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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7-17 (일) 00:5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78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라 (갈 2:11-21)


우리 주위에 입으로는 복음을 믿는다고 하는 분들 가운데 그 믿음대로 바로 행하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분들 때문에 전도가 막히는 경우를 봅니다. 믿는다고 말하는 대로 산다면 그의 삶은 선교적 삶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16절에서 언급하였듯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알면서도, 그 복음의 진리를 따라 사는 분들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난 주일에 살펴본(2:1-10) 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리를 유명한 예루살렘 공의회의 사도들에게도 인정을 받았고, 확인된 복음이라고 선포한 후에 자신이 사도로서 영향력을 보여주는 한 사건을 말하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원칙으로 사는지, 이 원칙에 따라 살아야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11절)고 합니다. 아마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리기 전 바울의 1차 전도여행 중 안디옥에서 게바(베드로)를 만났는데 그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것입니다. 이유는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있다가, 어쩌면 성찬식을 하다가 예루살렘 교회(당시 감독이 야고보)에서 온 할례자들, 즉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 가운데 있었던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오니까 그들이 두려워 그 자리를 떠나 물러간 것입니다(12절). 즉 베드로는 그들의 심사를 거스리지 않으려고, 부딪히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자는 식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바울은 외식(위선)이라고 합니다.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도, 심지어 바나바도 베드로처럼 그 자리를 떠남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따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그렇게 싫어하는 외식(위선)의 죄를 지은 것입니다. 말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라고 고백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하나됨을 부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시에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압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베드로 같은 사도도, 바나바도 그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유명한 사도들이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본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면책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14절)고 책망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이미 이방인과 교제할 때에 유대인답지 않게 행동했는데, 정말 유대인처럼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면, 처음부터 유대인처럼 행동할 것이지 어떤 때에는 이방인들과 어울리다가 어떤 때는 유대인처럼 행동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느냐고 합니다. 그러면서 억지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하는 것이냐고, 그의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것을 책망합니다.
그렇지요. 믿는 사람의 행동이 일관성이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하면 어떻게 덕이 됩니까? 그런 사람을 어떻게 신뢰하겠습니까?

그리고는 길게 왜 우리 믿는 자들은 그렇게 살 수 없으며, 바울 자신은 어떤 자세로 사는지 설명합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15-16절)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나 바울 다 유대인인이라는 특권을 지닌 자들이지만, 그들이 갖고 있는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는 것을 알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방 죄인”이라고 한 것은 아마 빈정거리는 말투로, 보통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일컬을 때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보기에 죄인은 바로 유대 율법주의자들이지 교회에 속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결코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이 실제로 의로운 생활을 못하고 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으로서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율법 안에서 자신들이 실패했다는 것을, 정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을 위해 율법이 할 수 있는 것은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필요함을 느끼고 그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paidagwgo,j)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할렐루야!

그런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만일 사람에게 복음만 있고 율법이 없다면 그들이 마음대로 죄를 지을 것이라고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도 있지만 율법이 없다면, 그 후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죄를 짓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이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럴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17절)고 말입니다. 그들에게 은혜라는 개념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 때문에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지 못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합니다. 복음이 말씀을 거역해도 되는 무슨 티켓이 아닙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죄를 많이 지으면 은혜를 많이 받지 않느냐는 주장에 대하여서,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살리요”(롬 6:1-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법을 어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18절)는 말이 그 뜻입니다.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은 법을 지키지 못하기에 범법자로, 죄인으로 남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21절)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은 후에 자꾸 율법을 지키려고 하지 말고, 그 크신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말씀을 따라 살면 죄는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삶의 원칙을 가르쳐줍니다.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19절)고 합니다. 자신이 율법 아래 살 때에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규례(규칙) 안에 얽매이어 살게 하는 것이지,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과거 율법 아래서 열심을 내었던 바울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만나 복음을 깨닫고 나서는 그 노예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을 향하여 죽었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율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훨씬 좋은 복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보다 훨씬 더 능력이 큰 것이었습니다. 바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히브리서 전체 가르침이 바로 이것입니다. 즉 은혜를 깨닫고 나니 이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남편이 죽은 후에는 더 이상 남편에게 속하지 않게 되는 아내처럼 말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유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삶의 원칙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절)!  
우선 자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합니다. 온전히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신 것처럼, 자신의 자아(ego)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6-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자신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이 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사신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을 향하여,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뜻이 바로 주님과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 6:3-5)고 하였습니다. 마치 신랑과 신부가 한몸이 되어, 하나가 되어 살듯이 우리가 주님과 한몸을 이루어 하나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미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을 엄청 사랑하셔서 자신을 위하여 기꺼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행한다는 말입니다. 바로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생활을 한다는 뜻입니다(빌 1:27). 말 따로, 행동 따로 하는 그런 생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 큰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고 있습니까? 누가 보더라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기서 이렇게 말하고 저기서 다르게 말하지는 않습니까? 교회생활 따로, 가정생활 따로, 직장생활 따로, 사회생활 따로는 아닙니까?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행동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처럼 행동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외식(위선)입니다. 예수님이 “화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고 하셨습니다. 혹은 그런 사람을 보면 비난하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살아야 믿는 자답게 사는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공인입니다. 어디에서나 우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바울의 삶의 원칙에서 배울 것은 철저하게 자신이 죽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가장 종교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종교적인 사람이 가장 악할 수 있고, 잔인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아니면, 은혜가 아니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 아니 오히려 악하게 살 수 있음을 깨닫고 자신은 죽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죽어지니까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살았을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죽어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악한 생각들이 올라옵니다. 그런데 만약 그것들을 내려놓고 선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 안의 예수님이 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내주하시는 주님이, 성령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어려움을 주시는 까닭이 우리 자신을 내려 놓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기꺼이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우리 몸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복음의 진리를,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기꺼이 내어 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뜻을 따라 살게 되어 있습니다. 늘 그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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