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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1-31 (월) 12:26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889    
성도의 생활원리사 (왕하 22:1-13)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큰 배도 그냥 막 가는 것이 아니라, 뱃 길이 따로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가지 않고 그냥 막 가면 암초에 부딪치거나 해서 사고를 만나게 됩니다. 저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그렇습니다. 그냥 막 가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항로에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항로를 따라서 가지 않으면 대형사고를 내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길이 있습니다. 물론 여러 길이 있습니다. 한자로 길을 도(道)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성도로서 가야 할 길이, 도가 있습니다. 만약 이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가게 되면 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빙 돌아서 시간과 정력을 엄청 낭비한 후에 찾아 가게 됩니다. 오늘은 우리 성도가 걸어가야 할 길(道)에 대하여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참된 성도는 매일 매일의 생활 속에서 자신을 개혁(改革)하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며 제 십자가를 지고 죄성(罪性)과 싸우며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가 속한 가정과 교회에, 이웃과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그렇게 자신을 개혁하며 나라를 개혁하려고 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주전 640년부터 609년까지 이스라엘 남쪽 유다 왕국을 다스렸던 왕 요시야입니다. 불과 8살의 어린 나이로 왕 위에 올라 16세 때부터(대하 34:3) 조국의 왕실과 백성의 오래 묵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 뜻을 굳게 정하고 택하신 하나님의 왕으로, 개혁자로, 참된 성도로 살았던 요시야였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고 그가 자신과 나라를 개혁하는 모습을 살펴보며, 2011년 새해 둘째 주일을 맞이한 우리도 그의 본을 받는 성도의 삶의 원리(原理, principles)를 배우고 실천함으로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생활원리입니까?
       
첫째는, 하나님 중심(God-centered)의 생활입니다.
   요시야는 할아버지 므낫세 왕이나 아버지 아몬 왕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고 하였고, 20절에는 “아몬이 그 부친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라고 하였듯이, 저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악한 죄를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는 달랐습니다. 왕 위에 오른 후 8년이 지난 16세 때부터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대하 34:2-3). 본문 22장 2절에도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CORAMDEO)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일에 정직히, 올바로 행했다는 말입니다. 비록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부패한 궁정에서 자랐지만 결코 악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적인 유전(遺傳)이나 환경을 넘어서 역사하심을 봅니다. 믿음은 그런 것들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처럼(행 13:22) 행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요시야였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을 일으킨 개혁주의자들의 삶의 모토도, 청교도들의 삶의 모토도 하나님 앞에서의 삶, 하나님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사람 중심의 삶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두려워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사람이 보던 안 보던 어디든지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바라 보고 계심을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중심으로 정직히, 올바로 행하십니까? 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생활로 무슨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믿습니까? 열악한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려고 하십니까?
   하나님 중심의 생활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요 축복의 첫걸음입니다.

둘째는, 성경중심(Bible-centered)의 생활입니다.
   요시야 왕은 선왕(先王)들과는 달리 성경을 읽고, 듣고, 회개하며 말씀대로 지켜 살았습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 수리를 하는 도중 율법책(Torah)을 발견하였습니다(22:8). 아마도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어딘가에 있었던 율법책과 전혀 상관없이 살았으나 요시야는 그 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것을 가져 다가 읽게 하고 듣고는 얼마나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멀리 떠나 있는가를 깨닫고 옷을 찢었다고 22장 10-11절은 기록합니다. 그 동안 잘못 살았던 것을 말씀 속에서 깨달은 그는 진정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입고 있던 옷을 찢으며 죄의 길에서 돌이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겸손히 말씀을 사모하며 받고자 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온 나라 백성들과 함께 그들 앞에서 성경을 읽었던 왕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거민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무론 노소하고 다 왕과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리고”(23:2) 하였고, 또한 실제로 그 말씀 그대로 지켜 순종하였던 요시야였습니다.“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23:3)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율법을 언약책이라고 말한 것에 대하여 눈 여겨 보셔야 합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언약을 맺고서는 주신 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는 이유가 언약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 그 언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시야 왕은 그 언약을 기억하고 지키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한 예로 말씀에 있는 그대로 온전히 유월절(逾越節, Passover)을 지키는 장면이 나옵니다(23:21-23, 대하 35:1-19). 유월절이라 함은 이스라엘 선민이 애굽에서 400년 넘도록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의 종 모세의 인도로 애굽 바로 왕으로부터 탈출하여 본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됨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문지방에 양의 피를 발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내린 열 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을 모면했던 것을 기억하고 지키는 절기입니다. 앞서간 사사들이나 왕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거나, 적당히 유월절을 지냈지만 그는 철저히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23장 21-22절에 “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더니”라고 합니다. 말씀을 중심하고 살았던 또 다른 한 예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들을 타파했던 요시야 왕이었습니다. 그 당시 많았던 우상들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성신(日月聖神)을 위하여 만든 모든 기명(記名)들을 불살랐다고 합니다. 그들의 산당도 다 헐었다고 23장 4절에 기록합니다. 24절에도 “요시야가 또 유다 땅과 예루살렘에 보이는 신접한 자과 박수와 드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제하였으니 이는 대제사장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책에 기록된 율법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는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23:25) 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얼마나 성경 말씀을 사모합니까? 말씀을 읽고 듣는 가운데 나의 잘못이 드러날 때에 옷을 찢을 정도로 회개하십니까? 갖가지 우상들을 다 버리셨습니까? 정말 기록된 말씀대로 살려고 하십니까?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말씀 중심대로 살려고 하십니까? 말씀을 읽고 들으면서도 죄악된 심령을 찢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거나, 말씀대로 자신을 개혁하며 철저하게 지키고 살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강퍅하여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말씀을 받고자 하는 자에게 은혜를 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주께 충성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응답해 주셔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하나님 말씀을 바로 붙드는데도 지금 당장 응답이 없고, 축복이 없다고 해서 딴 길로 가지 마십시오. 물론 감당하기 가장 힘든 것이 사람들의 조롱입니다. 사람들은 고난 가운데서 말씀을 붙드는 성도를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런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장 귀한 보배입니다.
   성경말씀 중심의 생활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하는 보배가 되게 합니다.

셋째로, 교회 중심(Church-centered)의 생활입니다.
   본문 22장 3-6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요시야 왕의 첫번째 한 일이 성전을 수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간 왕들이 성전을 더럽히고 각종 우상들로 가득하게 하며 무너뜨린 것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5절에 “여호와의 전 역사 감독자의 손에 붙여 저희로 여호와의 전에 있는 공장(工匠)에게 주어 전의 퇴락한 것을 수리하게 하되 곧 목수와 건축자와 미장이에게 주게 하고 또 재목과 다음은 돌을 사서 그 전을 수리하게 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 일들을 맡은 자들도 돈(은) 때문에 한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 진실되게 했다고 7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성전에 대한 사랑은 한 사람의 신앙의 척도였습니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신약의 성도들의 몸, 혹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물론 차이도 있습니다만 그 중심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예배와 찬양을 드리고,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전을 요시야 왕이 참으로 사랑하였기에 허물어진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제일 먼저 개혁을 단행하여 정성껏 수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유월절을 온전히 지키듯이 각종 절기와 제사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대로 성전에서 드렸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자신의 몸, 심령의 더러운 부분들을 고치며, 정결하고 깨끗하게 주님을 예배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를 사랑하며, 교회를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부로 주님께 나타내도록 노력합니다. 즉 교회를 중심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영혼을 책임지는 목회자를 잘 만나는 것이, 성도들을 잘 만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단도 많고, 말씀에 벗어나 인간적으로 움직이는 자유주의 교회도 많고, 주의 종들이 부패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경향가든교회는 목회자나 성도들이 한 마음으로 교회가 부패되어 가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며 서로가 말씀 가운데 바로 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합니까? 자주 자주 우리 성도들과, 주의 종들과 예배를 드리는 것을 사모합니까? 함께 찬양과 기도로,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그리하여 여러분의 심령이 부흥되고,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고, 주님께 바로 서기 원하며, 교회를 중심하고 사십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중심의 생활이 모든 축복의 기초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았던 요시야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그 혼돈과 어두움의 시대에도 그는 평안과 번영의 축복을 누리고 살았던 왕이었습니다. 요시야 왕 이후로 유다 백성들은 다시 범죄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당하게 되지만 그는 재앙을 보지 아니하고 삶을 마쳤습니다. 당시 여선지자 훌다가 왕에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하는 것이 22장 16절 이하에 기록되었는데, 마지막 20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로 너의 열조에게로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예언 그대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공격한 것이 주전 605년이므로 4년 전에 요시야는 소천한 것입니다. 특별한 축복입니다. 요시야 같이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축복을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기왕에 예수 믿는 것 뜨겁게, 확실하게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시야 왕처럼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 중심으로, 교회 중심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초가 튼튼히 되어 있는 사람, 중심이 똑바로 서있는 사람으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 중심적으로, 사람 중심으로 살지 말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중심으로 사십시오. 늘 하나님 경외하고 사랑하며 사십시오. 성경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하며, 외우고, 실천하십시오. 교회를 늘 마음에 두고 사랑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서로 노력하며 하나님 만을 높이며 예배하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모임들이 되게 합시다. 교회가 부흥하고 화목하면 각 가정도 축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
   바로 이것이 성도들의 생활원리입니다. 그렇게 살 때에 자신이 살고, 그 가정이 살고, 나라와 민족이 사는 비결이요, 축복의 원리로 확실히 믿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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