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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11-12 (일) 07:33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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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34    
진리의 말씀을 지키라 (계 2:12-17)




많은 교회들이 그저 사람들만 많이 모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듣기좋은 인본주의 말씀으로, 혹은 세상의 사상, 철학, 그 유행이나 문화에 물들어 가는 것을 봅니다. 세상과의 타협(compromise)입니다. 비진리와의, 사탄과의 타협입니다.
교회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 66권을 중심으로 하는 올바른 신론, 인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성령론, 그리고 종말론을 가르쳐 성도들이 진리의 말씀 안에 서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영광을 받으실 것인데 자꾸 벗어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계시로 주신 성경에서 말하는 객관적인 진리가 아닌 자신들의 주관적인 체험 중심의 신앙 혹은 사람의 감정만을 자극하는 신앙 등이 교회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참된 진리의 말씀을 교회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7교회 가운데서 그런 세상의 영향을 받은 교회가 있었는데 바로 오늘 본문의 버가모 교회입니다. 이미 살펴본 에베소 교회는 교인들의 행위와 수고나 인내가 있었고, 아무나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진짜 사도인지,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과 감격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반면에 서머나 교회는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과 유대인들의 핍박이 너무 심해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칭찬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죽기까지 충성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들과 싸우는 교회였습니다. 말씀이 살아있었고, 기도가 살아있었습니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을 살펴보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교회들도 타락하고, 비진리와 타협하는 추세에서 우리 가든교회는 하나님의 참된 진리의 말씀만을 지키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버가모라는 도시는 서머나에서부터 북쪽으로 약 65마일, 에게 해로부터 약 15마일 안쪽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주전 231년부터 주전 133년까지 고대 Attalid 왕국의 수도로 역할을 감당하다가, 주전 133년에 로마제국에 귀속되었습니다. 아주 학구적인 도시로서 당시 한 대학교 도서관에는 200,000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로마 Antony 황제가 이 많은 책들을 이집트의 Cleopatra 여왕에게 선물함으로 Alexandria 도서관으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특히 버가모에서는 성경 사본을 기록하기도 한 양피지 종이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 버가모 도시는 로마황제 숭배를 위하여 주전 29년 Augustus 황제가 그의 신전을 짓도록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아시아 지방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황제를 숭배할 뿐만 아니라 각종 이방신을 섬기던 도시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Zeus(신들의 왕), Athena(지혜와 풍요의 여신), Asklepios(의학의 신) 등의 이방신들을 섬기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병을 치유한다고 믿은Asklepios 우상은 뱀의 형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탄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이러한 도시에 그리 크지 않은 버가모 교회가 있었는데 아마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들러서 개척의 씨앗을 뿌린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교회를 향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칭찬과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12절에 예수님을 가리켜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계 1:16, 2:16에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좌우의 날선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말씀이 갖고 있는 두 가지 역할, 바로 사랑과 공의의 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을 세상의 정죄로부터 구해내는 사랑의 검입니다. 죄와 심판의 사슬을 끊고 복음으로 인한 구원과 축복을 약속하는 검입니다. 또한 그 은혜의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공의의 심판을 하는 검입니다. 이 검을 가진 주님은 먼저 버가모 교회를 칭찬합니다. 무슨 칭찬입니까?

[Slide 1-1] 사탄 마귀의 조종을 받는 권력자들의 핍박이 심한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잡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을 안다고 칭찬하십니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13절상)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신다고 합니다. “사탄의 위”가 있는 곳입니다. 즉 사탄이 권좌에 앉아 지배하는 곳입니다. 혹자는 Zeus 신을 말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로마황제의 권력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가모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름이 뜻하는 것은 주님의 속성을 말합니다. 만유 위에 높으신 이름, 사탄의 위보다 높은 권세의 주님, 전능하신 구원의 주님, 승리의 주님을 굳게 붙잡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여도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했던 한 사람을 언급합니다.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13절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충성된 증인”의 증인은 순교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 스스로를 “충성된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계 1:5, 3:14). 즉 안디바라는 성도가 주님처럼 순교하는 것을 목격한 그들이었으나 그래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어떤 외부의 핍박이 있어도 목숨을 걸고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주일 서머나 교회를 살펴보면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날도 사탄이 공중권세를 잡고 얼마나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들고, 주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있습니까? 버가모 교회 교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책망을 받을 일이 있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그렇게 믿음을 지키며, 진리를 지키며 살지 않고, 몇 몇이 세상과 타협하며 타락한 교인들을 그냥 용납한 것입니다. 그것이 참 사랑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14-15절)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따라 돈을 사랑하며 음행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참고: 민 22-25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광야를 행진할 때였습니다. 요단강을 앞에 두고 모압 평지에 이르렀을 때에 모압왕 발락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선지자 발람을 유혹하여 그들을 저주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원래 발람은 히브리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인이 아니면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선지자니 얼마나 귀한 사람입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보다 돈을 더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발락 왕은 처음 시도가 잘 되지 않자 많은 돈과 물질로 유혹을 합니다. 그리하여 나온 계교가 예쁜 모압 여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유혹하게 하여 성 관계를 갖게 합니다. 이방신 바알브올의 제물을 함께 먹으며, 그 신전에서 그 여인들과 행음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24,000명의 이스라엘 남자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전염병으로 죽고 맙니다. 바로 이 사건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돈에, 물질에 눈이 어두워져 순진한 어린 양들을 혼란하게 하며 교회를 어지럽히는 지도자들이, 가짜 신자들이 있지 않습니까? 돈에 자유롭지 못하여 죄를 짓는 자들입니다. 신자라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는 세상 불신자들의 풍습을 좇아가면서 사는 자들이 있다면, 음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아니 육신적으로는 그런 죄를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간음을 한다면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순수하게 주님 한 분과 함께 동행하기를 바랍니다.
또한 버가모 교회 교인들 가운데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 자유롭게 죄를 짓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언급할 때에도 이 무리들의 행위를 말씀하셨는데, 이들은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오셨으니, 십계명을, 예를 들면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도 율법이니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죄를 지을 자유조차 요구하는 무리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주관대로 믿는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비도덕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신학을, 신앙을 가르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주의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다 용서하신다고 하면서 불신자와 다름없이 삽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와 달리 버가모 교회의 문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런 자들을 용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 마귀들과, 세상과 타협하고, 비진리와 타협하는 자를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에 근거한 진리 전체를 무시한 채, 성경 구절 하나에 의지하여 ‘하나가 되자, 사랑으로 뭉치자’라는 표어 아래 WCC 에큐메니칼 운동을 하는 무리들입니다. 예수 이름을 사용하여 정치적인 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불순한 무리들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은 혼합주의로서 이미 순결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해야 합니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가 없습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참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말씀을 지키는 신앙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미워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은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 속하여 살아가는 우리들이지만 세상의 영향을 받아 물들어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안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됨을 지키라고 하실 때에는 가장 기본적인 신앙, 믿는 바가 같은 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하나됨을 뜻합니다(엡 4:2-3). 기본적인 교리(sound doctrine)가 맞아야 합니다. 기본적이, 본질적인 아닌 비본질적인 교리들에 대하여는 관대함이 있어야 하지만, 잘못된 교리들은 물리쳐야 하는 것이 진리를 지키고, 순종하는 자들의 태도입니다. 그것이 바로 개혁주의 신앙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16절)고 하셨습니다. 의사가 수술하기 위하여 날카로운 수술칼을 들고 암세포를 다 제거하듯이 말입니다. 버가모 교회 교인들은 발람의 교훈을 좇는 자나 니골라당의 교훈을 좇는 자들을 징계해야 했습니다. 돌아서지 않으면 출교시켜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직접 나서겠다고 하십니다. 주님과 싸워서 이길 자 누가 있습니까? 그 심판을 피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돌이켜서 참 진리를 따르고 승리하는 교회들은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17절하)고 하셨습니다. 감추었던 만나는 모세가 아론에게 언약궤 안에 광야 여정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만나 한 오멜(약 2.3 L)을 항아리에 간수하게 한 것인데(출 16:33-34), 구전에 의하면 솔로몬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가 느보산 근처 어디에다가 감추어둔 언약궤를 아직도 못 찾고 있는 것입니다(참고- 마카비서 2:1-8). 주님 재림하실 때 발견될 것으로 믿는데, 이 만나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것이 아니고 하늘의 것이며,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비밀, 생명의 신비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하늘에서 아버지가 내린 참 떡, 생명의 떡으로 말씀하셨습니다(요 6:31-35). 자신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흰 돌”에 대하여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당시 연회에 초대장으로 흰 돌이 쓰였기에 우리 성도들을 천국 잔치에 초대하는 특별한 은혜의 표시(a ticket or pass)로 생각됩니다. 그 돌 위에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돌은 받은 자만 안다고 합니다. 새 이름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새로운 성품의 새 사람이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가 믿은 후에 새로운 피조물이 다 되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을 지불하고 사신 교회는 진리의 기둥의 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고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 스스로 자신을 진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4:6; 8:31-32; 18:37). 참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마지막 소원도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 17:17)라고 하셨습니다.
서론에서 언급하였듯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기독교계를 들여다보면 정말 어지럽습니다. 많은 우상들,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 지식주의, 신비주의, 혼합주의, 인본주의, 온갖 사이비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데 급급하여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 참 진리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비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양보하고 타협하여 하나됨을 지켜야지요.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기독교계가 변질되어 가더라도 우리 교회만큼은 초대교회의 정통신앙, 지난 500여 년 내려오는 개혁주의 신앙, 청교도 신앙을 지키어 순수한 진리를 전파하며, 말씀을 지키기 원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축복인 감추어진 만나인 생명의 떡을 받으며, 우리 모두 의인으로 인정받는 흰 돌을 받기 원합니다. 새 성품의 새 이름을 가진 자답게, 주님의 인격인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들고 나아갑시다. 만유 위에 뛰어나신, 모든 권세를 가지신 전능하신 이름입니다. 믿음을 지키되 진리 안에서 지킵시다. 세상과의 타협을 일제히 배격하고 순수한 진리를 분별하여 아닌 것을 물리칩시다. 암세포가 발견되었는데 그냥 두면 온 몸에 암이 퍼져서 죽게 됩니다. 의사이신 예수님의 날선 검으로 완전히 제거하십시다. 그러려면 성령의 검,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셔야 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고 공부하고 묵상하셔야 합니다. 영적 전투에서 이길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결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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