만, 기도했는데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기도해서 당장 낫지 않는다고 해서 기도가 소용이 없다라든가 하나님이 치유하지 못하신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반드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때에 고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만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마지막으로 야고보 사도는 의인의 믿음의 기도 응답의 예로 엘리야 선지자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17절상)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도 우리와 똑 같은 인간으로 약한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혼자서 바알 선지자 450명을 이겨 놓고는,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명령한 말을 듣고는 두려워서 도망하다가 로뎀 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어쩌면 이 모습이 엘리야의 본래 모습으로 그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즉, 엘리야가 특별한 사람이어서 놀라운 기도 응답을 받았던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보통 사람이다, 소심한 편이며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수록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강한 용사가 됩니다.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17절하)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왜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은 여호와가 아니라 바알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우상 바알을 믿는 신앙에서 여호와 신앙으로 돌이키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래서 비를 내리게 하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비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도 물에 젖은 제단에 불이 내리게 하는 신도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나타내도록 기도했더니 불이 내렸고, 다시 비가 오도록 간절히,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비가 내렸습니다. 믿으십니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냥 내가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그것이 더 실제적이고 빠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그러나 의인의 기도는, 믿음의 간구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렸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서 15년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사 38:3)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었고, 그의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습니다(사 38:5).
또한, 예수님께서도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 주시면서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앞서 언급하였듯이 기도 응답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줄 믿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엘리야도 갈멜산 꼭대기에서 다시 비가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는데, 매일 사환을 시켜 바다 끝을 보라고 일곱 번씩이나 작은 구름이라도 보이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일곱 숫자가 상징하듯이 계속 기다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면서도 낙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성급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신뢰해야 합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더 나은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마치 아이들이 원하는 것 달라고 투정부리듯이 기도하고 금방 응답이 없다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지 못한다면, 응답이 와도 그 사람은 열매를 얻지 못하고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강요하는 기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에서 배운 것처럼,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셔도 그대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하는 태도가 의인의 믿음의 기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본문 끝 19-20절은 서신의 추신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영적으로 병이 들어 사탄 마귀에게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들을 돌아서게 하는 자는 마치 죄인을 돌이키어 그 영혼이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이 되어 허다한 죄를 다 덮게 된다고 합니다. 쉽지 않지요. 교회를 다니다가 실족하여 하나님에게서, 진리의 말씀에게서 멀리 떠난 사람들을 돌아서게 한다면 잃어버린 영혼을 전도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아마 당시에 그렇게 배교하는 자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 믿을 때 진실로 구원을 받았다면 언젠가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귀에게 미혹되어 교회를 떠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들을 돌아오게 하는 자가 복있는 자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기뻐하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면 기도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대신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허락하신 말씀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입니다. 오늘도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정말 기도 많이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힘들 때에도 기쁠 때에도 기도하십시오. 찬송하십시오. 기도와 찬양이 우리의 마음에, 입술에 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교만이나 고집, 편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소멸시키지 마시고, 오히려 성령의 역사가 기도와 찬양을 통해 우리 교회와 가정들 위에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찬양하지 않으면 악령이 역사합니다. 거짓과 분열의 영이 교회와 가정을 깨뜨립니다. 병든 자를 위한 기도뿐만 아니라 전도와 선교하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뜨거운 믿음의 기도와 찬양이 넘쳐서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응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69 주일설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1-12) 한태일 목사 2024-02-25 318
1368 주일설교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막 1:40-45) 한태일 목사 2024-02-18 421
1367 수요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 (빌 2:5-11) 한태일 목사 2024-02-15 170
1366 주일설교 예수님의 마음은 (막 1:29-39) 관리자 2024-02-12 307
1365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세와 능력 (막 1:21-28) 한태일 목사 2024-02-04 397
1364 수요설교 하나됨을 지켜라 (빌 2:1-4) 한태일 목사 2024-02-01 128
1363 주일설교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막 1:14-20) 한태일 목사 2024-01-28 144
1362 주일설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 (막 1:9-13) 한태일 목사 2024-01-21 164
1361 수요설교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 1:22-30) 한태일 목사 2024-01-18 124
1360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과 준비 (막 1:1-8) 한태일 목사 2024-01-14 130
1359 주일설교 끝까지 신실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자 (딤후 4:6-8) 한태일 목사 2024-01-07 176
1358 수요설교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빌 1:19-21) 한태일 목사 2024-01-04 162
1357 송구영신예배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복을 받게 하소서 (삼하 7:25-29) 한태일 목사 2024-01-02 176
1356 주일설교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 (빌 3:12-14) 관리자 2024-01-01 161
1355 주일설교 메시아의 탄생 (미 5:2-6) 한태일 목사 2023-12-24 153
1354 수요설교 예언된 평화의 왕이 오심 (사 11:1-9) 한태일 목사 2023-12-21 144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