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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2-18 (일) 02:2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16    
왕의 탄생 (마 1:18-25)



이 세상에서 예수(Jesus)라는 이름만큼 많이 불려지는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급할 때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에도 불리어 지는 이름이요, 놀랄 때에도, 우리의 기도와 찬양에도 수없이 불리어 지는 이름입니다. 또한, 미국 사람들의 입에서 너무나 쉽게, 기분이 나쁘거나 욕을 할 경우에도 불리어 지는 이름이 예수(Jesus) 입니다. 성경에도 무려 600번 이상이나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올해 성탄절을 앞두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주신 이름 "예수"를 다시금 생각해 보며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의 족보를 1절부터 17절까지 열거하며, 예수님은 합법적인 다윗의 자손이며 연약한 죄인들이 그 족보에 함께 함으로 은혜의 왕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오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또한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심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은혜의 왕이 하나님(신성)으로서 이 땅에 탄생하심을 가르쳐 줍니다. 실제로 이 땅에 참 하나님이 성육신(incarnation) 하신, 은혜의 왕이신 아기 예수께서 탄생하신 역사적인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오래 전에 예언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 인용되어 있는 이사야 7장 14절 훨씬 이전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 후손(seed)이라는 뜻을 넓은 의미의 자손으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좁은 의미의 씨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씨(spe,rma, sperm)는 원래 남자가 주는 것인데, 여자의 씨로 메시야의 탄생을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예수님 임신은 사람의 씨가 아니라 성령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갈 4:4)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리아와 정혼(약혼, betrothed)하였던 다윗의 자손 요셉은 아내 마리아가 자신과 성관계도 없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난 후에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유대 율법에 의하면, 정혼은 곧 결혼이나 다름이 없기에 아내, 남편으로 불렀고, 정혼한 아내가 간음한 경우는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었습니다(신 22:23-24). 그러나 요셉은 믿음이 있는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마리아를 사랑하였기에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정리하고자 한 것입니다(19절). 하나님께서 신앙있는 사람을 사용하신 것을 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아무것도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합니다(20절). 잉태된 아이는 성령으로 된 것임을 말하면서 마리아는 동정녀(virgin)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낳거든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고 합니다. 사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도 나타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0-31)고 하였습니다. 이유는 “예수” 그 이름이 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다(21절).
예수는 구약의 여호수아(Jehovah is salvation)와 같은 이름입니다. ‘구원한다, 고친다, 건진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오셨습니다.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며 구세주로 믿는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잘못 알고 있듯이 누구나 다 구원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분은 예수님 한 분입니다. 석가도, 마호메트도, 로마 교황도, 공자나 그 누구도 우리의 죄를 사하시지 못합니다. 지난 주일 요일 1장 강해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롬 6:23). 죽음도 죄 때문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죄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길이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요 14:6).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이튿날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 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라고, 세례 요한의 증거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세상 죄를 지고 대신 죽을 희생제물을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밖에는 우리의 죄를 사하실 분이 없으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구속사역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십시다.

둘째로, 임마누엘 입니다(23절).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주전 730년경에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되어진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마태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23절; 사 7:14)의 예언을 성취시키시는 천사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라는 의미라고 가르쳐 줍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완전한 사람이자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신 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택한 백성들과 늘 함께 하셨던 역사가 증명하듯, 아니 예수님께서 직접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말입니다(마 28:20). 심지어 자신 스스로가 말씀하신 것을 지키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함께 하시는 분입니다. 왜 함께 하십니까?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렵고 힘들 때 위로하고 돕기 위하여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핍박하는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영국의 유명한 존 웨슬리는 그의 생애 마지막 편지를 노예해방운동을 위해 힘쓰고 있던 젊은 하원의원
William Wilberforce 에게 보냈습니다. 너무 힘들어 하는 그에게 ‘하나님이 이 일을 하도록 귀하를 세워주신 것이 아니라면, 귀하께서는 마귀들의 반대로 이미 소진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누가 귀하를 대항하겠습니까? 그들 모두를 합친다 해도 그들이 하나님보다 더 강할 수 있을까요? 선한 일에 결코 지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악한 노예제도가 깨끗이 사라지는 그날까지 그분의 이름으로 이 일을 계속해 나가십시오. 귀하를 젊을 때부터 인도해오신 하나님이 이 일에 그리고 모든 다른 일들에 계속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2000여년 전에 아기 예수로 오신 은혜의 왕께서 지금도 함께 하시며, 영원토록 함께 하실 줄 믿으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늘 함께 계시니 안심할 일이요, 즐거워할 일인 동시에 다 보고 계시니 두려워하며,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로 입니다(18절).
18절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 "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에서는 “옛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1)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 받은 자(Anointed One)’라는 뜻으로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12월 구역모임에서 공부한 내용입니다.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왕의 직분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앞으로 되어질 일들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제사장(중보자)으로, 온 나라를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입니다.
눈이 먼 자들에게 빛으로, 귀가 먼 자들에게 들을 수 있게 함으로, 앉은뱅이에게는 일어남을, 문둥병자에게는 깨끗함을, 포로된 자에게는 해방을,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죽은 자에게는 부활을 가져오셨습니다. 소외된 자들에게는 친구로, 고아와 과부에게는 아버지로 남편으로 오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초림(강림)은 인간들에게 참으로 복입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화가 되지요. 훗날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에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참으로 그리스도, 주(Lord)이십니까?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분이 다스리도록 자신을 포기하고 사십니까? 성령의 인도 따라, 성경 말씀 따라 사십니까?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아마도 안도의 한숨을 쉬며 평안을 되찾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천사가 하신 말씀 그대로 순종하여 마리아를 데리고 와서 해산할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24-25절). 참으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경건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그의 나라를 위하여 귀중한 도구로서 쓰여진 사람이었습니다. 순종했던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과 달리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입니다.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신 까닭에 인간의 죄를 온전히 대신하여 드릴 수 있었던 희생제물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보통사람과 다름없이 남녀 성관계에서 태어나셨다면 그 분도 죄인인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신비한 진리를 믿지 않습니다. 인간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으로는 이해 불가능합니다. 믿음으로만 이해 가능한 일이지요. 물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하신 초자연적인 기적들은 그가 초자연적으로 탄생하였음을 입증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오늘 말씀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 믿어집니까? 성령으로 태어나신 분으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이미 성령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믿을 수가 없는 진리입니다.
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되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장 높이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고 하셨습니다. 즉 여러분이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the Lord)’라고 시인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말로만 아니고 행동으로 하면 더욱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반대로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지 못하면, 행동으로 예수님이 주되신 것처럼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누가 여러분에게 ‘많은 사람이 그의 탄생을 기뻐하며 축하하는 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실 수 있습니까? 정말 자신 있게 ‘그분은 나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하여,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그분은 나와 늘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나의 구주로서 나를 다스리고 내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라고 말하실 수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할렐루야’ 입니다.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입니다. 정말 왕의 탄생, 성탄을 축하할 일입니다. That’s why it is most wonderful time of the year!

예수! 그 이름은 능력의 이름입니다. 죄를 사하는 능력, 우리의 대적을 이기는 능력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름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요 16:24).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구세주,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예수! 그 분을 영원토록 찬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감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높고 큰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신 예수
       나를 위하여, 내 죄 위하여
       지극한 사랑으로 비천한 말 구유에 나신 이
       그 이름 예수!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잘 곳이 있어도
       인간은 늘 고독하다는 것을 아시고    
       아플 때에도, 힘들 때에도, 어려울 때에도
       영원한 친구로 함께 하려고 오신 이
       길을 잘못 갈 경우에도, 뱀의 유혹에 넘어가도
       돌아서길 기다리며 함께 하시는 이  
       그 이름 예수!

       이리 저리 방황하며 누구를 따라가야 할지 모를 때
       온유하고 자비로운 손길로 인도하시는 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역사를 주관하실 뿐 아니라  
       연약하고 작은 나를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이
       그 이름 예수!

       할렐루야!
       찬양을 받으실 이름
       감사를 받으실 이름
       영광을 받으실 이름
       그 이름 예수!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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