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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9-12 (월) 08:5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90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요 14:1-11)
사람들은 보통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근심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몸이 아파 병원에 가서 검진을 했는데 의사로부터 중한 병으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근심하게 됩니다.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어도 근심을 하게 됩니다. 9 11 테러 같은 사건을 보면서 혹시 우리 주위에는 테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을 살면서 보고 깨닫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은 이 세상은 온갖 고통과 시련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인에게서 난 사람은 사는 날이 적고 괴로움이 가득하며”(욥 14:1) 했고,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나와서 고생과 슬픔을 보며 나의 날을 수욕으로 보내는고”(렘 20:18)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근심과 염려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는 자들은 믿음 때문에 근심과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심과 염려를 한다 해도 잠시 잠깐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첫 설교에서도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마 6:34절상)고 하셨습니다. 이유는 근심이 찾아온다 해도 주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고후 1:3)고 하였으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근심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혹은 믿음이 있다 하더라고 죽은 믿음이거나 그 믿음이 작고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듯이 주님께서 가시는 고난의 십자가의 길은 제자들이 갈 수 없다고 하니까, 베드로가 주님께 가시는 길을 물었습니다(요 13:36). 그랬더니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후에는 주님을 따라 가지만 지금은 그 길을 못 간다고 했더니,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다른 사람들이 다 버려도 자기는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모여있던 11제자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제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태까지 3년이 넘게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주님을 바라보면 먹을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주님을 바라보면 고쳐주셨습니다. 정말 어린아이가 부모님을 철저하게 의지하고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또한 그들은 며칠 전만 해도 이제 곧 주님이 메시아로서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하여 함께 나라를 다스릴 줄 알았으나 이제 곧 주님이 죽으신다고 하시면서 그 길을 떠나신다고 그러니 마음에 근심이 가득찼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오늘 본문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1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 ‘근심하다(be troubled)’의 헬라어 원어는 마음이 불안하여 요동치는 것을 말합니다(참고- 요 5:7, 11:33, 13:21). 심령이 아주 괴로운 상황을 말합니다. 이 근심의 뿌리는 붙잡고 있던 것에 대한 상실감 혹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자신의 주위 환경의 어떤 변화로 인한 불안과 공포심입니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과 헤어지게 되었으니 어떻게 하나’하는 두려움이 엄습했을 때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믿음을 가지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 “믿으라”의 헬라어 원어는 현재명령형입니다. 계속하여, 지속적으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후에 흔들릴 제자들에게, 아니 이미 마음이 흔들린 그들에게 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를 믿으라고 단호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어떤 믿음, 무엇을 믿는 믿음으로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우선, 그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러 가시는 주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2-3절)고 하셨습니다. 이미 하늘에 아버지 집이 있는데 주님께서 처소를 예비하신다는 뜻은 그 처소가 예비되려면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여야 함을 의미합니다. 부활 후에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천국 문을 열어 놓으시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오신다고 하십니다. 이 뜻은 짧게는 이제 자신이 죽고나서 장사한 지 삼일 만에 곧 부활하여 만날 것을 뜻합니다. 길게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마지막 날에 재림하시면 우리의 변화된 영광스러운 육체를 친히 천국으로 인도하셔서 자신과 함께 있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아버지의 집, 천국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고통도 이길 수가 있으니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질문할 것입니다. ‘아니 지금 당장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데 무슨 죽고 난 후의 천국 이야기를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천국을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천국은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모든 행복의 극치를 맛보는 곳입니다. 우리 영광스러운 몸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과 동일하게 되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영원토록 눈과 눈을 맞대며 교제하면서 사는 곳입니다. 어떤 고통도, 눈물도, 슬픔도 없는 곳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천국만 생각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천국을 믿는 사람들은 비록 세상 근심이 찾아와도 내 아버지 집을 사모하면 심령이 뜨거워지며 감격하여 어떤 근심도 털고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안이나 두려움과 맞서서 싸울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 천국으로 인도할 자는 주님 밖에 없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제자 중 도마가 천국 가는 길을 물었을 때에(5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 만이 아버지 집, 천국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요, 주님 만이 천국에 대하여 가르쳐 주는 유일한 진리요, 주님 만이 천국에 살게 하는 유일한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기독교 고전을 쓴 Thomas a Kempis 라는 화란의 개혁주의 신학자는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 길 없이 가는 것이 없고, 진리 없이 아는 것이 없고, 생명 없이 사는 것이 없느니라. 나는 너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길이다. 나는 너희가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다. 나는 너희가 반드시 소망해야 할 생명이다. 나는 거룩한 길이다. 나는 무오한 진리다, 나는 다함이 없는 생명이다. 나는 인생의 지름길이요, 주권적인 진리요, 참 생명, 복된 생명, 창조되지 않은 생명이니라’고 하신 것이다.
물론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저마다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면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또 천국의 정의가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종교의 창시자들 가운데서 내가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고 말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의 죄를 위하여 자신이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다 같고, 하나님에게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다고 합니다.
또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주님처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주장하며, 그 말을 뒷받침하는 기적들을 행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니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한 본문 8절에서 빌립이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니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9절하-11절)고 말한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님 자신이 하나님으로서의 절대주권적 권위를 갖고 계심을 선포하면서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에서는 우리들이 예수님 외에는 하나님 앞에 나갈 길이 없다는 진리에 대하여 독선적이다, 배타적이라고 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여러 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어느 종교나 믿어도 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말이 귀에 달콤하게 들린다면 그 사람은 문제가 심각합니다. 너무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값없이 은혜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종교처럼 무슨 일을 열심히 하여 공로를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을 거저 받았기에 은혜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목회자로서 교인들을 바라볼 때 제일 안타까울 때가 근심과 염려로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너무 낙심하여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마치 세상 모든 근심을 혼자 지고 가는 듯한 모습을 볼 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성도로 부르셨다면 세상 일 때문에 근심하라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믿어야 합니다. 얼마 있지 않아 아버지 집에 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미 다 준비해 놓으신 주님이십니다. 문제는 마음이 천국에도 있고, 이 세상에도 있는 것입니다. 양 다리를 걸치는 것입니다. 정말 좋은 쪽을 택하십시오.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을 택하십시오. 이 세상은 잠시 잠깐 지나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머리 속에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에 대한 욕심으로 복잡할 때에 근심하게 됩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 때문에 근심이나 염려를 하게 됩니다. 혹은 오래 묵은 고정관념 때문에 근심과 염려를 하는 것을 봅니다. ‘나는 안돼’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오랫동안 자리잡은 사람들은 쉽게 근심합니다. 작은 변화도 싫어하며 현실에 안주하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위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쉽게 근심합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다 사탄이 조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근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신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 집, 천국보다 더 좋은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아니면 그 곳에 갈 사람이 아무도 없고, 우리 예수님 만이 하나님과 동등하시기에 주권적인 권위를 가지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이런 말씀을 마음에 담고 있으면 하늘의 영광이 우리 마음을 가득히 채우기 때문에 근심이나 염려가 생겨도 금방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하늘의 영광 앞에 이 세상 모든 근심은 작게 보이게 되고, 그 어떤 문제도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리 미국 경제가 계속 바닥을 치고 있어서 장사가 잘 안 되어도, 잘 낫지 않는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을 겪고 있어도, 자녀 문제나 비자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아도 근심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천국의 소망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의 것들입니까? 천국을 생각하면,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 슬퍼 울다가도 웃게 됩니까? 세상 근심과 염려가 마음을 짓누르다가도 천국을 생각하면 벌떡 일어나서 찬송을 부를 만큼 가슴이 뜨거워집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천국 이야기를 해도 눈 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들로 낙심하며 계속 근심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 해도 죽은 믿음이던지, 너무 작은 믿음입니다. 전혀 삶에 유익하지 않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근심과 염려스러운 일들을 만날 때마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나? 왜?’라는 질문보다도, ‘이런 어려운 고통의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내게 원하시는가?’라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이 자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해야 합니다.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 앞서간 믿음의 영웅들은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사는 한 죄로 인한 근심과 염려가 아주 없을 수는 없지만, 그 때마다 믿음으로, 천국 소망과 주님 사랑을 기억하고 이기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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