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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9-26 (월) 07:3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87    
주님을 사랑한다면(요 14:15-24)
3년여 주님만 바라보며 쫓아 다니던 제자들은 철저하게 주님에게 의존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떠난다고 하시니 제자들은 불안하고 낙심이 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낙심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1-11절). 그리고는 이 후에 그들이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보다 더 큰 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12-14절).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간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간구는 다 시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또 하나 중요한 약속을 하십니다. 바로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물론 이 약속은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시는 약속이십니다. 본문에서 15절을 보시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하셨고, 동일한 내용의 말씀을 21절에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하셨고, 24절에서도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주님을 사랑하여 그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만드신 목적이요, 우리 인간들이 살아야 할 이유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만 한다면 인간들은 불행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온갖 질병이나 비참한 일들이 찾아올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물(spiritual being)인 천사들에게나 가능했습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육체를 가졌기 때문에 혈기가 있고, 성욕이 있고, 또 먹고 살아야 하는 육체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즉 육체의 죄성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교만과 죄악에 빠져서 하나님 앞에 마치 중증 장애인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니 그 어떤 선한 것 하나 할 수 없는,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방불한 영적 시체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죄인인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살려주셨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시어서 성령님을 보내주심으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보혜사(保惠師, helper)라는 헬라어 원어는 ‘옆에서 돕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떤 다른 번역에서는 위로자, 상담자(counselor)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자를 사용한 우리 말 번역이 더 정확한 번역입니다. 마치 어린 아기를 돕는 유모처럼,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처럼, 법정에서 피고를 돕는 변호사처럼, 운동 선수에게 필요한 기술을 가르쳐 주고 훈련시켜 주며 실제 게임에서 작전을 지시해 주는 코치처럼 우리를 도와주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답답한 일을 만났을 때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조언을 해주는 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16절에 이 보혜사 성령님을 말씀하실 때에 “또 다른”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말이나 영어에는 또 다른(another)이라고 할 때에는 구별이 잘 안 되지만, 헬라어에서는 이 “또 다른”(another)에 해당하는 단어가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같은 종류인데 다른 것을 말하는 ajllo" 와 전혀 다른 종류를 가리키는 eJtero" 가 있습니다. 그런데 16절에서 사용한 단어는 바로 같은 종류의 다른 것인 ajllo" 를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과 본질상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똑 같은 분으로서 똑 같은 능력과 지혜와 신성을 가시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가운데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령님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천지 창조 때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 바로 성령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분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비인격적으로만 가르치는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인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과 똑 같은 인격체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고 하였고, 이어서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4)고 하였습니다. 두 분이 똑 같이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즉 주님께서 승천하시고 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영원토록 제자들과 함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에 우리 믿는 자들 안에서 계속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17절에도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리로 우리를 살리시고, 진리로 우리를 먹이시고, 진리로 우리를 치료하시고, 진리로 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는 비결은 딴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잡으면 됩니다. 아 멘!

사실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하는 3년여 동안은 주님이 부모님과도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먹히고 입히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데리고 다녔으며,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었는데, 이제 주님이 떠나신다고 하니 모두 부모 없는 고아처럼 된 듯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18절)고 약속하셨습니다. 곧 다시 오겠다고 말입니다. 부활 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시는 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승천하시고 난 후 보내실 성령님의 능력으로 찾아오신다는 뜻입니다.
고아와 부모가 있는 아이와 언제 차이가 납니까? 같이 놀 때에는 별 차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녁 때가 되면 구분됩니다. 해가 지면 부모가 있는 아이들은 서둘러서 부모가 있는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고아들은 집에 들어가 보아야 부모가 없기 때문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방황합니다.
마찬가지로 신자와 불신자가 구분이 가장 잘 될 때가 언제인 줄 아십니까? 바로 죽을 때입니다. 죽을 때 보면 그 차이가 분명히 납니다. 불신자는 죽을 때 불안과 괴로움 가운데 벌벌 떱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아버지 집에 돌아가는 것이기에, 주님 만나는 시간이기에 평안함이 넘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믿고 난 후에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계시기에 고아가 아닙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가만히 보면 신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고아 같이 삽니다. 모든 고민을 혼자 다 합니다. 모든 계획을 혼자다 짜고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다 하려고 합니다. 영적 고아입니다. 반면에 어떤 신자들은 모든 일을 다 아버지와 상의하고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일을 감당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시행하시는 아버지가 함께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자세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19절)고 하셨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삼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고 영원히 살 것을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하여 정말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말씀들을 지키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21절에 다시 한번 주님 사랑하면 그 말씀을 지킨다는 이야기를 강조하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성령님이 강림하신 후에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되고, 영적으로 주님과 하나가 됩니다. 신랑과 신부가 하나가 되듯이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무슨 일을 잘 해보자고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이는 이유는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모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사랑하면서 말씀을 지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던 가롯 유다가 아닌 야고보의 아들 유다(눅 6:16), 마태는 다대오라고 불렀던(마 10:3) 유다가 묻습니다. 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만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나타내지 않느냐고 말입니다(22절). 아직도 자신의 기대는 주님께서 메시아로서 왕으로 임하셔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었기에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대답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23-24절)고 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 우리가 오셔서 거처를 ‘주님 사랑하여 말씀을 지키는 자’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며 말씀을 순종하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믿지 않는 자와 믿는 자, 성령님이 계신 자와 없는 자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들을 지키며 순종하십니까?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도 오늘 말씀을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고 하였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4)고 하였으며,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고 하였습니다.
중요한 진리는 믿는 자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그 말씀도 지키지 못하지만, 성령님이 계신 성도들은 주님 사랑하며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모두는 정말 믿는 자들로서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고아가 아닙니다. 늘 도우시는 성령님을 의지하고 주님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이 세상에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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