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8,014
오늘방문 : 1034
어제방문 : 2757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08-12 (토) 04:1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543    
[6/12/05] 이 사람들을 어찌할꼬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사도행전 4:13-22)
오늘날도 이 세상이, 사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사람 앞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이 세상은, 사탄은 어찌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두려워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던 사도 베드로와 요한, 그들이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치자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이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다음날 유대 최고 종교재판소인 산헤드린 공회로 끌고가 재판을 받게 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약 두 달 전에 예수님을 심문하고 재판하여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결정을 내린 공의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던 그들은 매우 당황하였습니다. 이유는 저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학문이 없는 평범한 어부들로 알았는데, 지난 주 설교에서 살펴 보았듯이 성령 충만함으로 기탄없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13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12절)! 그리고 그 자리에 40여세나 넘는 고침 받은 그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증인으로 함께 서있으니 할 말이 없어진 것입니다(14, 22절). 그래서 잠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서로 의논하면서 한 이야기가 본문 16절에 “우리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이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입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권력자들 앞에서, 목숨이 위태한 지경에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증거하고 있습니까?

첫째로,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종교지도자들과 관원들조차 그 나타난 표적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능력, 기적을 체험한 것을 말합니다(16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그 큰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이 세상이, 사탄이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새롭게 태어난, 중생 체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영적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조차 변한 것을 아는, 부인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이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낙심하고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고 새 힘을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삶이 변화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아니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다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영적 경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체험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사탄이 여러분을 두려워합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이 사람들’은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 하는 사람들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의논한 결과는 사도들과 타협하여 풀어줄 테니 더 이상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7-18절)고 한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먼저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하였습니다. 자기들 말을 듣지 않으면 위험할 것이라고 협박하는 것입니다. 위협함으로 복음 전파를 막아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르치지도 말라고 합니다. 함구령입니다. 마귀가 잘 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절) 하였습니다. 즉 사도들은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다 보고 계신데, 우리가 다 그 앞에 서있는데 어떻게 너희 말을 듣겠느냐는 것입니다. 참 이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인들의 기본입니다. CORAMDEO(Before God)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러니 그 분 앞에서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의 얼굴보다는 하나님의 얼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유명한 종교 개혁자 John Knox 는 하나님을 너무 두려워 하였기에, 아무 사람의 얼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악했던 영국의 메리 여왕이 John Knox 만큼은 겁을 내었다고 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갈 1:10)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숨까지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사람들의 말과 하나님의 말씀이 부딪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들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이 사람들’은 사실(fact), 진리(truth)에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20절에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승천하심이었습니다. 성령 강림의 체험이었습니다. 이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은 것이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의 사실입니다. 진리입니다. 직접 체험한 생생한 산 지식입니다. ‘이 사람들’은 이렇게 산 지식, 진리에 붙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고등교육을 받았고, ‘이 사람들’은 그러한 교육도 못 받았다 하더라도, 사회적이 신분이 낮고, 인간적인 매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사실을, 진리를 말하지 못하도록 막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요한일서를 기록하면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 1:3) 라고 하였습니다.
보고 들은 것! 이 얼마나 확실하고 명백한, 진실하고 참된 지식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권력자들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보고 들은 진리에 확신(assurance), 신념(conviction)이 있었기에 사탄에게 굴복 당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 확신에 찬, 신념에 찬 ‘이 사람들’ 입니다. 그 결과 “이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21절)고 한 것입니다.
한번은 초대 교부 저스틴이 로마의 집정관 러스티쿠스에게 끌려가 심문을 당하였습니다. ‘목숨을 내 걸고 라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면 천국에 올라가서 무슨 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습니다. 그 때 ‘이 사람’ 저스틴은 말하기를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이 확실히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들도 분명히 보고 들은 것, 체험적으로 아는 산 지식,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이 확신이 있으면, 이 진리에 붙잡히게 되면 이 세상이, 사탄이 여러분을 막지 못합니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전도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을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할 사람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전도란 여러분이 직접 보고 들은 것, 경험한 사실을 담대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정 용어로 증인이지요. 보고 들은 사실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알지도 못하는 것을 아는 척하면서 말하거나, 보지도 않은 것을 본 것처럼,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면 흔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그 근거가 희박하여 말하는 것에 별로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실로 직접 경험한 사실은 누구나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습니다. 좋은 곳을 다녀와서 너무 좋았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도저히 말을 해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처럼, 무서운 병에 걸렸다가 어떤 특별한 치료 방법을 통하여 정말 나았다면 그 치료 방법을 그와 같은 병을 가진 다른 환자에게 말해주지 않고는 못 견디는 것처럼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 알면서도 말해주지 않으면 참 나쁜 사람이지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증인으로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런 확신, 신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이 세상은, 사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도무지 방법이 없구나, 포기하자고 합니다.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당하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보다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보고 들은 사실, 진리에 붙잡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합니까? ‘이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작은 위협 속에서 그만 하나님이 어디를 가셨는지 모르는 척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보다는 사람들의 말을 더 잘 듣지는 않습니까? 보고 들은 것조차 의심하고 사시지는 않습니까?
정말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이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을 체험하고, 정말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심을 확신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람의 말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분명히 보고 들은 것에 대한 증인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탄이 오늘도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구나’ 라고 말하며 패하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이 세상이, 사탄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367 주일설교 거짓 믿음(1)(요 8:37-47) 한태일 목사 2011-03-07 1995
366 수요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백성은(신 8:1-4) 한태일 목사 2011-03-04 1980
365 주일설교 자유를 주셨으니(갈 5:1-6) 한태일 목사 2011-03-02 1854
364 주일설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1-32) pastor 2011-02-21 1823
363 수요설교 축복의비결(신 7:12-21) pastor 2011-02-18 1866
362 주일설교 믿지 아니하면(요 8:21-30) pastor 2011-02-17 1743
361 주일설교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한복음 8:12-20) 한태일 목사 2011-02-08 1881
360 수요설교 고뇌에 가득찬 예수님의 기도 한 태일 목사 2011-02-04 2003
359 주일설교 용서를 받았으면 한 태일 목사 2011-02-01 1725
358 주일설교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한 태일 목사 2011-01-29 1788
357 수요설교 이스라엘의 받을 복 한 태일 목사 2011-01-21 1726
356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한 태일 목사 2011-01-18 1633
355 주일설교 성도의 생활원리 한 태일 목사 2011-01-10 1863
354 수요설교 올바른 기도 한 태일 목사 2011-01-07 1970
353 주일설교 구역교회(5)- 서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임 한 태일 목사 2011-01-03 1728
352 집회설교 (송구영신예배)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한 태일 목사 2011-01-02 2025
1,,,6162636465666768697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