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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6-25 (월) 06:1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948    
믿음의 증거(히 11:7)



진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의 삶에 믿음의 증거가 있습니다. 말뿐 아니라 행동이 뒤따르는 믿음입니다. 물론 삶에서 나타나는 증거의 정도 차이가 있겠지만, 믿음에 의한 행함이 반드시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고 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없다면 죽은 믿음입니다. 가짜입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아벨에게서는 참된 예배를 드리는 믿음의 증거가 있었고(히 11:4),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증거가 있었습니다(히 11:5-6).

오늘 본문의 노아 또한 그 믿음의 증거가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바보 같이 보여도 하나님을 진실로 믿기에 드러나는 행동들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우선 창세기에서 “노아의 사적(事蹟, account)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9)라고 하였습니다. 사적(事蹟)이란 말은 일의 업적 혹은 공적이란 뜻입니다. 즉 노아는 아벨처럼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고,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의인의 삶을 살았고, 완전한 자라고 인정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7절)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노아의 믿음의 증거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서 아직 보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을 때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창 6:17)는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방주를 지으라고 했을 때(창 6:14-16) 정말 지었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일에 대한 경고였습니다. 그 전까지 비도 내린 적이 없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창 2:5상) 했으니, 비를 구경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홍수는 상상조차 못하는 일입니다.
정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하였듯이 ‘믿음으로’ 홍수의 심판이 있을 줄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방주를 지었습니다. “경외함으로”라는 뜻은 하나님을 ‘두려워 떨며, 극도로 존경하며’ 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기에 말도 안되는 경고요 명령이지만 믿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자기가 그들과 함께 있던 없던 하나님 앞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하)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것도 노아가 살던 곳은 강가도 아니고 산꼭대기에 지으라고 하니 말이 되지 않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크기도 한 규빗이 약 1.7 ft. 정도이니 길이가 300규빗, 약 510 ft, 넓이가 50규빗, 85 ft, 높이가 30규빗 51 ft 이니(창 6:15) Football 경기장 한배 반 정도의 7층짜리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번도 보지 못한 이런 엄청난 배를 지으라고 해도,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작업이고, 인력이라고 해야 노아와 자기 가족들 밖에 없는데 지은 것입니다. 정확하게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고 하였기 때문에 약 120년을 지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5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닌 120년 가량을 지은 것입니다. 주위에서는 그를 바보 멍청이라고 비방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꾸준히 흔들림이 없이 그 긴 시간을 순종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말씀을 하셨다면 우리의 반응은 어떨까요? ‘설마’라고 생각하며 ‘내가 잘못 들었겠지’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시키시겠어? 감당할 수가 없는 일인데, 하면서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지 않을까요? 아니 처음에 시작은 하였다가 너무 길어지고 힘들어져서 포기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노아는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가 죄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가 있으나 이러한 믿음 때문에 의인이라고 인정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죠. 그래서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아니 노아도 경험하지 못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까지 입은 자라면 당연히 노아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맡은 일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노아의 믿음의 두 번째 증거는,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였습니다(7절하).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 약 1000년이 지난 다음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그 마음과 생각의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을 하셨습니다(창 6:5-6). 그래서 홍수로 심판하시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 때 노아는 에녹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에녹 시대보다 더 악하여진 그들에게 회개하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노아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했다고 합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벧후 2:5)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다 듣지를 않았습니다.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고 하였습니다. 약 120년 동안을 방주를 지으면서 계속 그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전파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기회가 있었는데도 믿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아서 홍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핑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대로 2000여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며 승천하셨는데, 곧 세상을 심판하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고 복음을 전해도 여전히 믿지 않으며 거절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마지막 때를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영국의 청교도 목사였던 Charles Spurgeon 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도 믿지 못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제대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 6:11-12)고 한 것처럼, 바울이 그의 마지막 서신에서 디모데에게 말세의 백성들의 타락한 모습을 설명하기를,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2-5)고 권면한 것처럼, 오늘날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말 패괴한 세대요 앞으로 더욱 더 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지 않습니까? 나중에 물 심판이 아니라 불 심판이 내려도 그들은 핑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믿음의 세 번째 증거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된 것입니다(7절하). 노아의 믿음은 하나님의 의를 입음으로 증명되었습니다. 노아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입었습니다(창 6:9).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참 믿음을 갖게 된 결과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의가 전가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비록 우리는 아직 죄인이지만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우리 안에 있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시고 의인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 아들 예수님의 렌즈로 우리를 보시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믿음의 노아를 보실 때 약 3000여년 후에 오실 예수님을 보시고 노아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셨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그러니까 우리도 노아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증거를 나타내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산다고 한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살아도 나는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결단하고, 실제로 구별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하고 바보 같아도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방주를 지으라고 하면 지어야 합니다. 120년 동안 지으라고 해도 지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비방하고 욕해도 묵묵히 지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가며 순종하는 이 길이 좁고, 외롭고, 힘들어도 가야 합니다. 노아는 그래도 식구들이 하나가 되어서 그나마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식구들조차 나를 비난하고 핍박을 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난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고 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노아처럼 세상을 향하여 복음을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그 크신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부르실 그 때까지 말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 듣기에 좋은 말씀뿐만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말씀도 전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의인이라고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의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의의 옷을 입혀 주셨으면 그 옷에 걸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꾸준히, 성실하고, 신실하게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 말과 행동이 증거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지막 평가도 노아처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이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사람들에게 바보라는 평가를 받더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는 믿음생활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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