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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6-12 (토) 02: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769    
[6/6/04] 함께 일하는 능력
함께 일하는 능력 (느헤미야 3:1-32)
느헤미야 1장과 2장을 본 지가 오래되어 다 잊어 버리셨을 것 같아 잠시 요약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마치고 제 1 차로 스룹바벨의 인도로 귀환하고, 제 2 차로 에스라의 인도하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들이 성벽 재건에 실패한지 14년이 지났습니다.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궁에서 경호실장과 같은 권력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던 유대인 느헤미야는 형제 하나니에게로부터 예루살렘 성이 훼파되고 불에 타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기도를 하였고,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악을 놓고 기도했으며, 또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헌신의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 이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제가 뛰어 들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종으로 형통하여 이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그리고는 2장에서, 하나님께서 그를 준비시키시고, 용의주도하게 행동을 개시하여 왕 앞에 은혜를 얻게 되고 왕의 허락을 받아 성벽 재건에 필요한 재목, 군대 장관과 마병까지 이끌고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미리 성문과 성벽들을 정탐하고 일을 착수하게 됩니다. 물론 반대 세력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들을 물리치고 드디어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 함께 읽은 본문 3장을 살펴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습니다. 발음하기도 힘든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누가 성을 건축하고 누가 문짝을 달고 누가 성벽을 건축하여 중수하였다는 기록의 반복입니다. 그래서 이런 본문은 무의미하거나 설교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 한 구절 한 구절 그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라”(롬 15:4)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굉장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에는 자그마치 75명이나 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물론 이는 대표격이 되는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게다가 여기 언급된 직업의 종류만도 대제사장, 레위 사람 제사장, 여리고 사람들, 금장색, 장사꾼, 각 성 총독 아래 일하는 공무원들, 여인들, 성전 수종자들을 비롯하여 15종이나 됩니다. 즉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느헤미야 혼자서 한 일이 아니었다 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다양한 직업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함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는 말입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할 때에는 그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각자 받은 은사를 따라 최선을 다하여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 나아갈 때에 놀라운 능력이 나타난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큰 일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첫째는, 교만하여 그 일을 과소평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별로 준비나 연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미루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되어야,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려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초, 기본을, 원칙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일의 계획과 시작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야 할텐데 그저 닥치는 대로 진행하다가 나중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넷째는, 한꺼번에 많은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한 가지씩 해 나아가도 힘든 데 말입니다. 여러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려니 그 세부적인 일들이 제대로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런 실수를 줄이려면 독불장군처럼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라,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일을 행하심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사용하셔서 더 큰 일을 행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능력입니다.

그러면 1절을 살펴봅시다. 성벽 재건의 시작이 어디서부터 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 합니다. 예루살렘 지도에 보면 양문(羊門)은 맨 위에 있습니다. 그 문을 통하여 성 내로 들어오면 곧 바로 성전을 만나게 됩니다. 제사에 사용할 양을 이 문을 통해 옮겼다 하여 양문(羊門)이라고 불립니다. 양문 바로 옆에 있는 망대가 함메아 망대이고 그 옆에 또 하나넬 망대가 있습니다. 즉 성벽 재건은 양문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함메아 망대, 하나넬 망대, 옛문, 넓은 성벽, 풀무 망대에 이르는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왜 양문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양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는 제사의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무너진 성벽이 여기 저기 많지만 다른 무엇보다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부분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수양회 가기 전 주일에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을 드릴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예배가 교회의 본질 가운데 첫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무너진 많은 것들 가운데 예배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예배에, 찬양에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보혈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의 부으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인간이 왜 무능력해 집니까? 믿음이 역사를 하지 않으면 소망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Douglas McArthur 장군은 ‘신념이 있으면 젊고 의심이 있으면 늙습니다. 자신을 가지고 있으면 젊고 두려움을 가지면 늙습니다. 희망을 품으면 젊고 절망을 품으면 늙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삼일교회 전 병욱 목사님은 이 희망을 ‘정신’으로 봅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이 다 죽었다 하더라도 정신이 살아있으면 그 민족은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전세계에 흩어져 있었지만 다시금 나라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먹을 것, 입을 것, 잘 곳이 없어서 입니까? 돈이 없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영혼이 굶주려 삶에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고, 꿈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꿈이, 소망이 생깁니까? 예배를 회복할 때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는 예배, 우리 주님이 심령을 만져주시는 예배가 살면 소망을, 정신을 되찾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고귀한 재산은 무엇입니까? 어떤 유명한 사람도, 어떤 조직도 아니고, 건물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가진 재산은 우리 안에 있는 꿈입니다. 소망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잃었던 예배의, 찬양의 감격을 회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막혔던 기도의 문을 다시금 여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귀한 축복의 길입니다. 이제 이 사실을 기억하고 무너진 양문부터 건축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건축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서로에게 격려가 필요합니다. 느헤미야는 자기 주변에 있는 동역자들을 격려하여 주어진 일들을 잘 감당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되는 위대한 사람으로 세울 줄 알았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대한 사람으로 세우고 만들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입니다. 어떻게? 그 비결은 자주 격려해 주는 것입니다. 위로(encourage)입니다. 이 사역은 참으로 귀한 사역입니다. 서로 격려해 줄 수 있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지 않고 서로 비판만 하고 자기 잘난 척만 하는 공동체는 망할 공동체입니다.
지난 수양회 주일 아침에 Sharon Cha 사모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선악과만 가르치지, 생명나무가 있는 것은 가르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옳고 그름만 따지는 것은 결코 사람을 세우고 키우는 사역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주고, 생명이 자라도록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고 해야 정말 훌륭한 자녀로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늘 옳고 그름만 따지는 사람은 결코 함께 생산적인 일을 잘 해내기 어렵습니다. 물론 옳고 그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말씀이 판단하게 하고, 우리는 서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옆 사람보다 잘 나봐야 얼마나 잘 낫습니까? 서로 이해하며 용납해 주고 감싸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하였고,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0-11)고 하였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빌 2:3-4)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말씀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격려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격려를 필요로 합니다.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립니다. 격려하는 데 돈이 듭니까? 큰 힘이 필요합니까? 이제부터라도 우리 경향가든의 가족들은 서로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벽 재건에 동참하지 않은 사람들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치스러운 장면입니다. 느헤미야라고 해서 하나님의 일에 모든 사람을 다 동참하게는 못하였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며” 하였습니다. 다들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이 사역에 참여치 않은 일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드고아의 귀족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그 귀족들은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왔는데도 주의 일에 동참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왜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성경에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한 예가 예수님의 12사도 가운데 가롯 유다입니다. 메시아의 12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로 바꾸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또 바울의 동역자 가운데 데마라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 초창기부터 좇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간에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 버렸습니다(딤후 4:10). 중도 탈락자, 실패자의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 주님을 좇되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충성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 혼자 빠지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일에 동참하여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에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랫동안 무너져 있던 예루살렘 성은 희생제물을 가지고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통과해야 할 양문부터 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참된 예배의 회복, 찬양의 회복이 필요합니까?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회복되기 바랍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우리 하나님이 갖고 있기 때문에, 무너져 있을수록 더욱 예배부터 중수되어야 합니다. 예배가, 찬양이 살게 되면 고리가 풀어지듯이 우리 영혼에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또한 느헤미야가 혼자서 성을 중수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도력 아래 함께 일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격려의 사람이었음을 의심치 않습니다. 느헤미야 뿐만 아니라 75명의 대표격인 사람들도 격려의 사람들이었기에 모두 힘을 합하여 예루살렘 성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격려의 사람입니까? 아니면 비난과 비평을 일삼는 사람들입니까? 우리에게는 격려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실수가 용납이 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공동체이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영광의 대열에서 낙오하는 자가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거의 모두가 예루살렘 성 건축에 동참하는 데 드고아의 귀족들은 동참하지를 않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희생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늘나라 생명책에 성도들의 이름들이 기록됨과 동시에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다 기록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른 교우들과 함께 주의 일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함께 일할 때에 능력이 있습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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