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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0-07-12 (일) 10:1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31    
작아지고 낮아져야 (눅 9:46-50)


성경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양으로, 신부로, 신자 혹은 성도로, 혹은 제자로 일컬어집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명칭이 자녀라는 말입니다. 약속의 자녀, 빛의 자녀, 낮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 사랑 받는 자녀 등 말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이 놀라운 진리 안에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입양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권속이 되어 그 형상을 나타내며, 하나님이 소유한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보호, 능력, 돌보심 등 모든 자원을 영원히 풍성하게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의 또 다른 면은 우리는 자녀로서 불완전하고, 약하고, 종속되고, 미성숙하고, 아직 더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변화산에서도, 그리고 지난 주일 살펴본 대로 간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들의 귀신을 쫓아내시며 고쳐주시고 나서도 이제 메시아로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놀라운 기적을 행하자 하나님의 위엄, 그 크심에 놀랐다고 했습니다(43절상). 오늘 주제가 바로 누가 더 ‘크냐(be great)’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46절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한 공관복음 병행구절(마 18:1-5; 막 9:33-34)에 의하면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있었는데, “제자 중에서 (천국에서) 누가 크냐” 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느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누가 총리가 되고, 누가 무슨 장관이 되느냐는 논쟁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이 수없이 가르쳐온 겸손에 대한 진리는 다 잊고 말았는지 참으로 기가 막힐 따름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도 실제로는 받아들이지 않는, 삶에 적용하지 않는 그들이었습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관한 교훈도 그렇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께서 그 나라를 세운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고 (물론 재림하셔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재창조하시지만), 이제 임하는 그 나라는 영적인 나라, 즉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다스리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이제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그 나라를 세우실 줄 아직 오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반복해서 말씀하신 고난과 십자가 죽음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사 6:9) 하신 말씀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듣기는 들었어도 깨닫지를 못하였고, 보기는 보았어도 이해하지를 못하였습니다. 겸손에 대한 개념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제 죽으실 예수님을 쫓을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아닌 자신들을 위하여 고난과 죽임을 당하실 주님에 대한 동정도, 위로도 3년 가까이 데리고 다니며 가르쳤던 제자들에게서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던 바로 전 날, 최후의 만찬을 함께 나누던 때도 누가 더 큰 자리에 앉을 것인가 변론하였으니(눅 22:24)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교훈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으로, 공명심이나 명예를 위해 교회를 섬기거나 봉사하는 성도들에게 작아지고 낮아져서 겸손한 태도로 주의 일을 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을 보십시오. 47절에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48절)고 하셨습니다. 본문의 어린아이의 헬라어 원어(παιδίον) 뜻은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뛰기 시작한 2-3살 정도의 아이를 가리킵니다. 정말 작고,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처럼 작고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모습을 봅니다.
48절에 “영접하다”라는 단어가 4번 반복됩니다. 당시 이 단어는 그냥 환영하는 정도가 아니고 잘 대접하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한 가족처럼 대하며 돌보는 것을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유명인사나 부자, 권력이 있는 자들은 환영하고 잘 대접합니다. 그러나 무명인사나 별 볼일이 없는 사람, 힘 없고 연약한 사람, 노숙자 등은 대접은커녕 결코 환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니까요. 이기적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다면 이해하겠는데, 믿는 사람이 그러면 곤란하지요.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렇게 작고, 연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받아들이며 대접하면, 곧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대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이는 동기가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이 세상에서 부와 명예가 있고 권세있는 사람처럼 환영받고 대접받는 사람이 큰 자가 아니라, 작고 낮은 자로서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환영하고 대접하는 자가 큰 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수님을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환영하고 대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치 예수님이 크신 분인 것처럼, 예수님처럼 사람들 가운데 낮고 천하며 작고 연약한 그들을 영접하며 돌보는 자가 곧 큰 자라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를 세우시고 제자들에게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고 하셨습니다.
높아지고 커지고 싶은 너희들이 “돌이켜,” 회개하여 낮고, 작은 아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하십니다. 교만한 삶에서 겸손한 삶에로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십니다. 교만 곧 죄인의 길에서 겸손, 곧 의의 길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기를 바라며 예레미야의 기도를 종종 해야 합니다. 자꾸 높아지고 커지고 싶은 교만이 나올 때마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렘 31:18) 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첫 설교 산상수훈 팔복의 맨 처음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심령이 낮아지는, 겸손에로의 부르십니다. 정말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무가치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애통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마 5:4, 6). 자신의 죄를 자신의 힘으로는 정결케 할 수 없음을 알기에 십자가를 바라보며 마음이 정결케 됨을 사모합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전혀 가치가 없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조금도 원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보다 주님을 위하여 영적 전쟁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핵심은 곧 겸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의 중심에 자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늘 작아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부모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4)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의 변화된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자만하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겸손하고 낮아지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라면 당연히 그런 모습이 있어야 하며, 그런 자가 하나님 아버지께 칭찬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어린아이라고 해서 죄가 없다는 것도 아니고, 전혀 이기적이 아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도 부패하고 타락한 죄성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진하고, 천진난만하며, 부모를 철저하게 의지합니다. 크게 되고자 하는,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없습니다. 바로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에는 자신을 낮추는 자가 높아지며,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작은 자라고 여기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크게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신을 낮추사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자기를 낮추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자리가 없습니다. 자신을 작게 비우면 비울수록 그 빈 그릇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선물들로 채워주실 것이 많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에다 영광, 영예 등이 채워질 것입니다. 크게 하시며, 높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복음은 예수 믿으면 자신의 행복과 성공, 부와 건강 가져다 준다는 것인지 몰라도, 참된 복음은 예수 믿으면 내 자신은 낮아지고, 죽어져서 내 삶에 예수님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자꾸 내 자신이 나타나며, 이 땅에서 무엇인가 영광을 얻고자 하면 하나님 나라에는 부적합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48절의 말씀에 요한이 질문을 합니다.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49절), 예수님 생각은 어떠한지 묻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기는 하는데 12제자들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 역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룹에 끼어야만 그런 특권을 행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50절)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만약 그들도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한다면 그들도 역시 우리 중 하나이니 환영하고 영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들도 낮아져서 주님의 이름으로 작고, 약하고, 돌봄이 필요한 자들을 섬긴다면 그들도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시민이 된다는 것은 무슨 membership card 가 있어야 하거나, 무슨 직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세를 인정하고,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고, 의지하면서 작고, 약하고, 병들고, 어려서 돌봄이 필요한 자들을 섬긴다고 한다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 시민이며, 큰 자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열쇠는 누구의 이름으로 행하며 섬기느냐는 것입니다. 동일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며 섬긴다면 다 하나님 나라의 권속이요, 형제요, 자매이니 환영하고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자녀는 성장해야 하고, 성숙해져야 하는데 그 동안 얼마나 성장하셨고, 성숙해지셨습니까? 점점 우리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데 신앙생활의 연륜이 깊어질수록 그렇게 닮아가고 있습니까?
아니, 신앙생활하는 우리의 관심은 온통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높아지고 싶고, 다른 사람보다 커지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처럼 자신을 낮추시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입니까? 만약 작아지고 낮아지기 원하신다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섬기기 원한다면 확실히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참된 성도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고, 순전하고,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세상 명예나 지위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주님만 의지하며 자꾸 작아지고, 낮아지려고 합니다. 사실 그러면 주님께서 높여주시고, 크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무엇보다 세계관(세상을 보는 눈), 가치관이 달라야 합니다. 이기적 관심이나 높아져서 남들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관심을 버리고, 섬기려고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작다고 생각하는 자들, 가진 것도 많이 없고, 약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 고아나 과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겸손히 섬겨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6하-10)고 하였습니다.
나의 교만을 회개하며, 애통하면서 겸손히 나를 낮출 때에, 작아질 때 나중에 하나님께서 높이시고 크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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