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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8-01-02 (화) 07:59
분 류 송구영신예배
ㆍ조회: 1176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
여러분들께서 이 땅에서 살아가실 때에 매일 매일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하나가 어떤 자세로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 삶은 10%는 우리에게 발생되는 일로, 90%는 우리가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로 이루어집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 발생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때때로 놀라운 충격적인 일들이며 완전히 우리를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러한 일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가 더욱 중요합니다. 물론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control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비관적이며, 수동적이며, 불신앙적, 절망적인 자세로 대할 것인지, 아니면 낙관적으로, 능동적으로, 신앙적인, 소망적인 자세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 포로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포로생활하던 Viktor Frankl 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그 악독한 고문 속에 이겨내고 난 다음에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수용소 생활의 경험은 우리는 행동의 선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도무지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그러한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내 마음 속 깊이, 내 영혼의 자유함을 유지하며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나머지 한 조각의 빵을 나누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우리 포로들에게 육체적 고통을 심하게 가하며 모든 자유를 빼앗았는지는 몰라도 한 가지만큼은 빼앗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도 몇 몇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의 자세, 행동까지는 빼앗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우리에게 경각심을 주는 것은 좋든지, 싫든지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자세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들, 이웃들, 교우들이 바라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 하나님께서 바라보고 계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새해에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십니까? 저는 새해를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환경과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 잘 알지 못하나 어떤 상황에라도 감사하며, 기뻐하는 자세가 우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본문을 중심으로 빌립보서의 주제를 살펴보며 깨닫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 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전체의 주제입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지금 무슨 좋은 일을 만나서, 혹은 그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좋아서 그렇게 말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아십니까? 쇠사슬에 묶여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감옥 안이 어떤 곳입니까? 추운 곳입니다. 외로운 곳입니다. 자유가 없는 곳입니다. 인간적인 대우를 기대할 수 없는 곳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원망과 불평이 터져 나올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오히려 서신을 받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1장 3-6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한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7절에 자신이 죄수로 매여있음을 말하면서, 12절에서는 그런 상황조차도 오히려 복음 전파의 진보를 위함임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알라고 합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그러면서 그 실제적인 예를 13절 이하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에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다시금 자신이 선택한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내 주위의 환경이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기뻐하기로 결정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믿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생명은 선물입니다. 여러분 중에 이 땅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신 분 없습니다. 받고 싶어서가지고 싶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여러분들의 부모님에 의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또한 여태까지 살아있는 것 또한 여러분들이 주장하는 것 아닙니다. 살고 싶어서 사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거나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하신 섭리 가운데 아직 여러분을 데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삶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영생은 선물입니다. 구원은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여러분들에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주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선물로 안다면 감사가 저절로 나와야지요. 기뻐해야지요. 선물을 받고도 감사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선물을 준 사람이 상당히 서운할 것입니다. 내가 오늘도 살아 있음을, 더구나 영생함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이 기쁨이 더욱 충만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2장에서 가르쳐 줍니다. 겸손의 자세입니다. 3-4절에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예를 5절 이하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종의 자세로 일을 하면 원망도 하지 않고 시비 걸지도 않습니다. 종이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바로 우리가 선택해야 될 삶의 자세, 태도입니다.

3장 1절에서도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율법주의자들,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사람들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한 후에 4장에 들어와서 오늘 읽은 본문에서 다시금 기뻐하라고 합니다. 특히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모든 염려를 내려놓으라는 말씀입니다. 염려한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기도와 간구’에서 하나는 개인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이 하는 기도나 찬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 6:27) 하셨습니다. 즉, 염려가 생기면 주님께 말씀드리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면서 찬양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세, 태도를 말합니다. 여러분이 선택해야 될 자세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앞을 내다보고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하는 자세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려운 일을 만나게 하심은 우리를 고치시고, 정련하시고, 정결케 하셔서 보다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며, 새로운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하시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은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염려해 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미래 일을 생각해 보아도 그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찾아오는 것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데, 8절입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의 미덕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참되고 경건하며 옳고 정결한지,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름답고 칭찬 받을 만한지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현재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일을 요셉이 당시에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하였겠습니까? 어쩌면 요셉은 자신이 왜 애굽에 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러나 노예로서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옳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형편에 참되며 경건하며 칭찬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하나씩 모여 너무나도 아름답고 찬란한 하나님의 뜻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습니다.
선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도로서의 미덕을 생각하고 살면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0-13절)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의 “항상 기뻐하라”는 사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살펴보아도 기뻐할 이유가 없어도 기뻐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여러분의 삶의 자세, 태도를 선택하면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여러분께서 주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감사와 기쁨으로 헤쳐나간다면, 능히 더 낫고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을 믿고 감사하며 기뻐하기로 결정하면 예수님께서 그 기쁨을 주십니다. 선물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요 15:9-11)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마음도 그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꺼이 허락하시기 원하십니다. 다만 여러분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새해에 여러분과 가정들 위에 기뻐할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아니 힘든 일이 닥쳐도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할 터이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기뻐하며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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