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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7-10 (일) 01:3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01    
인정되고 확인된 바울의 복음 (갈 2:1-10)


1974년 몰몬교,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 주 DC 가까이 Kensington 에 휘황찬란한 건물을 완성했습니다. 버지니아나 DC로 가기 위해 495를 타면 높은 첨탑과 천사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건물도 기독교 교회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몰몬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 존재합니다. 그 건물 어디에도 십자가가 없는 것처럼, 그들의 믿음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차지하는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들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예수님 만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요 14:6)임을 믿지 않으며,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 다른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최종적인 계시임을 믿지 않고, 나름대로의 몰몬경이 있습니다. 성경이 오류가 없다고 믿지 않고, 문자적인 천국과 지옥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행해야 합니다. 마치 초대교회 때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이 혼탁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여기 저기서 들리는 말씀이 정말 성경 66권의 진리에 일치하는 말씀인지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내려오는 정통신학에 합당한 말씀인지, 아니면 비슷하지만 다른 말씀인지 분별하며 신앙생활 하여야 합니다. 사탄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거짓으로, 비진리로 사람들을 혼란하게 합니다. 이단에 빠지게 하거나 기복신앙 혹은 인본주의, 자유주의 신앙으로 진리의 말씀에 멀어지게 합니다.

바울은 1장에서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가운데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부인하거나 의심하는 자들에게 변호하였습니다. 어떻게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 간증하였습니다. 2장에 들어와서도 계속 자신을 변호하는데, 이유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권위를 부인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사도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복음을 전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유명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사도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확인된 복음이라고 선포합니다.
우선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1절)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 동안 세 번에 걸쳐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첫번째 방문은 그가 회심한지 3년 후인 주후 35년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함이었고(갈 1:18; 행 9:26), 두번째 방문은 주후 46년 안디옥교회의 구제헌금을 전달하기 위해서(행 11:29-30), 세번째 방문이 주후 49년경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기 위함이었습니다(행 15장). 그러니까 본문 1절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첫번째 방문 이후 14년 만에 바나바와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게 된 까닭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유대인이지만, 디도는 이방인 곧 헬라인으로서(3절), 예루살렘 유대인 사도들이 그에게 할례를 요구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도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2절)고 한 것처럼, 자신이 전하는 복음에 대해 유명한 자들(6절, 9절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 곧 예루살렘 지도자들, 사도들에게 분명히 밝혀서 그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서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들과 함께 바울은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복음을 사사로이 제출하였습니다. 이 말은 무슨 청문회 형식으로 제출한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진지하게 의사를 교환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복음을, 진리의 가르침을 설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으며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인 거짓 교사들의 편을 든다면 자신이 여태껏 달려온 달음질(경주)가 헛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명한 사도들도 바울의 복음을 인정하고 확인해 주었기에 동행한 헬라인 디도를 억지로 할례를 받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3절). 이렇게 된 이유가 몰래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거짓 형제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4-5절)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몰래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 명하는 규례와 의식, 특히 할례를 받도록 강요해서 종으로 삼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하는 것을 보고는 못 마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복음의 진리가 걸린 문제이기에 굳게 서서 추호도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1장 후반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명하다는 예루살렘 사도들이 인정해주던 해주지 않던 상관 없이 직접 예수님의 계시로 받은 복음이라고 했으나, 그들도 인정해주었고 확인해 주었다는 말을 합니다.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6절) 하였습니다. 자신의 믿기 전의 모습이라면 도저히 사도가 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과거의 모습으로 사도를 택하심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예수님과 동행하며 사도가 된 자들이라도 상관이 없으나, 그들도 바울의 가르침에 더하여 준 것이 없었습니다. 즉 유명한 그들이 바울의 복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 그의 가르침이 진실하고 완전하다는 것을 확인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과 동등한 사도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도리어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한 것을 보고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7-8절)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역사하셔서 그를 유대인 할례자 유대인들을 위한 사도로 삼으셨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은 이방인 무할례자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베드로와 야고보(게바)와 요한의 권위를 강조함으로 바울의 권위를 약화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그들을 높이고 바울을 낮추면서, 바울의 복음과 가르침에 대한 반대를 강화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유명한 예루살렘 사도들이 교회 안의 기둥 같은 중요한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사도직의 권위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서 그들과 동등하다. 그것을 유명한 예루살렘 사도들도 인정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나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9절)고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주님이 바울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그가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또 하나는 주님이그에게 참된 복음, 구원의 진리를 계시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 인정하고 확인하는 교제의 악수를 한 것입니다. 이제 대등한 관계로 한 목적만을 위하여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 같은 복음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다만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들이 한 가지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10절)고 말입니다. 어쩌면 예루살렘 사도들은 자신들이 바울의 복음을 인정해주면, 그의 이방인의 사역을 승인해주면 그가 이전에 안디옥교회와 함께 구제에 동참하였었는데, 더 이상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책임을 더 이상 느끼지 않게 되리라 생각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래부터 힘써 행한다고 다짐합니다. 사실 바울은 말한대로 3차 전도여행 중에 예루살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많은 헌금을 모아서 보내주었습니다(고전 16:1-3). 그리고 그 헌금은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뉘어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됨을 지키게 하였고, 사랑을 더해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사람이 잘못된 것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믿지 않다가 복음의 진리를 믿는 것보다 잘못된 거짓 진리를 믿다가 참 믿음을 갖게 되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단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에는 엄청난 희생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다시 빠져들어가 더 무서운 노예생활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믿고 나서 거짓 형제들로 말미암아 다시 율법의 노예로 살려고 하는 교인들에게 경고하였습니다. 자신의 복음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들 때문에 일부러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한 예루살렘 사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임을 확인해주었습니다. 특히 이방인들을 위하여 세움을 입은 사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바울의 사역에는 더 큰 힘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 분별력을 가지고 인정하며 확인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격려가 필요합니다. 맞다고, 옳다고 칭찬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누가 무슨 말을 할 때에 개혁주의 정통신앙에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교역자들에게 물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 거짓 형제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앞으로 ‘신천지’와 같은 위장한 이단의 가르침을 주장하는 자들이 가만히 들어올지 모릅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물리쳐야 합니다. 주후 1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이단의 무리들을 끊임없이 교회를, 성도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아마 주님 다시 오시기 전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적 그리스도가 더 극성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성경을 잘 알아야 하겠지요. 개혁주의 정통신앙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지요.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읽어야 합니다. 모르겠으면 물어 보셔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2-13)고 하였습니다. 당연하지요.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딤후 3:16).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것은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탄 마귀의 수작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자꾸 우리를 그의 노예로 만들려고 하는 사탄의 궤계를 물리쳐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희미해지면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이 주장한 것이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선포되고, 성례가 엄수되며 바른 권징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 올바른 교회라는 것입니다. 바른 말씀의 선포는 신실한 공동체를 세우게 됩니다. 거기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진리가, 말씀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의 사역자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사역자를 보실 때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하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느냐는 것을 전혀 중요하게 보시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역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게 선포하고 가르치고 있느냐, 실제로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하고 있으며, 훗날 칭찬 받을 것입니다. 유별나지 않아도 됩니다. 어쩌면 그런 사람은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일지 모릅니다. 사실 신앙적으로 성숙하면 유별난 부분은 없어집니다. 아주 평범하면서도 그 안에 능력과 은혜가 충만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의 진리만을 붙들고 있으면 말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교역자들과 성도님들 위에 그런 은혜가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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