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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1-31 (월) 12:25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854    
올바른 기도 (마 6:5-8)
우리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기도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살 수가 없음을 성경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호흡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혹자가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기도하라고 요청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지도(인도)와 보호, 자비와 용서, 이 땅에서의 필요들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거나, 짧은 형식적인, 외식적인, 혹은 가식적인 기도를 하고 사는 성도들을 봅니다. 사실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능력 있는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문을 보는 시간과 TV나, 비디오를 보는 시간은 많아도 기도하는 시간, 성경 보는 시간은 적습니다.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본문의 문맥은 예수님의 첫 설교 산상수훈 가운데 참된 의(義)를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외적인 종교적 행사에서도 그 참된 의를 행하라고 하시면서, 6장 2-4절까지는 구제에 관한 교훈을 하시면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사람처럼 남에게 보이려고 구제하지 말고, 은밀히 하라고 하신 후에, 5절 이하에 기도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같은 맥락에서 외식하는 사람처럼 기도하지 말라고 합니다. 외식하는 사람의 기도가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올바른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첫째는,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5절).
   5절에 보면 외식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기도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길 모퉁이에 서서 한다고 합니다. 물론 오해하시면 안됩니다. 회당이나 길에서 기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공적인 장소인 회당에서도 기도할 수 있고, 길거리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적(私的)으로 기도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지 못하면서 공적(公的)으로만 기도하는 데, 그것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것을 꾸짖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지적하시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입니다. 그 마음이, 생각이 누구를 향하여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을 향한 형식적인 기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나님께는 진실함이 빠진, 진지하지 못한, 외식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그저 정해진 시간에 형식에 맞추어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는 이미 사람에게 상을 받았다고 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외식하는 사람(hypocrite)의 뜻이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actor)라는 의미입니다. 역할을 가장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은 자신을 나타내는 말이나 행동이 아니지요. 꾸며서 만들어서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래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기도라야 합니까? 6절에 "너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도는 반드시 골방, 나 만의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해야 된다는 말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누구에게 하는 기도냐는 것입니다. 장소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도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와는 다릅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기도가 아니기에 골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사실상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는 공적 기도시간보다 은밀한 사적인 기도시간이 당연히 많아야 합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계실 때에 매일 새벽에 홀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막 1:35). 때때로 홀로 철야기도도 하셨습니다. 따르던 무리들을 피하여 조용한 장소를 찾으셨던 분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다른 사람이나 환경의 지배를 피해서, 아무 방해 없이 오로지 하나님 아버지 한 분하고만 교제를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만 일심(single mind)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가장 중요한 비밀은 우리의 말보다, 우리의 비밀스러운 마음(heart), 갖고 있는 생각(mind)을 보십니다. 정말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 만을 향하여 토하여 내고, 그 분만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경배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응답을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께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도의 골방이 있습니까? 여러분 집의 여분이 있는 방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하나님 만이 만나 교제하는 시간과 공간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세상 것들에 대한 생각은 다 버리고, 겸손히 하나님 만을 생각하며 전심으로(sincerely) 그 분의 뜻을 구하는 골방입니다. 사실 그러한 골방에서 하나님과 비밀스러운 교제를 하고 사는 성도들이 공적 기도모임에도 열심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새벽기도이든 수요기도회 시간이든 기도모임이나 집회에 잘 빠지시는 분들이 개인적으로 열심히 기도할 것 같습니까? 거의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적으로 기도하시는 것을 보면, 그분이 사적으로도 얼마나 기도의 삶을 사는지 알 수 있지요. 정비례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정말 살아계신 거룩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둘째는,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7절).
   7절에 주님께서 지적하시기를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는 중언부언,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길게,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마치 이방인들이 우상에게 하는 기도처럼 말입니다. 중언부언의 뜻은 의미 없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내용보다는 양이 많아야, 기도의 시간이 길어야 그들의 신이 기도를 듣는다고 믿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엘리야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맞붙은 적이 있습니다(왕상 18:25-29). 바로 그 때 바알의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바알 신에게 기도합니다. 그래도 아무 응답이 없었으나 엘리야는 단 한번의 기도로 제단에 불이 떨어집니다. 참신과 거짓 신이 구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에 폭동이 일어났었는데 이방인들이 아데미 신에게 기도할 때에도 저들은 두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행 19:34) 라고 부르짖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불교 신자들의 염불 소리나 천주교 신자들이 묵주를 돌려가며 하는 기도 소리는 이와 비슷하지요. 정말 중언부언합니다.  
   물론 오해하지 마십시요. 똑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까지 반복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말입니다. 비유로 억울한 과부의 끊임없는 간청을 들으시는 재판관의 비유 말씀을 주신 적이 있지요(눅 18:1-7). 또, 짧은 기도 만이 좋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늘 오랫동안 하나님께 무릎 꿇는 기도였습니다. 공적인 기도는 짧아야 하지만 사적인 기도가 짧고 경박한 것은 사실 영성이 얕은, 갓난아이 신앙의 증거입니다. 힘없고 간단한 기도는 결코 우리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사탄 마귀를 대적할 수 없습니다. 급히 급히 대충 때우는 기도의 시간은 항상 우리를 대충 대충 꾸려가는 가난한 영적인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의미 없는, 진실한 마음이 없는 반복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외식하는 사람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게 하려니 기도가 길어질 수 밖에 없지요. 기도의 내용이 어떠냐는 것입니다. 짧아도 온 마음을 쏟아 붓는 능력 있는 기도를 말합니다. 마음을 쏟아 붓지 않는 중얼거림, 기도하는 자신의 마음 속에 별로 다가와 오지 않는 말들의 나열, 하나님 앞에서 의식적으로 낭독하는 문장과 같은 이야기들이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무엇을 알린다든가, 하나님을 설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요. 기도는 하나님 앞에 진솔하게, 목적을 가지고, 양심껏, 내 자신을 드리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나의 무거운 짐들과, 필요들, 하나님을 갈망하는 목마름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간절한 간구를 듣기 원하십니다. 우리와 진정으로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안타까운 것을 하나님께서 수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몇 몇 자녀를 제외하고는 별로 아버지와 교제를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서운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응답이 없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떠합니까? 물론 여러분의 기도생활 만을 바꾼다고 해서 약속된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기도의 뿌리는 삶 자체입니다. 삶을 능가하는 기도도 없고, 기도를 능가하는 삶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오늘부터라도 여러분의 기도생활을 고쳐 나간다면 여러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외식하는 사람들의 기도처럼 허례허식(虛禮虛飾)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진솔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올바른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께 헌신된 마음으로,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즉 하나님 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드리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던 안보던 관계하지 않고, 사람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에 초점을 맞추며, 온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붓는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나의 은밀한 마음과 생각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은밀히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세상에 속하여 살지만 때때로 세상과 결별하여 하나님 앞에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일에 붙잡혀 살며, 잠깐 이 세상의 성공을 맛보기 위하여, 육신적 만족을 위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깨어있기 위하여는 하나님과 단둘이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바쁠 때에 기도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나중에 시간이 주어져도 기도하지 못합니다. 새해부터 여러분의 기도 패턴을 점검하십시오. 당장 실천에 옮기십시오.
   교회 역사를 보면 영적으로 뛰어났던 인물들은 한결같이 자연과 매우 친하게 지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진리입니다. 사람들 속에 묻혀 있을 때 보다는 자연 속에 더욱 하나님과 홀로 만나는 도움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독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기도의 영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찾고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기에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큰 일들을 해 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때때로 고독하게 하실 때에 우리를 찾으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시간이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큰 일을 보여주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의미 없는 말의 나열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 내 진정 소원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듣고 응답하실 줄을 믿는 진정한 확신 속에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의 진솔한 기도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우리가 원하거나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실 줄로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미 2011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기도 생활이 2010년보다 나은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는 여러분 개인적인 은밀한 기도시간들이 깊어지고, 공적인 기도모임에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아니고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기도 생활로 삶이 변화되고, 남은 인생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풍성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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