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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3-11 (월) 06:2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016    
겸손하면서도 담대한 사명자(눅 3:18-20)



지난 2000여년 기독교 역사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죄와 싸운 순교자들이 많습니다. 물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간 사명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밧모 섬에서 유배를 당하고 있던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는 다 순교하였으며, 바울을 비롯한 그 외의 사도들도 거의 순교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첫 순교자인 예루살렘 교회의 7집사 가운데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었으며(행 7:58-60), 세베대의 아들,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가 그 뒤를 이어 순교를 당하는데(AD 44년경) 헤롯 아그립바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칼로 머리를 쳐서 죽였습니다(행 12:1-2). 이 외에도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나 내려오는 전승들에 의하면 빌립은 소아시아 지방에서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AD 54년경). 빌립의 가까운 친구였던 나다나엘 혹은 바돌로매는 사지가 묶여 바다에서 던져짐으로 죽었거나 십자가에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마태는 이디오피아에서 사역을 하다가 핍박을 받고 화형을 당했거나 창으로 살해당했다고 합니다(AD 60년경).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돌에 맞아 죽었으며, 시몬은 아프리카와 페르시아에서 사역하다가 톱으로 잘려 죽었거나 마지막에 영국에서 사역하다가 로마군인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형 당했다고 합니다(AD 74년).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었습니다. 안드레는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처형되었으며,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무자비하게 몸을 찢기며 죽었습니다. 의심 많던 도마(디두모)는 인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으로 몸이 관통되어 죽었습니다. 바울은 네로 황제에 의하여 칼에 목을 베여 죽었습니다. 바울의 동역자 누가는 그리스의 우상숭배자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리는 교수형으로 죽었습니다.
이 외에 2세기의 초대교부들 가운데 안디옥교회의 이그나티우스 교부는 로마에서 순교하였으며, 서머나교회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말에 ‘지난 86년 동안 나를 버리지 않았던 주님을 내가 어떻게 배신하겠느냐’고 하면서, ‘너희가 나를 불에 태워 죽여도 내 영혼은 죽일 수 없다.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오히려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순교하였습니다. 4세기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었던 크리소스톰은 유배 중에 끌려가면서 길 가에 있는 작은 교회에 들어가 성찬식을 참여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Glory to God in all things. Amen!’
종교개혁이 일어날 때에도 위클리프나 후스와 같은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의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성경을 평신도들에게 돌려주려고 애를 쓰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영국 ‘피의 여왕’ 메리 때에 많은 청교도들이 믿음을 지키려다가 순교를 당했고, 그녀의 핍박을 피하여 목숨을 걸고 대서양을 건너 신앙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민을 왔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세례 요한도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받고 많은 유대인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마 3:2)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눅 3:8)고 외치다가, 헤롯 안디바에 의하여 2년 가까이 옥살이를 하고 목 베임으로 순교하였습니다(마 14:10).
누가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의 행적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왜 그가 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복음을 전하였기 때문에 옥에 갇혔습니다.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18절)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종교생활의 위선을 꾸짖으며 참된 회개를 촉구했던 요한은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 즉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을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권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아주 상세히 세례 요한의 말씀과 사역을 설명하였습니다(요 3:23-36). 세례 요한이 전한 복음의 초점은 예수님은 하늘의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며, 무한한 성령의 능력으로 전능하시며, 아버지 하나님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시며, 모든 권위를 가지고 계시며, 구세주(Savior)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친구 혼인잔치의 들러리처럼 기쁘며, 예수님이 흥해야 하며 자신은 쇠하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니라”(요 3:29-30)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주제파악을 잘하고 있었고, 참으로 겸손하였습니다. 주님만 드러나기를 원하였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런 영광을 받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도 괜찮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담대히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요한이 사역을 하던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죄를 지적하며 책망합니다.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19절) 하였습니다. 헤롯 안디바는 헤롯 대왕의 네 번째 부인의 아들로서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에돔 족속의 이두메인이었고, 어머니 말다게(Malthace)는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봉왕으로서 해서는 안될 결혼을 하였던 것입니다. 원래 그는 베레아 남쪽 아라비아 나바테아 왕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하여 딸(Salome)도 있었으나, 로마를 방문하는 길에 그의 이복 동생 빌립(Mariamne 의 아들)을 방문하였다가 처제이자 질녀(niece)도 되는 헤로디아에게 반하여 자기 부인과 이혼하고 헤로디아와 결혼을 한 것입니다. 헤로디아도 평범한 남편보다는 분봉왕인 헤룻 안디바를 원했던 것입니다. 서로 불륜의 눈이 맞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행동을 보다 못해 세례 요한은 그들의 패역함을 책망한 것입니다. 율법에도 어긋나는 것이었습니다(레 18:16; 20:21). 사실 헤롯 안디바의 이러한 패륜과 악행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그를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헤롯은 백성들이 자신의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세례 요한이 주동자라고 여기고 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악행 가운데 요한을 옥에 가두는 또 하나의 악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가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20절)고 한 것입니다. 사실 헤롯은 로마제국에서 그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될까 불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을 죽이고 싶지만 헤롯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냥 옥에만 가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을 두려워하더니”(마 14:5) 하였습니다. 요한을 없애고 싶은 남편의 마음을 읽은 헤로디아가 계략을 꾸며서, 그녀의 딸로 하여금 왕의 생일파티에서 현란한 춤을 추게 하여 헤롯의 마음을 사로잡아 딸에게 무슨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요한의 목을 달라하여 죽인 것이었습니다(마 14:6-10).
물론 그랬다고 해서 헤롯 안디바 부부는 그 이후에 잘 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황제 칼리굴라(Caligula)가 헤로디아의 오빠 헤롯 아그립바에게 그의 분봉왕의 자리를 내어주게 하니까, 부부는 로마로 가서 황제를 설득하여 분봉왕 자리를 지키려고 했으나 헤롯 아그립바가 그가 저지른 죄악을 고함으로 말미암아 그 부부는 유배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세례 요한은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감당했습니다. 절대로 선을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인간적으로 높아질 수 있었으나 그는 철저히 낮아져 메시아, 그리스도를 섬겼으며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면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될지도 모르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회개의 복음을 외쳤습니다. 구약의 참된 선지자들처럼 담대하게 백성들에게 공의와 자비를 촉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 때에 신사참배를 하지 않아 감옥에 갇혔다가 1945년 8 15 해방 때 출옥하셔서, 6 25가 발발할 때까지 여수 나병 환자들의 애양원에 다시 복직하여 그들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인민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친구들이 애양원으로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배를 타고 같이 섬으로 피난을 떠나자고 설득하였습니다. 그 때 손양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나 피난을 가시오. 나는 벌써 감옥에서 죽었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8 15 해방을 주셔서 이렇게 다시 살아서 풀려난 것도 감사한데, 내 어찌 다시 피신하겠습니까. 그러니 당신들이나 가십시오.’
그 때 피신하지 않으면 공산당에 붙잡혀 죽는 것은 기정사실 이었습니다. ‘여수 순천 반란사건과 그 진압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던 시점에 북한이 남침을 했으니, ‘여수 순천 반란사건’의 진압 과정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좌익들이, 득세할 것이 뻔했습니다. 하지만 나환자 성도들을 지키며, 손양원 목사님은 끝까지 피난을 가지 않았습니다.
애양원에 공산군이 닥치기 1주일 전부터, 애양원에는 부흥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3번씩 종을 쳐서, 성도들이 모여서 함께 부흥회 예배를 드렸고, 맨 마지막 날 토요일에는, 전 성도가 금식과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회 마지막 날 설교 본문은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이었습니다. 이 설교가 손양원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주 수요일에 잡혀가셔서, 15일 후에 순교하셨기 때문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 설교에서 미리 예상하셨는지, ‘순교에 대해서’ 설교하였습니다. ‘때가 왔다. 순교를 각오하라. 우리가 이제껏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 받았으니,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할 때다. 잘 살려고 노력하지 말고, 잘 죽기를 원하라’고 하였습니다.
1950년 9월 13일(수)이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강대상에서 한참 기도 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공산당들이 애양원에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시던 손목사님을 끌어내서 손에 수갑을 채워서 끌고 가서, 여수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15일 동안, 뭇매를 맞으며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다가 맥아더 장군의 지휘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서울을 탈환하던, 수복하던 날 1950년 9월 28일에 공산당은 손 목사님을 끌고 여수에서 조금 떨어진 미평에 큰 과수원이 있었는데, 그 과수원으로 끌고 가서 총살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양아들로 삼고, 겸손히 나환자들을 돌보며 사역을 하였던 손양원 목사님은 그렇게 순교하셨습니다.
손 목사님 이전에 주기철 목사님이 순교를 당하셨는데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이 되어서는 충절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의에 죽고 의에 살리다. 죽음이 두려워 의를 버리며 죽음을 면하려고 믿음을 버린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의에 살고 의에 죽게 하여 주시옵소서. 옥중에서 혹은 사형장에서 그 어디에서든지 내 목숨 끊어질 때 꼭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1944년 4월 20일 부인 오정모의 마지막 면회에서 간수의 등에 업혀 나온 주기철 목사가 사모에게 전한 마지막 유언은 ‘어머님을 내 대신 잘 모셔 주오. 나의 유체는 고향에 옮기지 말고 평양 석박산 교회 공동묘지에 묻어주오. 내 어머니도 세상 떠나시거든 내 무덤 곁에 묻어주오. 따뜻한 숭늉물이 마시고 싶소. 나는 하나님 앞에 갑니다. 하늘에 가서도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겠소’ 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물론 오늘도 저 북한 땅 정치범 수용소에서 믿음 때문에 순교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모슬렘 권에서 믿음 때문에 순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차 세계 대전 때에 나치군의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Anne Frank 는 ‘In the long run, the sharpest weapon of all is kind and gentle spirit’ 이라고 하였습니다. 길게 보면, 온유하고 친절한 영이 세상에서 가장 날카로운 무기라고 말입니다. Gently, but Powerful!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온 자들은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는 결코 유약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약한 것 같습니다. 늘 온유하고 겸손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속은 아주 강합니다. 담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님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성도들 가운데 담대함, 용기는 있는데 온유함, 겸손함이 없어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니 어떤 분들은 온유하고 겸손한 것 같은데 담대함이 없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예수님에게 배워서 겸손하면서도 담대하여야 합니다. 온유하면서도 진리를 지키며, 믿음을 지키려는 데에는 순교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의에 살고 의에 죽으려는 각오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5-16)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하며 겸손하면서도 담대하여 순교의 각오로 신앙생활하는 그런 믿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그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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