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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4-07-20 (화) 10:5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257    
[7/18/04] 청렴한 지도자
청렴한 지도자 (느헤미야 5:14-19)
지난 주일에는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난 물질 문제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백성들의 원망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문제 해결에 나선 지도자 느헤미야의 모습을 살펴 보았습니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흉년을 만나 먹을 것이 없어 고통 당하는 그들이, 페르시아 제국에 과도한 세금을 내느라고 밭이나 포도원이나 가축들을 저당 잡히고 빚을 내고 사는 마당에, 자녀들까지 노예로 팔고 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지도층인 귀인과 민장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그들을 보며 크게 진노하였던 느헤미야 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하는 것을 보고 의의 분노가 일어난 것입니다. 화가 치밀었지만 느헤미야는 “중심에 계획하고”(7절상) 즉,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스스로 생각하고 난 후 그들을 꾸짖고 나서, 결단을 내리고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죄 짓는 일을 멈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을 고칠 구체적인 제안을 하였습니다. 더 이상 이자를 받지 말고, 오히려 백분지 일이라도 그들에게 돌려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느헤미야의 제안을 듣고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그 다음에 느헤미야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맹세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약속하게 합니다.
회개함에 있어서 너무 중요한 단계들이었습니다. 참된 회개는 성령의 찔림에 의하여 상한 심령으로 통회하면서, 실제로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단을 내리고 잘못된 행동을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행동에 변화가 있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개는 미루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맹세, 약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요구를 문제를 일으킨 귀인과 민장들에게 하고 난 후에 느헤미야는 “내가 옷자락을 떨치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떨치실지니 저는 곧 이렇게 떨쳐져 빌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대로 행하였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러한 개혁의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가 오늘 본문 14절 이하에 잘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느헤미야 자신의 물질에 대한 깨끗함, 정직성, 청렴결백함이었습니다. “내가 유다 땅 총독으로 세움을 받은 때 곧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부터 삼십이년까지 십이년 동안은 나와 내 형제가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전 총독들은 백성에게 토색하여 양식과 포도주와 은 사십 세겔을 취하였고 그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며 땅을 사지 아니하였고 나의 모든 종자도 모여서 역사를 하였으며”(14-16절) 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전의 총독들과는 달리 나는 백성의 것을 토색, 즉 무거운 부담을 주며 돈을 긁어내는 짓을 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입니다. 그 신하들로 백성을 못할게 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저 성벽 재건에 온 힘을 다하였지 백성을 토색하며 이기적으로 내 땅을 사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바라보고 계심을 알고, 믿고 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입니까?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입은 참된 하나님의 자녀라면 적어도 이런 자긍심(confidence)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긍심으로 인하여 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이중장부를 기록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뇌물을 받지 않는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세금을 올바로 내는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돈을 벌고, 지혜롭게 돈을 사용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십시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물질 문제에 있어서 깨끗합니까? 투명합니까? 신자라면, 성도라면 당연한 태도요 행동인데 그렇게 사십니까? 아니면 그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에 바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물질문제에 있어서 깨끗하지 못합니까? 정직하지 못하고 지혜롭게 다루지 못합니까? 그렇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지난 번 가족수양회 때에 황 필남 선교사님께서 바닷물이 썩지 않는 이유가 바닷물이 함유하고 있는 약 3.5%의 소금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3.5%의 염분이 나머지 96.5%의 성분을 지탱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시 말하면 3.5%의 소금만 있으면 나머지 96.5%의 물이 건전하게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논리로 3.5%의 사람이 소금의 역할을 하면 우리의 사회나, 공동체는 썩을 염려가 없다는 말입니다. 100명 가운데 3-4명의 참된 신자들이 깨끗하게, 투명하게 살면 그 사회는 병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전 병욱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동남 아시아의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사이에는 차이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대만과 싱가폴 같은 나라와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를 다녀보며 비교해 보면 동양인으로서 생김새도 비슷하고 환경도 비슷한데 삶의 질과 도덕성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과거 지도자의 물질 문제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청렴하게 살면서 나라를 이끌었는가에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대만의 오랜 독재자였던 장 개석이 죽으면서 남긴 재산은 조그마한 집 한 채였다고 합니다. 비록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욕을 먹던 독재를 했지만, 깨끗하게 했습니다. 싱가폴의 이 광요 전 수상이나 고 척동 현 수상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아주 청빈한 인물들이라고 합니다. 지도자가 물질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할 때에 나라가 안정되고 그 나라가 잘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필리핀은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축재를 일삼은 마르코스라는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나라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지 않았습니까?
지금 느헤미야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자신이 청렴하게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깨끗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그 삶을 보아온 그 백성들이 다 알기에 느헤미야의 합당한 회개를 촉구하는 말에 감동을 받아 온 회중이 다 아멘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그의 말대로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한가지 느헤미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지도자로서 그 어려운 백성들을 이해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또 내 상에는 유다 사람들과 민장들 일백 오십인이 있고 그 외에도 우리 사면 이방인 중에서 우리에게 나아온 자들이 있었는데 매일 나를 위하여 소 하나와 살진 양 여섯을 준비하며 닭도 많이 준비하고 열흘에 한번씩 각종 포도주를 갖추었나니 비록 이같이 하였을지라도 내가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아니하였음은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17-18절)고 합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너무 잘 해주었지만, 다시 말하면 충분히 총독의 녹을 요구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백성의 부역이, 노고가 너무 심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 나름대고 살아가기도 힘들면서 성벽 재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지도자인 내가 그런 것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합니다. 백성들의 처지를,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던, 긍휼히 여기던 느헤미야 였다는 말입니다. 도저히 힘들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그 백성을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지도자는 당연히 그 권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부를 축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 올라간 자리인데 하면서 백성들은 어떻게 되던 말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입니다. 과거 우리 나라 위정자들의 모습이 아니었습니까?
느헤미야는 달랐습니다. 백성의 처지를 이해하면서 사랑했기에 자신도 성벽 재건을 위한 일 외에는 백성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 스스로가 모범을 보이면서 백성들을 독려한 것입니다. 그러했기에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19절) 라고 간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한 나라이건, 교회 이건, 가정 이건 어떤 공동체 이던 그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일절 깨끗하게, 청렴하게, 정직하게 살면서 본을 보인다면 그 나라나 교회나 가정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수 천년의 기독교 역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도자입니까? 아니 지도자가 아니더라도 3.5%의 참된 성도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생명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한결같이 충성하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거두어 가시는 그 날에 뒤를 돌아보아도 깨끗한 삶 그것이 성도의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축복이고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인지 구별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하였습니다. 아무리 악한 세대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셔야 합니다. 이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의 최대의 재산은 깨끗한, 정결한, 정직한,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 삶이어야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참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타락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놓기 시작할 때에 타락하기 쉽습니다. 처음이나 나중이나, 처음 구원 받고 첫 사랑의 감격 속에 주의 일을 할 때에나 나중 주님께서 부르실 날이 가까워 올 때에나 한결같이 그 깨끗함을 유지하고 산다면 그것만큼 축복된 삶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깨끗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추해진다면, 처음에는 예수님 얼굴과 같더니 나중에는 가롯 유다의 얼굴로 변한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끝날 수 있기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소원하십시오. 그야말로 영광의 삶입니다.
또한 지도자들은 그들을 바라보고 따라오는 백성들의 처지와 상황을 잘 이해하며 사랑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백성이든, 교회 안의 양이든, 가정의 식구들이든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그들을 아끼고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백성이라든가, 양이 아니고 염소라든가, 다른 가정의 식구들까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지도자로서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도 아마 느헤미야처럼 기도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나를 바라보며 따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정말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의 시대가 아니라면 우리의 자손들에게라도 말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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