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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5-19 (목) 05:4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32    
교회를 사랑하십니까? (엡 2:11-22)
고 하영조 목사님께서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에는 두 가지 꿈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십자가를 지는 꿈이며, 다른 하나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공감합니다. 왜냐하면 아시다시피 예수님 생애 전체는 십자가로 초점이 맞추어지기 때문에 위기나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개의치 않으시고, 포기나 주저함이 없이 십자가의 길을 계속 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만큼 예수님에게 소중한 꿈이 있었는데 바로 교회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교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교회를 세우셔야만 했는가 하면, 십자가의 복음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전하는 유일한 실체로서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것은 교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교회 없는 십자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선교를 했지만 교회를 세우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선교한 결과로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가 세워진다면 그것은 그 선교지에 주님의 구원역사를 펼쳐가며, 사회와 문화를 개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교회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속에 존재하였습니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구속역사는 세계 역사 속에서 교회를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세계 역사의 중심입니다. 그 구속 역사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래서 세계 역사도 BC 와 AD 로 나뉘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 역사 속에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약에도 번제단, 성막, 성전 등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드디어 신약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기초가 된 신약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라는 말씀을 들으신 후에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하)고 하였습니다. 음부의 권세, 사망의 세력을 이기는 승리의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는 천국의 열쇠 곧 성령과 말씀의 권세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마 16:19). 이렇게 신약시대의 교회는 예수님 자신 스스로 흘린 십자가의 피와 부활에 기초하고 세웠습니다. 그 피와 부활을 믿는 신자들의 신앙고백에 의하여 세워졌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죽음을 이기는 생명의 공동체요, 성령과 말씀의 권위로 역사하는 권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니라”(엡 1:22-23)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통치하시고, 교회를 주장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교회를 충만하게 하시고, 교회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신다고 합니다. 교회가 만물(온 세상)을 충만케 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으로 충만케 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사탄과 자연을 그 발 앞에 복종시키셨습니다(엡 1:20-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꿈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 역사의, 현실의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진정한 역사의 주체는 세상의 어떤 가치가 아닌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교회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대안이요,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픔, 슬픔, 고통에 대한 해답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본문 문맥을 살펴보면, 사도 바울은 2장 1-10절에서 에베소교회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전과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로 구원받은 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이 얼마나 다르며,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하여 그 가운데 행하도록 은혜의 선물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1절 이하에서는 아마도 에베소교회 내에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였던 것을 보고, 저들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충분히 그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만, 선택받은 유대 그리스도인(Jewish Christian)과 이방인 그리스도인(Gentile Christian)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저들의 과거 형편과 현재의 상태가 얼마나 대조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변화를 받은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임을 말씀하십니다.
11-12절에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라고 하셨습니다. 즉 과거에 저들은 사실 가진 것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유대인들과 어울릴 수 없는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 하여 마치 하나님께로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취급받아 모욕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축복에서 벗어나 있던 이방인이요, 그리스도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언약이 해당되지 않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전혀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도 모르던,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에베소 지방에 유행하던 아데미 여신 혹은 다이애나 여신 등 온갖 우상신을 섬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 옛 사람,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교회 밖에 있던 모습이 아닙니까?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우리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 때문에 죄 문제가 해결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가깝게 되었고(13절), 교회 안에서 새 사람이 된 모든 자들이 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경배하고 자랑하게 된 것입니다. 고난의 십자가가 화평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로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케 되어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14-16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이 구절들에서 중요한 단어는 "화평" 혹은 "화목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는 "평안"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분열과 미움, 싸움과 분쟁이 왜 생기는 줄 아십니까? 이 세상의 모든 시비와 불행, 슬픔과 고통이 왜 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특성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바로 교만 때문입니다. 태초의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고 싶은 마음, 질투, 시기심이 모두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교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것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교만으로 말미암은 욕심입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가지려고 애씁니다. 서로 더 가지려고 애쓰는 욕망 때문에 필연적으로 분쟁이, 미움이 싹트는 것입니다.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높은 자리를 쟁취하려는 열망, 영웅이 되어 보려는 공명심, 유명해지려는 야망 등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고용인과 고용주와의 관계에서나, 국가와 국가와의 관계에서나, 아니 심지어 한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나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교회 안에서까지 이러한 욕심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주도권 쟁탈이지요.
교만은 계속해서 더 열심히 벌어라,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라고 우리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지식의 교만도 있습니다. 당시 헬라인들은 그들 스스로가 매우 지적이고 뛰어난 철학자들을 낸 민족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며 너희가 아는 게 무엇이 있느냐는 식으로 지혜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헬라인과 야만인, 지혜로운 사람과 무식한 사람을 갈라 놓았습니다. 그럼으로 해서 갈등과 억압과 싸움이 생겨났습니다. 거기에 경쟁이 있고 억압과 싸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만한 것이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온 박사가, 돈이 많은 부자가, 권력자가 평화를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하나되게 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물리적으로 연합하라고 해서 진정한 연합이 이루어져 화평해 집니까? 이 세상의 물질이 여러분의 가정에 평안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참된 평화가, 평안이 없습니다. 이 모든 교만의 해결책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 뿐입니다. 십자가가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인 죄를 이기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에 내 자신의 자아를 함께 못박을 때에, 죽을 때에 평화가 찾아오고,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떠나서 이 세상의 모든 분쟁과 시기, 다툼, 고통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가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합니까?

우선,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줍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자신을 숨기려고 합니다. 늘 문제가 생기면 남을 비난합니다.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러나 고난의 십자가는 여러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며 인간을 겸손하게 합니다. 즉 십자가는 우리에게 '네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네 자신은 언제나 실패자이니라' 고 하십니다. 우리가 완전한 실패자, 죄인이기에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지신 예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교만하였던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 순간 그는 철저히 낮아졌습니다. 얼마나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교만하였던 생각들을 떨쳐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곤고한 인간임을 자각하게 했습니다. 그를 겸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참된 것을 보여줍니다. 십자가는 어느 한 쪽을 편드는, 편애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 똑같이 취급합니다. 이유는 누구나 다 완전한 실패자,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이 먼저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낮아지지 않는 한 십자가는 전혀 쓸모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지, 나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헛된 것입니다.
어떤 민족이든지, 부자든지 가난한 자든지, 무식한 자든지 유식한 자든지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연약한 죄인임을 보여줍니다. 십자가 앞에서 다 동등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으로서 다른 이방인들과 같이 실패하여 놓고는 무슨 자랑할 것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가지고서도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을 가진 것이 무슨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자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똑똑하여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마음에는 번민과 고통이 가득차 있고, 시기 질투와 미움으로 살아가면서 무슨 자랑할 것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빌 3:7-9) 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다면 자신은 낙오자요 철저한 죄인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를 받은 것이 바로 15절에 새롭게 창조된 새(kaino,j)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18절에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지요.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성도들이 연합하여 한 몸 이룬 참된 교회를 19절 이하에 세가지 비유로 말씀을 맺고 있습니다. 첫째는, 성도들은 다 하나님 나라 동일한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19절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foreigners)도 아니요 나그네(aliens)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아버지의 한 식구라고 합니다. 19절 끝에 계속하여 "하나님의 권속(household)이라"고 하였지요. 셋째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가며 함께 지어져 간다고 합니다. 20-22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말씀 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되어 연결시키는 모퉁이 돌(cornerstone)이 되시고, 그 주위에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 서로 연결되어 성전이 되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께서 실제로 거하시는 곳이 되게 하도록 함께 지어져 간다고 비유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동일한 하늘나라 시민이요, 한 아버지를 섬기는 식구들이요, 서로 연결되어 연합하여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게 하는 성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하였습니다. 확신하시고, 겸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서로가 하나된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어떤 사회에, 어느 모임에 소속하고 싶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인정해 주고, 받아주는 모임에 속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모임에서,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요. 그래서 주어진 의무에 충실합니다. 한 나라의 시민이 되면 그 나라의 법을 지킬 의무가 그 시민에게 주어집니다. 어느 직장의 고용인이 되면 그 직장의 법규와 규칙, 그 목적을 위하여 일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모임, 혹은 지회에 가입이 되어 회원이 되면 그 모임의 규칙과 그 목적에 따라 가야 합니다. 한 프로운동선수가 어느 팀에 합류가 되면 코치의 명령과 운동 규칙을 따라야 할 의무가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어떠한 형태의 사람들의 모임에서든지 그러한 의무를 감당하지 않으면 그 모임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때때로 이러한 의무를 감당하려는 성도들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경말씀의 약속과 축복은 좋아하면서 그들에게 주어진 책임감, 의무에는 소홀한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알면 주님의 몸인 교회에 헌신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과 그의 몸인 하나님의 교회는 우리의 사랑이요, 꿈이요, 미래요, 전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알면 알수록 아름답고 능력있고, 위대하며, 기적과 비밀로 가득한 곳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베드로/여호수아 전도회 여러분!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야 말로 역사를 새롭게 하고 이 시대를 구원한다는 믿음이 여러분에게도 분명히 자리잡고 있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살면 세상도 살고 교회가 타락하면 세상도 타락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세상은 소망을 갖게 되고, 교회가 쇠퇴하면 세상은 절망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실체를 경험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무슨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임 안에서 예수님이 보여지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곳입니다. 음부의 권세가 무너뜨리지 못하는 능력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러한 능력의 교회이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사랑하며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 그 아들의 피를 치르고 사신 교회를 우리보다 하나님께서 더 아끼고 사랑하십니다. 그렇게 사랑하시는 이유를 오늘 다시금 깨닫고 열심히 주님의 교회를, 우리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주님의 몸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며, 위하여 온전히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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