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016,645
오늘방문 : 2424
어제방문 : 2119
전체글등록 : 3,841
오늘글등록 : 2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9-05-13 (월) 05:34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201    
어머니의 믿음(딤후 1:3-5)



회초리를 들긴 하셨지만
차마 종아리를
때리시진 못하고
노려 보시는
당신 눈에 글썽거리는 눈물.

와락 울며
어머니께 용서를 빌면
꼭 껴안으시던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너무나 힘찬 당신의 포옹.

바른 길
곧게 걸어 가리라
울며 뉘우치며 다짐했지만
또 다시 당신을
울리게 하는.

어머니 눈에
채찍보다 두려운 눈물.
두 줄기 볼에 아롱지는
흔들리는 불빛.

시인 박목월의 ‘어머니의 눈물’이라는 시 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적이 있듯이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가슴 뭉클한 단어가 있다면 ‘어머니’ 일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세상이 너무 타락하고 악하여져서 그렇지 않은 어머니들이 예외적으로 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어머니’ 하면 여러분의 가슴에는 그 사랑, 희생, 따뜻한 품, 자식을 위해 오래 참으시는 마음 등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어머니에게서 그런 성품을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불행하게도 여러분의 기억 속에 어머니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만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사실 한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사람 가운데 그의 ‘어머니’만큼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Abraham Lincoln 대통령은 “경건한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자는 결코 가난하지 않다” 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가정에서 아버지와 조화를 이루며, ‘어머니’ 라는 역할에 견고히 흔들리지 않고 감당하면서, 이타적인(unselfish) 헌신을 보인다면 여러분 자신에게나, 가정과, 교회, 더 나아가 이 나라에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예로 18세기 영국의 부흥을 가져온 유명한 John Wesley 와 Charles Wesley 의 어머니인 Susanna Wesley 는 19명의 자녀를 하나 같이 훌륭하게 신앙으로 키운 어머니였습니다. 이러한 어머니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싶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사도 바울이 이제 곧 순교를 당하여 죽을 날이 며칠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 목사에게 편지를 쓰는 가운데 과거를 회상하며, 정말 디모데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면서 쓴 편지입니다. 특히 디모데가 그렇게 훌륭한 신앙을 소유하게 된 것이 자기보다는 그 어머니의 영향이 컸음을 알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바울이 제2차 선교 여행 중에 루스드라 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디모데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행 16:2). 그 어머니는 유대인이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왜 이 청년의 신앙이 이렇게 좋은가 생각할 때마다 그 어머니 유니게가 생각났습니다. 유니게 역시 친정 어머니 로이스로부터 그 믿음을 전수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에는 뿌리가 있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이어받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그 어머니, 외할머니로부터 이어받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로, 청결한 양심(Clear Conscience)의 믿음입니다. “나의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3절) 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하지 않도록 교훈을 받았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어떤 유익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신앙 양심에 거슬리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으므로 모든 일에 자유 하였고, 항상 담대하였습니다.
물론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양심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어떤 불신자들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가 양심을 속이는 것은 자신을 비굴하게 만들고 또 자존감을 떨어뜨립니다. 그 뿐 아니라 패배의식이 생기고, 영적인 어두움이 마음을 덮게 됩니다. 그로 인해 생기는 죄책감은 신앙의 확신을 흐리게 하고,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져서 신앙생활에 기쁨이 사라집니다. 자꾸 넘어지고, 부딪히고, 힘에 겨워합니다. 이유는 그 안에 거룩하신 성령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마저 없으면 아예 신자가 아닙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양심이 청결하지 못하면 해결해야 합니다. 참으로 주님 앞에 회개하고 청결한 양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그 어머니에게서 청결한 양심으로 사는 성도의 삶을 보고 배운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청결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갑니까? 우리의 자녀들에게 청결한 양심의 삶을 몸소 가르치고,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그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온유함(Tenderness), 뜨거운 눈물의 믿음입니다.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4절)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동역할 때에 종종 그가 우는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나약하여 우는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연민으로 인한 하소연하면서 흘리는 눈물이나 비굴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여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헬라인 아버지의 믿음을 위하여 많이 울면서 기도하였을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믿음의 눈물이었을 것이며, 또한 아픔과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흘리는 눈물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연민에서나 비굴한 눈물이 아닌 남자의 눈물은 그만큼 마음이 부드럽고 온유하여서 입니다. 마음이 독하고, 강퍅하면 눈물이 있을 수 없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에게서 그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을 이어받았습니다. 교만하고 강퍅한 어머니가 아니었습니다. 그러한 눈물이 바울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그러한 눈물을 흘려보셨습니까? 자기 자존심이 상하여 억울할 때, 엄청난 손해를 보아서 눈물을 흘리기 보다는, 옆에서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복음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며 언제 눈물을 흘려 보셨습니까?
우리가 가정을 사랑하는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품의 특징은 모든 것이 다 용납된다는 것입니다. 품어준다는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아플수록, 연약할수록, 잘못하여 용서를 구할수록 더욱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 어머니의 품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실수와 부족함을 드러내도 용납될 수 있는 사랑의 품입니다.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을 인하여 즐거워하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사 66:11-13) 하였습니다. 즉 메시아, 그리스도의 사랑이 참된 어머니의 사랑과 같기에 자녀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통하여 주님 사랑도 배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진 말 한마디 보다는 뜨거운 눈물 몇 방울이 자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그 부드러움, 온유함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이 유혹 많은 세상에, 점점 더 강퍅해 가고 타락해 가는 세상에 우리의 자녀들이 바르게 잘 자라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려면 어머니의 눈물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자기 이기심 충족을 위하여 싸우려는 사람보다는 남을 위하여 져주는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자비와 긍휼이 많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거짓이 없는(Sincere) 믿음입니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5절) 하였습니다. 여기 ‘거짓이 없다’는 헬라어 원어는 ‘위선적이지 않다’ 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디모데 어머니의 믿음은 참 순수하였다, 진지하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였다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처럼 늘 순진하고 솔직했다는 말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였다는 말입니다. 유한한 자신의 한계를 알고, 늘 무한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복음서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예수님께서 제일 싫어하신 것이 외식, 즉 위선이었습니다. 속이 컴컴한데 겉은 밝은 것처럼 꾸미거나, 속은 부패하였는데 겉은 신선한 것처럼 하고, 경건의 모양만 흉내 내고, 실제의 삶 속에는 거짓과 불의가 있는 삶은 주님께서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창기와 세리와 같은 죄인들보다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같은 위선자들을 무섭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유년주일학교, 중고등부 선생님들이 여러분들의 자녀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서 머리 속에 집어 넣어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라고 아무리 독촉을 하여도, 여러분의 가정에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직접 보는 것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없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완전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진실하냐는 것입니다. 영어의 Transparent 하냐, 거짓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부족한 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습니다. 자기 피가 흐르고, 부자 간의 애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선적이고, 거짓된 부분은 자녀들이 성경에서 배우는 것과 다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여 갈등이 생기거나, 아니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도 자라서 똑같이 위선으로 살고 거짓으로 삽니다.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정말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는 것을 보기 원하신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하고 진지한 믿음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겉과 속이 똑 같은 투명한 삶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특히 어머니 되시는 성도님들!
여러분의 사랑의 수고와 인내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의 희생과 섬김에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여러분의 믿음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소유한 믿음이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였던 로이스가 갖고 있던 믿음이라면 말입니다. 정말 그런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십시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하였습니다. 콩 심은 데에 콩이 나고 팥 심은 데에 팥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 내가 콩을 심었는데 왜 팥이 나나 하지 마십시오. 정말 자식 농사만큼 중요한 농사가 어디 있습니까? 또 그만큼 힘든 농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어떤 믿음의 씨를 뿌리고, 어떤 비료를 주며, 물을 주고 있습니까? 잡초를 제거하고, 다른 야생 동물들의 와서 헤치지 않도록 지키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적으로만 출세를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빠르면 10년 혹은 약 20년만 지나면 표시가 납니다.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 때가서 후회하지 마십시오.
청결한 양심의 믿음을 가지고 심으십시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반드시 양심에 거리끼는 일에 대하여 꾸짖으십니다. 그때마다 속히 돌이키시고 청결한 양심을 회복하셔서 늘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깨끗하고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온유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십시오. 어머니가 온유하지 않고 자주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른다면 그 가정이 얼마나 차갑겠습니까? 오히려 뜨거운 눈물이 있는 어머니들이 되십시오. 자녀들이 그 온유한 사랑의 눈물을 배우게 하십시오. 옆에 있는 사람이 당하는 아픔과 어려움에 대하여, 잘못에 대하여 넓은 마음으로 가슴에 품고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가르쳐 주십시오.
무엇보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전수하십시오.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한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위선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을 싫어하십니다.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아오심을 좋아하십니다. 순수하게 믿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있는 그대로 믿으십시오. 실천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여 어머니가 그렇게 믿음 생활한다면 자녀들이 그대로 배우고 행합니다. 아버지들은 그런 어머니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본받는 이런 믿음을 자녀들에게 전수하며 주님께 맡겨 드림으로, 자녀들이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다른 사람의 축복의 통로가 되는 전도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247 수요설교 고난 중에 유혹을 이기려면 (벧전 1:13-21) 한태일 목사 2022-05-13 441
1246 주일설교 믿음의 어머니 (룻 1:6-18) 한태일 목사 2022-05-08 517
1245 주일설교 절망에서 소망으로 (눅 24:13-35) 한태일 목사 2022-05-01 540
1244 수요설교 구원의 큰 기쁨으로 (벧전 1:6-12) 한태일 목사 2022-04-28 467
1243 주일설교 선한 목자 요 10:1-5(한영제 선교사) 관리자 2022-04-27 494
1242 주일설교 부활 신앙 (눅 24:1-12) 한태일 목사 2022-04-17 512
1241 절기설교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4-49) 한태일 목사 2022-04-16 500
1240 주일설교 저희 뜻대로 넘겨주다 (눅 23:1-25) 한태일 목사 2022-04-10 574
1239 수요설교 산 소망으로 사는 나그네 (벧전 1:1-5) 한태일 목사 2022-04-07 480
1238 주일설교 너희 말과 같이 (눅 22:63-71) 한태일 목사 2022-04-03 483
1237 주일설교 어떤 실수를 하셨나요? (눅 22:54-62) 한태일 목사 2022-03-27 549
1236 수요설교 의인의 믿음의 기도 (약 5:13-20) 한태일 목사 2022-03-24 579
1235 주일설교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눅 22:47-53) 한태일 목사 2022-03-20 528
1234 주일설교 이 땅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눅 22:39-46) 한태일 목사 2022-03-13 559
1233 주일설교 실패하지만 결국은 ... (눅 22:31-38) 한태일 목사 2022-03-06 637
1232 수요설교 참고 인내하라 (약 5:7-12) 한태일 목사 2022-03-03 630
1234567891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