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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4-03 (일) 01:1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32    
너희 말과 같이 (눅 22:63-71)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 유명한 사람들의 재판에 무척 관심을 갖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7년 3월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재판이 있었고, 미국의 경우 1999년 2월에 있었던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 재판, 그 전에 닉슨 대통령이 관련되었던 Watergate 호텔 도청 사건으로 인하여 여러 대통령 보좌관들이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그러한 재판들이 이 시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그들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상 주후 33년경에 있었던, 예수님이 유대 법정과 로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사건만큼 전 인류에 도전이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설명한대로 예수님께서는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고, 안나 대제사장과 가야바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유대 공회인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재판을 받으시며, 로마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으시고, 헤롯 안디바 분봉왕 앞에서도 재판을 받고 난 후 빌라도 총독에게 다시 끌려가 마지막 재판을 받은 후 결국 십자가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지난 주일 베드로의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건의 드라마에 이어 예수님이 가야바 대제사장 집 뜰에서, 그리고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불법적이며, 불의한 종교재판을 받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사실 오늘날 서구 사회의 재판은 고대 이스라엘의 재판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한 예로 신명기에 나타난 구약 재판법의 본질은 공의의 법 시행으로 억울한 사람을 구하는, 생명을 구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각 성에서 네 지파를 따라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이요 그들은 공의로 재판할 것이니라 너는 굽게 판단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얻으리라”(신 16:18-20)고 하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공정한 법을 시행하는 기관으로 당시 산헤드린 공회가 존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그 공회”(66절)가 바로 이 산헤드린 공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국회처럼 산헤드린 공회는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로 70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제사장이 의장 역할로 총 71명이 가부 투표를 통하여 판결을 내리는데, 가부 동수가 될 경우 대제사장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려면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또한 뇌물을 받거나, 혹은 복수심에서 거짓 증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만약 고의적으로 거짓 증거를 하면 그 벌을 대신 받도록 하였습니다(신 19:16-19).
그런데 오늘 드라마에서 가야바 대제사장을 위시한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범죄자로 취급하여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재판을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2절).
누가는 우선 가야바 대제사장 집 뜰에서 심문을 받고 난 후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우고 물어 가로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63-66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데 죄수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공회는 죄수가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하는데,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괴롭힙니다. 희롱하고 때립니다. 아이들이 노는 것 같이,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때린 후에 친 자가 누구냐 선지자이면 알아 맞추어 보라고 하면서 어떤 사람은 주먹으로,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비아냥대면서 정말 메시아(그리스도)라면 선지자 노릇을 해보라고 합니다. 참 그리스도라면 지금 너를 치고 있는 자들은 누구라는 말이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조롱하고 욕을 합니다. 여기 “욕을 한다”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며 모욕, 모독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마 26:67-68) 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유대 사회에서 누구 얼굴에 침을 뱉는다는 것은 가장 극단적인 모욕입니다. 인격 모독입니다. 한 인격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 성 바깥 기드론 계곡에 있는 압살롬의 묘비에는 3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고 가면서 침을 뱉는다고 합니다. 그들이 존경하는 다윗 왕의 아들이지만 아버지를 모반하여 죽이려 했던 행위를 아직까지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최악의 인격 모독인,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에 침 뱉음을 예수님께서 당하신 것입니다.
사실 그 때 가야바 대제사장은 예수님에게 뒤집어 씌울 거짓 증거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짓 증인들이 그 자리에 많이 왔으나 신빙성이 있는 증거를 얻지 못했다고 마태는 말하였습니다(마 26:60). 그러자 “대제사장이 일어서서 예수께 묻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뇨”(마 26:62)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계속 잠잠하셨습니다. 거짓 증인들의 모욕적인 거짓말 앞에 진실을 말하거나 변호를 하지 않으시고 잠잠하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사 53:7상) 라는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모습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나님께 싫어 버린 바 되어 버림을 받는 그것이 곧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임을 아셨기에 대꾸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말입니다.
 
어느덧 날이 밝았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산헤드린 공회에 끌고가 계속 심문을 합니다. 첫 심문이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67절상) 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가야바가 유대법으로는 최고의 증언을 할 수밖에 없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를 하게 하면서 증언을 요구합니다(마 26:63).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참으로 똑똑한 질문이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그런 선언을 들어왔던 가야바인지라 분명히 이 질문에 주님께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을 알고 묻는 것입니다. 다른 거짓 증언들에는 잠잠하신 예수님이지만, 참 증언에 대하여서는 ‘그렇다’ 라고 할 줄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말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67절하-68절)고 하시면서, 진정한 메시아로서 구약성경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시 110:1; 참고 단 7:13-14)고 예언되어진 말씀을 성취하실 것을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69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후 부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고 하면서, 재림하실 것까지 언급을 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그러자 다 한 목소리로 “그러면 (정말)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70절상) 물으니, 예수님께서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70절하)고 하십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Umei/j le,gete ov,ti evgw, eivmi, You say that I am) 곧, ‘너희는 내가 그라고 말한다’ 입니다. 예수님이 말해 보아야 믿지도 않을 사람들임을 알기에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들의 말을 인용하여 부정하지 않음으로 그 말이 진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저희가 가로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71절)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마 26:65)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의분에, 큰 슬픔에 옷을 찢은 것입니다. 참람한 말이란 자신들은 믿지 못하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아(그리스도) 라고 하는 자체가 그들에게는 신성모독죄인 것입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산헤드린 공회의 의원들이라면 누구보다도 율법을, 구약성경을 잘 아는 자들이라, 그 예수님의 주장이 옳고 그른지 알고 있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판단했으면 바른 재판을 할 수 있었다 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성경에 의하면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하였으며,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미 5:2; 눅 2:1-7). 또, 메시아는 처녀의 몸에서 잉태된다고 하였고,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 때에는 처녀였습니다(사 7:14; 마 1:24-25).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였고, 예수님은 진실로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삼상 7:12,16; 사 11:1-2; 마 1:1-16). 또한 메시아는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엘리야와 같은 자가 먼저 와서 그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하였듯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 먼저 와서 그 길을 예비하였습니다(말 3:1; 4:5; 마 17:12-13; 요 1:19-23). 그리고 메시아는 위대한 큰 일들을 많이 행할 것이라고 하였듯이 예수님께서는 예언되어진 수많은 일들을 행하였습니다(사 61:1-2; 마 11:1-6). 또 메시아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온다고 하였는데, 정말 예수님은 바로 며칠 전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슥 9:9; 마 21:1-11). 또 메시아는 가까운 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듯이 가롯 유다로부터 배신을 당하였습니다(시 41:9; 마 26:14-15). 그리고 또한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메시아는 그 백성들로부터 버림을 받고 온갖 모욕과 멸시를 받는다고 하였듯이, 예수님이 그렇게 당하였습니다(사 53:2-3). 그런 메시아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도 예언되어진 특이한 인물이었습니다(시 2:7; 사 9:6). 구약성경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어 이 땅에 온다고 하였습니다(사 7:14).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이라면 더 잘 알고 예수님을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았을 텐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마음에 정해 놓은 상태에서, 어두움 가운데서 행하였던 것입니다. 빛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믿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날도 그러한 산헤드린 공회의 지도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성경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메시아(그리스도)라고 선포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거부합니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희롱하며 때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려고 사랑하는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없이도 아쉬운 것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보십시오. 하나님 없이도 자신만만하게 살아가는 것은 곧 예수님을 부당하게 대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려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는데도, 그들은 그런 하나님의 사랑에 아랑곳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한 가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불법적으로, 불의한 재판을 하여 신성모독죄로 선고하고 사형 언도를 하였지만, 예언대로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때가 되어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시면 그 때는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공정하게 재판을,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못 판단하고 무시하고 조롱하지만, 그 날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잘못 판단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아니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십니까? 가야바가 살아계신 하나님께 맹세하여 물었던, 예수님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그리스도) 라는 물음에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고 응답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정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 곧 그리스도입니다’ 라고 진실로 응답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재판은 이미 2000여년 전에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매일 재판 중에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하시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사십니까?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하고, 무시하고 사시지는 않습니까? 주먹으로 치며 손바닥으로 때리고 사시지는 않습니까? 영적으로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반드시 그 분을 부당하게 대접하거나 잘못 섬기게 합니다.
아니면 진실로 예수님을 여러분 삶의 구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살며, 나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대로 사십니까? 그 때에 그렇게 조롱과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입을 열지 않으셨던 까닭이 우리의 죄였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크신 은혜인 줄 아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현재적인 경험이 없이는 누구도 그 분에게 매였다고, 종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매순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도는 그리스도에게 사로 잡혀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믿음 때문에 모든 수치와 조롱을, 핍박을 참아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의 자녀임을 귀하게 여기고, 당당하게 행동합니다.
그렇게 살아감으로 매일 매일의 영적 재판에서 사탄에게 고소나 정죄 당하지 않고, 아니 우리의 신앙 양심에 고소당하지 않는 우리 가든교회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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