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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5-29 (일) 02: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30    
복음의 증인이라 (눅 24:44-53)


여러분은 이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들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유언을 남기기 원하십니까? 한번 생각해보신 적은 있습니까? 한 문장으로 남겨도 좋고, 편지 한장으로 남겨도 좋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는 유언은 그의 삶의 진액과도 같은 소중한 것으로 그 무게는 인생 전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누가가 우리의 주가 되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는 장면과 함께 마지막 유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면서, 제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십자가 죽음의 흔적이 남아있는 자신의 손과 발의 못 자국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고,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면서 자신이 유령이 아니라 분명히 몸을 지닌 실체임을 입증하셨습니다(36-44절).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제자들에게 왜 자신이 승천하기 전에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십자가와 부활은 그에게, 또한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부터 과연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유언을 남기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44절)고 하셨습니다. 이미 여러 번 하신 말씀을 마지막에 또 하십니다. 구약성경 전체가 자신에 관하여 예언하고 있으며 그 예언들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4:18-21; 9:30-31; 11;29-32; 18:31-33; 20:17, 42-43; 22:37; 24:27). 사도 요한도 예수님 스스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말씀하심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성경을 풀어 주신 것처럼 제자들이 성경을 깨닫게 하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셨습니다(45절).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진리를 깨달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기 전에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없으면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성취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진리를 말씀해 주십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6-47절) 하십니다. 즉 예수님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대로 고난을 받아 죽어야만 했습니다(시 22:1-20; 69:1-21; 사 52:13-53:12). 또한 성경대로 살아나야 했습니다(시 16:8-10; 110:1). 그래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 15:3-4) 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47절; 사 40:3-5; 암 9:15) 라고 하심으로, 이제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마태가 이야기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고 하신 지상대사명을 누가가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까지 예수님을 둘러싸고 일어난 모든 사건의 목격자, 곧 증인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본 제자들이었기에, 예수님이 이제 제자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드디어 사도(Apostles)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예루살렘, 유다, 사마리아, 땅끝까지 보낼 계획이었습니다(행 1:8).
다만 그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49절)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은 바로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이 성령의 보내심 또한 이미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되어진 약속이었습니다(사 32:15; 44:3; 겔 36:26-27; 39:29; 욜 2:28-32).
그래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옷 입는 성령강림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복음의 증인이 되려면 무슨 경력이나 학력, 권력이나 재력, 혹은 체력이 아니라 그들에게 와서 능력을 입혀줄 성령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대로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부어졌습니다(행 2:1절 이하). 누가복음에 이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의 증언입니다.

그리고는 누가가 예수님의 승천을 증언합니다. 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누가만이 예수님의 승천에 대하여 자세히 묘사합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시니”(50-51절) 하였습니다. 괄호로 되어있는 것은 어떤 사본에는 빠져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한 후, 제자들을 예루살렘 북쪽 기드론 계곡을 지나 감람산 서쪽의 베다니까지 데리고 나갑니다. 바로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가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부활의 예표로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났던 곳입니다. 또한 한 여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그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예수님께서 손을 들고 제자들을 축복하십니다. 축복하면서 하늘로 올리우시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에 수동, 분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늘 위로 이끌림을 받아 오르시는 것입니다(He was carried up into heaven). 그 때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말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고 하였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승천의 의미는 1) 예수님의 이 지상에서의 구속역사를 완성하셨기에 지상사역은 끝이 났으며, 2)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시는 것이며, 3) 이제 성령님이 오실 차례이며, 4) 믿는 자들을 위한 천국의 처소를 준비하기 시작하시는 것이며, 5) 복음 전하는 일을 그의 제자들에게 넘기시며, 6)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7) 분명히 사탄 마귀를 물리친 확실한 증거이며, 8)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가 시작되며, 9) 재림이 확실하다는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약속대로 성령님이 오시기까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53절)고 하면서 누가복음 끝맺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유언과 함께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것이었고, 그것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경배와 찬양이었습니다. 큰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전에서 찬송하였습니다. 그 결과 다음 주일에 살펴볼 성령님이 강림하신 것입니다. 즉 약속의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은 늘 경배와 찬양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아직 받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마음을 열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성령님께서 인치십니다.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내주하십니다.
이유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저 자신만 구원을 받고 천국가게 하기 위해서 성령님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기 ‘증인(witness)’ 이라는 단어는 법정 용어로도 쓰이는 것으로 자신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을 사실 그대로 전하는 자를 말합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ma,rtu’ 로서 영어 ‘martyr (순교자)’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즉 ‘죽음으로 증거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생명을 걸고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요한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요일 1:1-2)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게 살았기에 복음이 온 유럽에 전파되었고, 교회들이 세워졌고, 그 후에 아프리카로 이 미국으로, 아시아로 전파된 것입니다.
바로 이 사명때문에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우리의 가까운 예루살렘(가족)부터 온 유대(이웃)와 사마리아(가까운 나라), 아니 땅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행 1:8). 어디에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과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하였습니다. 우리의 삶이 불신자들과 달리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 가운데 기쁨과 평안으로 살면 반드시 우리 주위에 그 이유를 묻는 자들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증언을 해야 합니다.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담대하게 말해야 합니다. 물론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요. 말과 행동이 다르면 증언에 신빙성이 없어서 믿지 않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십자가의 은혜를 체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왜 사는지, 그 목적이 분명합니다. 큰 그림이 보여야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 보좌에 앉으시기 전에 남기신 유언, 우리로 하여금 복음의 증인으로 살라고 하는 명령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명을 걸고 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의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마지막 때의 구속역사 성취를 위하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복음에 사로잡혀, 성령을 받았으면 충만하여서 어느 곳에 있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입을 열어 전하셔야 합니다. 생활로 전해야 합니다. 성도답게 불신자들과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하늘나라 소망을 붙잡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마 28:20). 이 약속을 믿는다면 전해야 합니다.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속해진 이민 사회의 우리 교포는 물론이고, 백인이건, 흑인이건, 스페니쉬건, 미국이건, 남미건, 아시아건, 중국,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이던 할 것 없이 어디든 가야 합니다. 어떻게 갑니까? 우리가 직접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자녀를 통하여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물질을 통하든지, 우리의 재능을 사용하여서라도 가야 합니다. 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이웃에게부터 갑시다. 그리고 땅끝까지 갑시다. 복음의 증인으로서 삽시다.
오늘날의 교회들을 소비성이 강한 교회와 생산성이 강한 교회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소비성이 강한 교회라 함은 교인들이 교회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하여 그저 소비만 하는, 이용만 하는 교회입니다. 생산성이 강한 교회라 함은 교인들이 자신의 필요보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생산성 있는 일로, 바로 이 자상대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에 속할까 생각해 봅니다. 복음의 증인들로서 또 다른 증인들을 생산하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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