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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06-10-04 (수) 22:2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285    
[10/1/06] 각각 그 힘대로
각각 그 힘대로 (사도행전 11:27-30)
지지난 주일에 초대 안디옥 교회를 소개하면서(11:19-26), 정말 우리가 바라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도자를 비롯하여 온 성도들이 최선을 다하는 교회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스데반 순교 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제자들이 안디옥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예루살렘교회가 바나바를 목자로 보내고, 그가 바울과 협력하여 참으로 모범된 교회로 성장함으로 성도들이 주위 불신자들에게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게 된 그들이었습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착했던 바나바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고, 교훈을 삼았습니다. 그를 본받아 온 성도들이 최선을 다함으로 최초로 선교사까지 파송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13장).
오늘 본문에서는 그들의 신앙생활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구제입니다. 모범된 교회의 또 다른 한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는 것은 특권이고 축복인 동시에, 그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받은 은혜가, 받은 사랑이 있으면 갚아야지요. 특히 이웃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면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받은 은혜와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 사랑을 나누며, 연약한 자를 돕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즉 구제할 줄을 아는 교회였습니다.

27-28절에 의하면 그 때에 예루살렘에서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내려와서 천하에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하였고, 그 예언대로 글라우디오 황제 때(주후 41-54년) 온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요세푸스를 비롯한 고대 역사학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실제로 주후 45-46년에 이스라엘에 큰 흉년과 기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에 안디옥 교회의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29-30절)고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든지 성령 충만한 교회는 반드시 구제를 하였습니다. 거룩한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나면 반드시 구제 운동이 함께 하였습니다.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반복되는 것이 우리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소외당한 자의 편에서 그들을 도우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사역도 대부분 그러한 자들을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그들을 핍박하고 억울하게 대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벌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이민 온 우리 교포들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이 이 미국은 약자의 편에서 그들을 돕는 정책과 제도가 잘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약하다고 여기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어린이, 장애인, 노인, 여자들에 대한 대우가 다르지요. 기독교 문화가 그 배경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청교도 정신으로 나라를 세워온 믿음의 조상들 때문입니다. 사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오늘날까지 계속 누리고 있는 것이지요.
성경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주시리라”(잠 19:17)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드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것을 갚아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그 명령을 순종할 때에 주실 축복의 약속입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마 6:1). 그런데 그 의의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구제와 기도입니다(마 6:2-6). 즉 구제하거나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처럼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6-27) 하였습니다. 즉 우리의 경건의 모습은 첫째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기 말을 절제할 줄 아는 것이며, 둘째로 환난 중에 있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것이어야 하며, 셋째로 자신을 지켜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모습이 아름답게 조화되어 있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서 잠시 언급하였듯이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이 충만할 때에 구제가 넘쳤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하는데 구제 일까지 하다 보니 매일 구제에 헬라파 과부들이 빠지는 것을 보고 그들이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자, 처음으로 안수하여 7 사람의 집사 혹은 장로를 세워서 구제 사역을 감당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에 흉년이 들어 힘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핑계를 댈 수도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제 약 1년 조금 넘어 아직 제대로 그 모습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목자도 없었는데 겨우 1년 동안 바나바의 가르침, 그리고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 교회도 가난합니다. 멀리서 피난 온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입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 안정이 되면 그 때 구제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성도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각각 힘대로 부조하고 작정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그 장로들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기서 우리가 구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원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각각 해야 합니다. 구제하자고 하면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구제를 많이 하지 않는다고 언짢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교회가 구제 예산을 더욱 늘이고 써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는 지금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제할 것입니다. 그 범위를 늘여갈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각각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에게만 구제하라고 하시기 보다 여러분 각 사람이 구제해야 합니다.
또한 힘대로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희생이 필요합니다. 나 쓸 것 다 쓰고 남는 것으로 구제하는 것 아닙니다. 자투리 돈 가지고 거지 동냥하듯이 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구제는 있는 힘껏 애를 써서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것을 손해보지 않고, 희생하지 않고 남을 구제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줄 때는 아까운 법입니다. 힘을 들여야 합니다. 구제는 힘쓰는 자의 것입니다. 돈이 많은 자의 것이 아닙니다. 성숙한 자의 것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부자는 더 많은 구제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가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다른 사람을 향해서 얼마나 마음을 쓰는 가를 보면 압니다. 어린아이일수록 이기주의입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아니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고,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갖고 있다고, 또 그 동안 열심히 안 자고, 안 먹고, 안 놀고 하여 돈을 많이 벌은 사람이라도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성숙하다, 통이 크다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관심을 갖는 범위가 넓은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성숙의 표시입니다.
또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는 사람도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마음에 없기 때문이고요. 그러다가 영영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의 특징이 원하지 않는 무엇을 시키면 나중에 하겠다고 하지요. 어느 목사님은 ‘가진 것이 적을 때 드리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가진 것이 많아질 때 드리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좀 더 많이 생기면 드리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것을 드릴 줄 알아야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나중에 큰 것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구제를 실행할 때에도 지혜롭게, 순서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나바와 바울의 손으로 구제하였습니다. 돈을 관리할 때에는 원칙적으로 두 사람이 같이 관리해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 사람에게 무슨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에는 혼자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그 말을 뒷받침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꼭 두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체크가 가능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돈을 벌 때뿐 아니라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도 정확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헌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예산이 집행되는 데에는 정확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바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또 바나바와 바울의 손으로 예루살렘 장로들에게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낸 것이 아닙니다.교회적으로 구제비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에게 보내어서 그들로 하여금 골고루 구제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제할 때에 교회적으로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이유는 받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입니다. 개인적으로 구제하면서 받는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자존감, 혹은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받으면 빚을 졌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괜히 그 사람에게 부담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세심하게, 받는 사람의 입장도 생각하면서 지혜롭게 하여야 합니다. 좋은 일 하면서 욕 먹으면 안되겠지요. 아름답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도 교회의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바나바와 바울의 손으로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는 것보다 교회적으로 하는 것이 옳고 더 유익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주님께서는 그처럼 자신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자신의 온몸을 찢으시면서 그 사랑의 자녀들을 향하여 다 주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받은 은혜가 크기에, 받은 사랑이 크기에 믿음으로 보답하며 주는 교회였습니다. 주는 자의 복을 누린 교회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로 받은 은혜가, 받은 사랑이 크고 많은 줄 믿습니다. 베풀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릇을 크게 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그릇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갚아 주십니다.
오늘 본문은 우선 각각 주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구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힘대로 주라고 합니다. 가진 것이 많다고 구제를 많이 하는 것은 아닌 것을 여러분도 알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힘껏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롭게, 순서적으로 질서있게 하여야 합니다. 나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그 영광을 드러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배려하며 지혜롭게 하여야 합니다.
세월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벌써 10월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만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너는 내가 병들었을 때에 찾아봐 주었고,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해 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아 주었느니라’라고 말입니다. 그게 아니고, ‘악하고 게으른 자여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다’ 혹은 ‘내가 네게 그렇게 많이 주었건만 너는 너 자신과 네 가족만을 위하여 쓰다가 왔느냐 이 하늘 나라에서는 네가 받을 상이 너무 없구나’라는 말을 들어야 되겠습니까? 움켜쥔 것은 잃게 되고, 잃은 것은 사라지지만, 이웃을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드린 것은 언제나 남아 있습니다. 영원토록 하늘에 쌓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 하였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베풀고 살아야 축복을 받을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최대, 최고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너무 풍성한 인생입니다. 더군다나 이 축복의 땅 미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땅입니다. 조금만 일하면 먹고 사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을 뿐 아니라, 많은 것을 누리고 즐기며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불평하면서 내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나 만을 위하여 살아서 되겠습니까?
‘주되 준 것을 기억하지 않고, 받되 받을 것을 잊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줄 때에는 끈이 달려 있지 않아서 다시 돌아오게 하지 말고, 받을 때에는 끈을 달아서 돌아가게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얼마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고 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향하여 베푸는 은혜, 나누어 주는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물론 복음과 함께 말입니다. 믿는 형제 자매들 뿐 아니라 영적으로 기근에 들어 방황하는 심령들에게 좋은 소식, 구원의 소식, 복음을 전하면서 말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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