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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1-01 (월) 09:5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007    
[10/31/10]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십니까?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 합니까? (요한복음 7:1-13)
    우리 믿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성공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이 두 마음의 갈등이 믿는 사람의 마음에 전혀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갈등이 우리에게 있을 때에 어느 쪽을 택하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별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를 구하지 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하나님께 붙들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쓰임 받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보석 같은 믿음을 가진 분입니다. 한 예가 모세의 삶입니다. 그는 얼마든지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 그 나라에서 인정 받는 인물로 살기에 충분한 조건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민족을 돕기 위하여 현실을 박차고 광야로 나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에 헌신하여 고난 가운데서도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하게 하는 지도자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결코 애굽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애굽 사회에 동화되어 타협하고 인정 받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대 명절이 있었습니다.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무교절)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대면하고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 오순절(칠칠절), 그리고 광야 40년 생활 중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념하는 초막절(장막절 혹은 수장절)입니다(신 16:16). 유대 남자들은 이런 명절을 만나면 의무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초막절을 만났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6장 사건이 유월절에 있었으니(6:4) 약 6개월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이 6 개월 여간에 갈릴리에서 있었던 일들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15장-17장, 막 7장-8장).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계속 가르치셨고, 기적을 행하셨고, 병을 고치셨고, 귀신을 쫓아내셨으며,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세 마리로 4000명을 먹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12제자들에게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말씀하셨고,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는 변화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즉 제자 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런 사역이 갈릴리 지역에서 있은 후 초막절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할 때에(2절),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낳은 예수님의 형제들(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이 주님께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3-4절)라고 말입니다. 지금 그 형제들이 말하는 내용은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라면 이제 나설 때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갈릴리 같은 촌 동네에 묻혀 있지 마시고, 명절을 맞아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몰려 드는데, 거기서 그 많은 능력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정을 받으시고 이스라엘 나라에 공식적으로 데뷔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제안에 대하여 “이는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5절)고 적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분명히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이 능력이 있으신 분으로 인정했습니다. 기적을 행하고, 병도 고치고, 귀신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3절에 행한 그 모든 일들을 유대에 가서도 하시라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단정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잘못 믿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 오신 정치적인 지도자로, 메시아로 믿었던 것입니다. 유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야 하는 메시아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수도 예루살렘에 가서 그 능력을 드러내어 그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형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받들게 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람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는, 후원자를 얻는 정치 지도자로 세움을 입기 위해서는 지금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자신을 유대인들이 죽이려고 하심을 아셨습니다(1절). 물론 그들이 겁이 나서 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당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 때가 아니기에 그 형제들의 제안에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나는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6-8절)고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성경이 말하는 믿음에 대하여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단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한다든가,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성경은 믿음이 아니라고 합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 하나님이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귀신도 믿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믿음은 성경에서 인정하는 참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때”라고 하셨는데 무슨 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때를 가리킵니다. 이제 약 6개월 후 공생애 사역에서 세 번째로 맞는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십자가 중심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가장 싫어하는 십자가를 빼 놓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 때 당시 예수님의 형제들이 갖고 있던 믿음, 형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믿어 자신들을 한 자리 해 주시는 분으로 믿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기에 성경은 그들이 믿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때는 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신들 중심의 삶에는 무엇을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하니까 말입니다.
    그러므로 참 믿음은 나의 죄를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고난의 십자가를 믿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 진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십자가를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 헛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마음 깊이 새기지 않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찬송도 드릴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마음 깊이 새기지 않고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사는 인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너무 다른 인생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마귀의 조종을 받는 사람들이 득세하며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행사가 악하다고 예수님께서 7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그렇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을 부추기어 예루살렘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능력을 나타내 보이라고 한 것은 그렇게 하여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정치적인 왕으로 세움을 받으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애쓰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성공의 척도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과시합니다. 허세를 부립니다. 마귀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런 시험을 받으셨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려고 40일 금식기도를 마쳤을 때에 마귀는 예수님에게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유혹했습니다(마 4:6). 그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 만국의 세상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면 그 모든 것을 주겠다고 유혹했습니다(마 4:8-9). 예수님께서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이기셨습니다.
    오늘날도 사탄은 우리를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우리의 힘을 낭비하게 합니다. 경계하셔야 합니다. 참 믿음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며, 과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열매를 맺는 데에 있습니다.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 형제들이 예루살렘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셨는데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올라가셨다고 합니다. 왜 올라가셨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서 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요 6:38-39). 지금 초막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올라가셔서 복음을 증거하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도 하신 말씀이 “내가 다 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다 감당했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구원으로 인도하며,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열매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키우고 세우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은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그 대학 정문에 95개 조항을 붙여, 로마 천주교회의 부조리를 지적함으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지 493주년 기념일입니다. 그 이전에 존 위글리프가 이미 개혁의 불을 밝히고 나서, 루터와 함께 칼빈이나 멜랑톤, 쯔윙글리로, 존 오웬, 조나단 에드워즈, 조지 윗필드로 이어지는 개혁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외쳤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를 외쳤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외쳤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영광을 받기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 예수님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원하셨음을 나타내 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11-13절을 보시면, 예루살렘에 모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줄 알았기에 드러내고 말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고 애쓰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기보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기 바랍니다. 믿음의 열매를,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영혼이 살고, 사람이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스케줄에 자신의 인생을 맞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때에 다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보다 앞서가지 않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바심은 항상 세상을 향한 욕심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 보이고 싶은 교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즉 그 때를 놓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놓칠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런 욕망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스케줄에 우리의 인생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중심하고 살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 십자가의 보혈이 늘 흐르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마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없는 예배, 기도, 찬송, 봉사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십자가 은혜가 없는 우리의 인생이 무슨 보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능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분이라면 참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십자가를 체험하고,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에야 참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우리 경향가든의 교우들은 늘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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