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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6-05 (일) 01:40
분 류 절기설교
ㆍ조회: 679    
성령강림은 (행 2:14-21)


[성령강림주일]
20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21세기에 들어와 많은 교회들이 ‘부흥을 위하여’ 하면서,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이나, 인본주의적 접근으로 그저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하기 위하여 열린 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를 주장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찬양을 많이 합니다. 예배 시간 많은 부분이 복음성가(Gospel or Contemporary Songs)입니다. 찬송가는 아예 부르지도 않습니다. 또한 자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무슨 세미나를 열고자 합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다 교회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것들은 성경적으로 알맞게 사용하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프로그램들이나 찬양들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이 설교일 때에는 문제가 됩니다. 교회 사역에서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우선순위가 되지 않고 뒤로 밀린다면 한참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2000여년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거나 특별히 초대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 설교, 말씀 선포가 교회의 주된 사역이었습니다.

오늘은 올해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지상에서 제자들을 만나주시고 나서 승천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누가복음 강해를 마치면서, 사도 누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묘사해 놓은 승천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열흘 후 약속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다락방 성전에서 120명의 제자들이 매일 모여 기도하였을 때(행 1:15; 2:1),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행 2:2-13). 예수님의 제자들이 각기 다른 나라의 말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첫째로 나타난 사건이 오늘 본문에서 시작하는 사도 베드로의 설교였습니다(행 2:14-40). 3000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 2:41). 사실 사도행전 전체는 대부분이 초대교회 역사 가운데 사도들의 설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파하니”(행 9:20)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설교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도 Marin Luther 나 John Calvin, Ulrich Zwingli, John Knox 와 같은 하나님의 사자들의 설교가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회복시키며, 회심하게 하였습니다. 17세기의 청교도들도 성경적 설교를 강조하였으며, 18세기 영적 대 각성 운동에서도 George Whitfield, Jonathan Edwards 와 같은 하나님의 사자들의 설교를 통하여 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또한, 19세기의 D L Moody, Charles Spurgeon, Theodore Parker 목사와 같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들도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던 설교자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이 세상 구원역사를 펼쳐 가실 때에 기름 부음을 받은 사자들의 설교를 통하여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제가 설교라고 말하는 단어가 신약 헬라어로 두 가지로 표현되는데, 하나는 kh,rugma (proclamation, 선포)와 다른 하나는 didach,  (instruction or teaching; 교훈) 입니다. 즉 설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진리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제발 예수님을 믿어 달라고 빌고 구걸하는 자세가 아니고, 단지 선포 혹은 선언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가르치는 것이 설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초대교회 때나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교회들이 깨어나던 16세기-19세기와는 현격히 다른 문화권의 21세기를 살아간다 하더라도, 교회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을 의지하고, 참된 복음을 선포하며, 진리를 가르치는 설교가 이 강단에서 능력 있게 선포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위하여 기도해 주셔야 합니다.

사실 베드로도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부로 살다가 어느 날 자기 형제 안드레의 소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원래 이름 시몬에서 베드로(Pe,troj, 반석)이라는 새 이름을 받고 주님을 따르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약 3년간 주님과 가까이 지내면서 말씀하시는 것을 직접 들었고, 많은 기적들을 보았고, 함께 동고동락하였었습니다. 12제자 중 수석제자로서 주님께 특별한 사랑을 입으며, 무슨 일에든지 앞장서는 지도자 역할을 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체포당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눈앞에 두자 그 용기가 어디로 갔는지,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수치스러운 죄를 범하면서, 예수님 말씀대로 새벽 닭이 울자 가슴이 터지도록 통곡하였던 그였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에 정말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성격도 불 같아 참을성도 없고 하여 신뢰하기에는 탐탁하지 않았던 제자였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충만을 체험하고 나서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비겁하게 도망가던 그가 이제는 많은 사람 앞에서 담대히 큰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옆에 있는 11 사도들도 같이 서서 외칩니다(14절). 그렇습니다. 성령이 임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의 설교 첫 부분인 오늘 본문은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자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나라의 방언으로 말을 하는 제자들을 보고 ‘조롱하며 술 취하여서 그렇다’(13절) 라고 하자, 베드로는 그것을 반박하면서 구약 요엘 선지자가 성령의 감동으로 예언한 말씀(요엘 2:28-32)을 인용하며,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진리를 선포합니다. 사실 율법학자도 서기관도 아니었던 베드로가 이처럼 즉석에서 요엘서의 예언을 정확하게 찾아내어 선포할 수 있었던 것도, 오직 예수께서 약속하셨던 “진리의 영” 되시는 보혜사 성령께서 베드로의 심령에 충만케 하심으로 생각나게 하셨던 것입니다(요 14:26; 16:13).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15절)고 합니다. 유대 시간으로 제 삼시는 오전 9시를 가리킵니다. 즉 ‘아무리 술 주정뱅이라도 아침 9시에 술 취하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거룩한 절기에 술 취하여서 그런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전 830년 경에 구약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되어서 그렇다고 합니다(16절). 예언되어져서 성취된 말씀의 요지는 . . .

첫째, 말세에 성령을 부으신다고 하신대로 성령이 강림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17-18절)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말세, 마지막 때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재림하실 때까지의 시간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가 되어서 택자들에게 부어지는데, 특히 사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면서 성경을 기록하게 하고,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예언의 말씀을 선포하게 되며, 젊은이들은 환상(vision)을 보고 새로운 미래에 대하여 나아가게 되고, 늙은이들은 이 세상 이후의 내세에 대한 꿈(dream)을 꾼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으로 인하여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되고,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영적 특권을 말합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확실한 사람에게는 현재의 삶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돌 같은 마음을 옥토가 되게 하고, 거칠고 사나운 사람을 온유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게 하고, 강퍅했던 사람이 사랑과 동정의 눈물을 흘리게 하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고 방식으로 살던 사람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게 되며, 세상적이고 자기 맘대로 살던 사람이 인생을 정결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변화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말세에는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19-20절) 하였습니다. 사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이미 일부가 성취되었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실 때에 정오 즈음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완전히 숨을 거두시던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사건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2000여년이 내려오면서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천재지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임할 때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지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곳곳에서 예언하였습니다(사 13:6이하; 겔 30:2이하; 욜 1:15; 2:1-11; 암 5:18-20; 옵 1:15; 습 1:14-18; 계 6:8; 8:7-8; 9:15; 14:20; 16:3). 물론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마지막 때,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 24장). 이미 우리도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 등 많은 자연재해를 보아 왔고, 앞으로도 이 세상은 점점 무서운 천재지변의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셋째, 말세에는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절)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무서운 재앙을 피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느냐’ 하면, 주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누구든지” 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의 대상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헬라인이든 야만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천한 사람이든, 남녀노소를 무론하고 “누구든지” 입니다. 과거에 무슨 죄를 지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또 사도 바울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구원의 근거가 됩니다. “예수” 라는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 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여야 합니다(롬 10:9-10).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 그리스도’ 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이름도 나의 죄를 사할 수가 없고 나를 구원할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천하에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행 4:12). 그 이름의 의미도 모르면서, 믿지도 않으면서 습관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이기적으로 부르는 이름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마 7:21) 하셨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라고 부를 때에는 그 은혜에 감사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따라야 하며, 내 삶의 주인을 예수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결단을 한 사람에게 구원이 분명히 임하는 것이며, 모든 죄 사함을 입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침을 받아 영원히 함께 하며, 영생하며 훗날 심판을 받지 않고, 천국을 소유하며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사는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성령 강림은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과 아울러 우리에게 말씀 선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이 임하게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말씀들을 말할 것이며, 비전과 꿈을 꾸게 됩니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삶을 살게 됩니다. 어떤 천재지변의 재앙도,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 우리 삶의 주인이시다’ 라는 분명한 고백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삶을 누리는 영적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 모두에게 우리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세주; Savior)이시며 우리 삶의 주(Lord)가 되십니까?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8) 하였습니다. 확실히 믿으시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주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순종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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