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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12-17 (일) 06: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8    
열심을 내라! (계 3:14-22)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소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들을 통찰하시고 각각 말씀들을 들려주십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진리를 지키며 악한 자들을 물리친 것은 잘했지만,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니 그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셨고, 서머나 교회에는 사탄의 훼방이 있더라도 주님이 다 아시니 잘 참고 견디며,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셨고, 버가모 교회에는 돈 사랑이나 음행을 물리치며, 이단을 대적하고 자유주의자들을 용납하지 말고 진리의 말씀만을 지키라고 하셨고, 두아디라 교회에는 신앙양심을 더럽히며 회개하지 않는 죄를 책망하며,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였고, 사데 교회는 정통교리를 붙들지만 말로만 믿는 죽은 교회가 아니라, 행동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교회가 되라고 하셨으며, 빌라델비아 교회는 전도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으니 더욱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힘을 써 상급을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들 가운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책망은 전혀 듣지 않고 칭찬만 듣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 라오디게아 교회는 사데 교회처럼 주님으로부터의 칭찬은 전혀 없고 책망만 듣습니다. 아니 제일 심한 책망을 듣습니다. 어떤 교회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하면, 어떤 교회는 주님의 눈에 눈물이 나게 하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주님을 화가 나게 하기도 하는데, 이 라오디게아 교회는 주님께서 입에서 토해버릴 정도의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옛 프리기아(Phrygia)의 수도였으며, 빌라델비아에서 남쪽으로 약 43마일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북으로는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와 동쪽으로 골로새(Colossae) 도시와 함께 커다란 메트로폴리탄을 이루는 지역으로 알려졌습니다. 섬유공업이 발달하여 검은 염소 털로 모직, 모피(wool)을 생산하여 무역을 하는 사람들과 금융업이 발달된 아주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또한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는데, 특히 눈병을 치료하는 안약(Phrygian Powder)과 귀를 치료하는 약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에 세워진 교회에게 주신 편지에 나타난 주님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14절)로 나타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첫째로, 주님이 ‘아멘’이시라고 합니다. 이 단어은 히브리어의 ‘진리’(사 65:16)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즉, 우리 주님께서 하신 모든 ‘일’이 사실(fact)이다, 참(true)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 마지막에 아멘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진실로 모든 일이 기도한대로 되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충성되고 참된(faithful and true) 증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뜻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진리요, 참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후 1:20)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 즉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창조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말 번역이 너무 잘 되었습니다. 어떤 번역처럼 창조의 시작이라는 뜻이 아니라, 창조의 근원(resource, ruler)이라는 뜻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3)고 하신 것을 말합니다. 영원 전부터 계셔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계신 분,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계 22:13).

이런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살펴보니 구역질이 나서 토하여 내쳐버리겠다고 하십니다(16절). 이유는 교인이라면서 모이는데, 실제로는 믿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미지근한 행위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15-16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교회는 주님에 대하여 보이는 반응이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그저 덤덤했다는 것입니다. 즉 뜨겁거나 차갑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실천이 행동으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미지근했나요? 이유는 그들이 진실로 믿지 않기 때문에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으며, 주님의 일이나 영적인 일에 열정이 없었습니다.
마치 라오디게아 도시가 아무리 부유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물이었는데, 바로 북쪽으로 약 6마일 떨어진 도시인 히에라폴리스는 뜨거운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그곳에서 뜨거운 물이 파이프로 라오디게아까지 오면서 식어져 버림으로 미지근했고, 동쪽으로 10마일 떨어진 골로새는 아주 차가운 약수로 유명했는데 거기서 파이프로 라오디게아까지 오면서 별로 차지 않고 미지근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보온기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물은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아서, 그야말로 미지근하여 맛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미지근하다(χλιαρὸς, lukewarm)’ 원어의 뜻은 ‘쓸모 없는(useless)’ 혹은 ‘유쾌하지 않은(unpleasant)’ 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을 먹으려다 미지근하여 내뱉듯이 토하여 버린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빗대어 말씀하고 있습니까? 입술로는 신자라고 말하는 교인들의 삶에 전혀 믿는 자로서의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신자답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번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 7:16)고 말씀하셨고, 이어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오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셨습니다. 진실한 성도라면 맛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향기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섬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면 그의 행동에 표시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맛을, 향기를 내고 있습니까?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명령에 순종하고 사십니까? 아니면 기분 내키는 대로, 내 마음대로 신앙생활하십니까?
이어서 주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17절)! 너무 자신들의 문제를 잘 모르고 있었던 그들입니다. 그저 자신들이 소유한 물질적인 부에 의하여 현재의 삶을 만족하게 여기고 전혀 영적으로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부자라고 심령이 부하여 아무 부족이 없다고, 아주 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영의 눈과 귀가 멀어져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주님의 눈에는 그들이 오히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다고 합니다. 사치스러운 모피로 된 좋은 옷은 입었는지 모르나, 벌거벗은 자나 다름이 없다고 하십니다.
마치 믿음 때문에 받는 핍박이 거의 없는 이 풍성한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교회들에게 주시는 말씀 같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것 같으나 아주 부패한 상태입니다.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가우면 병균이 살 수 없습니다. 미지근한 상태가 병균이 생기게 되고 쉽게 부패합니다. 나쁜 박테리아가 들끓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 기회주의적인 상태입니다. 눈치만 보는 상태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정함이 없습니다. 갈라진 마음입니다. 세상에 한 발을, 교회에 한 발을 들여놓고 사는 사람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 주님께서 지금 진단하시면 뭐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영적인 일에, 주님의 일에, 예배를 드리고 섬기는 일에 열정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자주 먹어야 함을, 그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미지근하여 이미 병균이 들어와서 염증이 생긴 것입니다. 점점 부패해져 갈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권면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18절)고 하십니다. 먼저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합니다. 이 말이 참 믿음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비유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불로 연단한 정금을 그 당시에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도 구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즉, 불로 연단한 금은 순전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참 믿음의 부요함입니다. 삶의 열매를 볼 수 있는, 열정이 있는 참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사서 고생을, 시련을 겪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잘 사는 것보다, 믿음으로 살기에 고생하는 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부요하게 됩니다. 기도 응답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또한, 2)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합니다. 그들이 즐겨 입는 검은 밍크와 비교할 수 없는 옷입니다. 사데 교인들 가운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이 흰옷을 입게 된다고 하신 것처럼(3:4-5), 흰옷은 참된 구원의 징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righteousness), 곧 거룩함의 상징입니다. 벌거벗은 우리의 수치, 죄가 가리워지는 옷입니다.
그리고, 3)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합니다. 서론에 언급했듯이 안약으로 유명한 라오디게아 도시였습니다. 육신의 눈에 균이 들어가 눈병에 걸리면 안약을 사서 고치듯이, 영적인 눈에 균이 걸려서 볼 것을 보지 못하니 영안이 열리도록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안, 곧 영적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19절) 고 하십니다. 이는 교회 전체를 놓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가 잘못할 때에 징계할 수밖에 없듯이(잠 3:12. 히 12:6), 교회를 책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교회를 그토록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열심을 내라고 합니다. 회개하라, 회심을 하라고 합니다. 진정한 회개, 삶이 180도 바꾸는 결단을 하라고 합니다. 열정적으로 믿으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저들을 초청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20절)!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교회가 주님을 밖에 세워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교회입니다. 예배는 드리고, 많은 일을 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 이 교회 안에 함께 하시도록 초청이 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밖에 서서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받아들이라는 초청입니다. 주님께서는 들어가기 원하십니다. 그들과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함께 먹고 마시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손으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발로 문 밖에 서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전인격적으로 사랑한다고 말입니다. 얼마나 좋으신 분입니까?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계속 미지근한 행위로 살면 토하여 내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기는 자들에게는, 회개하고 뜨거운 열정으로 맛을 내고 사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참 성도들이 훗날 주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는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놀라운 축복과 특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는 앞의 교회들에게도 하신 맨 끝의 말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22절)라고 끝을 맺습니다. 즉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당시의 일곱 교회들에게만 들려준 말씀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교회들에게도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로 영접하지 않으시고 문 밖에 세워 두신 분이 계십니까?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기회가 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 들어가기 원하십니다.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마음의 문을 여시고 사랑의 주님을 영접하십시오. 믿으십시오. 지난 날의 삶을 회개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인치시고 은혜를 부으셔서 열심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니 예전에 주님을 영접한 것 같았는데 무슨 연유인지 지금은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잘 구별이 되지 않는, 말씀에 대하여 뜨겁지도 차지도 않는 반응을, 행동을 보이고 살지는 않습니까? 현재 자신의 편안한 생활에 만족하시면서 안이한 종교생활 말입니다. 그래서 설교가 부담이 없어야 합니까? 일주일 내내 먹고 사는 일에 힘썼으니 교회에 와서는 쉬고, 위로 받기 위하여 오는 것입니까? 그러니 설교가 그저 구수한 옛날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예화로만 가득찬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죄에 대한 책망과 지적이 없어야 합니다. 전혀 십자가의 복음이 필요 없습니다. 편하게 믿어야 합니다. 교인인 것 같은데 전혀 말씀에 대하여 뜨겁거나 차갑지 않는 교인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 교회, 교인들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주님으로부터 사랑의 초청을 받고도 그 가치를 모르고, 그저 이 세상에서 잠시 편하게 살려고 적당히 종교생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가련하고 가난하고 곤고한 사람들입니다. 벌거벗은 수치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이 부족한 종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영의 귀와 눈이 활짝 열려 말씀에 반응을 보이며, 육적인 일보다는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갖고 열심을 내라고 하십니다. 경건의 시간, 기도 생활, 성경을 공부하며, 힘써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라고 합니다. 찬양과 경배의 생활에, 말씀을 듣고, 뜨거운 사랑을 가지고 섬기는 일에 마음을 쏟으라고 하십니다. 주위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열정을 갖고 복음을 전하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됩니다.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뜨거운 열정으로,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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