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3,621,262
오늘방문 : 1917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609
오늘글등록 : 1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4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6-02 (목) 06:02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21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히 2:10-18)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목회에 가장 힘든 것이 교인들이 잘 모이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요예배도, 새벽기도회도, 심지어 주일 예배도 이전보다 잘 모이지를 않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잘 모이지를 않으니 기도와 찬양에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에게 이전보다 기도하지 않아도 잘 살고 계신지 묻고 싶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잠잠해졌을지라도 우리 모두는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잠시 세상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 마귀는 우리를 끊임없이 시험하며 여러가지 고난을 겪게 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 대함이라”(엡 6:12)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그런 고난을 당할 때 도우시는 주님이 살아 계십니다. 성경을 살펴보십시오.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을, 요셉을, 모세를, 다윗을, 다니엘을, 아니 사도 바울 등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가 실제로 겪는 어려움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울 수도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성육신 하셔서, 친히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의 고난을 잘 아시고 이해하십니다(18절).

   오늘 본문이 강조하는 것이 바로 참 하나님이신 우리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를 담당할 속죄양은 점 없고 흠 없는 어린양이어야 했듯이, 우리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죄인인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신하여 희생제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들을 친히 겪으셨기에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10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는 곧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롬 11:36)고 한 것처럼, 만물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창조되었고, 유지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구원을 받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어 고난을 당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이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히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하심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온전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10절에도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신다고 하였는데, 이어서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11절) 하였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 예수님과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 우리들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게 된 자녀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친 아들 예수님과 양자가 된 우리들이 형제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달리 우리는 죄인이지만 믿음 때문에 의인이라 불러 주시며,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는 이미 시편 기자 다윗과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되어진 말씀임을 히브리서 기자는 밝히고 있습니다. 12절은 시편 가운데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12절; 시 22:22) 하셨다고 합니다. 시편 22편 전반부는 오실 메시아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보여주고 있고, 후반부는 승리하신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승리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내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13절; 사 8:17,18) 합니다. 이는 예수님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셨듯이,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해야 함을 뜻합니다. 자녀들이 아버지를 신뢰하듯이 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녀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의 인성을 말하면서 왜 그렇게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태어나셔야만 했는지 설명합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14절) 하였습니다. 우리와 한 형제가 되려면 예수님도 인간이어야 하니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인성을 지닌 분으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죽으셨습니까? 이유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없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머리를 치신 것입니다(창 3:15). 물론 아직 꼬리가 남아 있어 우리를 시험하고 어렵게 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마귀는 전능한 영물이 아닙니다. 제한된 능력으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시면 완전히 불과 유황못에서, 무저갱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게 됩니다(계 20:10).
   이렇게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 죽음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대적 마귀를 물리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15-16절)고 하였습니다. 만약 죽음이 두려우신 분들이 있다면 아직 복음을 제대로 알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습니다(롬 8:38). 죽음은 잠시 우리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우리 육체가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기 전에 죽음이 무서워 그의 종노릇하며 노예로 살던 우리는 이제 죽음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천사들을 붙들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붙들어 주기 위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17절)고 한 것입니다. 구약시대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그 언약 백성 사이의 중보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즉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신 이유는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서입니다. 우리의 개인적인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크고 놀라운 영원한 사랑 때문에 우리가 받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17절에도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다고 했는데, 곧 우리들과 같이 되어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며 고난을 겪는 우리를 도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18절)고 하였습니다. 인간으로 오지 않으셨다면 무슨 시험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겠습니까? 분명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예수님도 분명히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고난당하셨습니다. 40일 금식하신 후에 배 고프신 것으로 시험받으셨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또 자기에게 절하면 눈에 보이는 세상 모든 물질적인 것을 다 주겠다는 사탄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 후에도 온갖 조롱과 모욕, 침 뱉음과 채찍에 맞음,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까지 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심해서 피할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으시고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큰 형님이 되시는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고통을 겪어 보았고 견디었고, 결국 승리하셨기에 우리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얼마든지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비록 죄의 유혹은 받았지만 죄를 짓지 않으신 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는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5-16) 하였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동정)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우리는 주님의 긍휼하심, 자비하심, 인자하심,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약함을 고칠 수 없습니다. 병도 우리가 고칠 수 없는 병이 있습니다. 가정 문제도 우리가 고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아니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조차 다 내어 놓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병든 것도, 숨기도 싶은 문제도, 못된 습관도, 모든 부족함을 다 알고 계십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기 원하십니다. 돕기 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주께서 얼굴을 우리에게 돌이키도록 죄를 회개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으십니까? 도와 달라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은혜를 구하여야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지 않고 자유하도록, 죽음의 권세가 주장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인간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예수님의 형제로 인정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연약한 우리를 돕기 위해서, 여러가지로 힘들어 하는 우리를 친히 돕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종종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 구하십시오. 자주 도와 달라고 하십시오. 분명히 도와 주실 분입니다. 도우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68 주일설교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갈 4:1-11) 한태일 목사 2022-08-21 100
1267 수요설교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들에게 (벧전 3:1-7) 한태일 목사 2022-08-18 244
1266 주일설교 믿음이 온 후로는 (갈 3:23-29) 한태일 목사 2022-08-14 267
1265 주일설교 조건없는 하나님의 언약으로 (갈 3:15-22) 한태일 목사 2022-08-08 98
1264 수요설교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더라도 참아라 (벧전 2:18-25) 한태일 목사 2022-08-04 104
1263 주일설교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 (갈 3:1-14) 한태일 목사 2022-07-24 184
1262 수요설교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삶 (1) (벧전 2:11-17) 한태일 목사 2022-07-21 125
1261 수요설교 어찌하여 관망만 하느냐 (창 42:1-5)(2022.07.13) 관리자 2022-07-17 151
1260 주일설교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라 (갈 2:11-21) 한태일 목사 2022-07-17 177
1259 주일설교 인정되고 확인된 바울의 복음 (갈 2:1-10) 한태일 목사 2022-07-10 154
1258 수요설교 신령한 집을 세우는 하나님의 백성 (벧전 2:4-10) 한태일 목사 2022-07-07 113
1257 주일설교 부르심을 따라 (갈 1:11-24) 한태일 목사 2022-06-26 170
1256 주일설교 복되고 형통한 아버지 (시 128:1-6) 한태일 목사 2022-06-19 142
1255 수요설교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벧전 1:22-2:3) 한태일 목사 2022-06-16 139
1254 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1:1-10) 한태일 목사 2022-06-12 152
1253 절기설교 성령강림은 (행 2:14-21) 한태일 목사 2022-06-05 176
12345678910,,,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