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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03-20 (일) 06:1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569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눅 22:47-53)




신앙적으로 판단할 때 이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신앙으로 주님을 믿지 않으며, 더 나아가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진짜가 아닌 가짜 신앙입니다. 입으로만 믿는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런가 하면 믿기는 진짜 믿는데, 아직 미성숙한 초신자 수준에서 자주 넘어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진짜 제자로서 성숙한 신앙으로 더욱 주님을 닮아 가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류에 속하십니까?

이제 비극의 드라마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마지막 준비로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늘 기도하시던 감람산 북쪽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이르러서, 예수님 마음이 심히 고통스러워 죽을 지경이 되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힘써 십자가를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제 장면은 바뀌어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대로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큰 무리가 예수님을 잡으러 옵니다(47절). 대제사장들과 성전을 지키는 군관들과 장로들, 또 그들이 파송한 군인들입니다(52절, 마 26:47). 배신자 유다의 인도를 따라 예수님의 기도 장소로 와서 체포하려고 합니다. 유다는 계획대로 예수님에게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다가옵니다. 볼에 입을 맞추는 것은 전통적인 우정의 표시인데, 유다에게는 배신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다에게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48절)라고 합니다. 우정의 표시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배반하고 원수들에게 넘겨주는 극단적인 가식이었습니다. 즉 유다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악하게 쓰인 도구의 모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 좌우에 있던 제자 둘이 체포하려는 무리들을 가로막고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49절)? 앞으로 당할 일을 생각하고 검을 준비하라고 했을 때 제자들이 검 둘이 있었다고 하였지요(38절). 바로 그 검 둘을 가진 두 제자입니다. 그 중에 한 제자는 베드로입니다(요 18:10). 그는 예수님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혈기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검으로 베려다가 귀를 베어 떨어뜨리게 됩니다(50절). 무리들이 베드로의 검을 막을 수가 없었는지, 아니면 베드로가 말고의 가슴을 찌르지 못하고 그가 피하는 바람이 귀만 베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십니다(51절). 마태는 기록하기를, 예수님이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 26:52-53) 하셨습니다. 혈기를, 기질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전능하신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무기를 사용하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입니까? 그리고, 당시 로마 부대의 한 관영(官營, legion)은 약 6000명의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열 두 영(營)이면 약 72,000 천사들 보다도 더 많이 보내시게 하여서 물리치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 한 천사가 앗수르 산헤립 왕의 군사 185,000명을 하룻밤 사이에 죽였다면(왕하 19:35),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무리들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마 26:54) 하신 것처럼, 만약 자신이 천사들을 동원하여 그들을 물리친다면 이미 자신 스스로도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세 번 이상 예언하였고, 구약에서도 여러 번 예언되어진 성경말씀이 어떻게 이루어 지겠느냐고 하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악함도 사용하셔서 예언의 말씀을 주권적으로 성취하시는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군관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52-53절)고 하였습니다. 죄가 없는 분을, 그 동안 선한 일만 하신 분을 강도 잡는 것처럼 체포하려 하는 것이냐? 아니 얼마 전까지 만하더라도 매일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는, 대낮에 공적인 장소에서는 잡으려 하지 않다가 지금 그러니 이는 불법이라는 말씀입니다. 비겁하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가 되었으니 순순히 잡혀 간다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이 때 어둠의 권세가, 사탄 마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태는 예수님이 다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려고 지금 악한 자들이 자신을 불법으로 잡으러 왔다고 하니까,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마 26:56)고 하였습니다. 검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던 베드로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드라마에 세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1) 예수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 2) 3년 동안 예수님을 쫓아다녔지만 결국 가짜 제자로 드러난 가롯 유다, 그리고 3)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11제자도 결국 목숨이 위태하게 되니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가는 모습을 통하여 결함이 있는(defective) 미성숙한 제자들입니다.
아마도 오늘 예배를 드리는 분들 가운데 불신앙으로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동참한 무리들 같은, 주님을 믿지 않거나, 미워하는 분들은 한 분도 없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쩌면 가롯 유다와 같이 가짜 신자 혹은 가짜 제자들이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교회는 다니는데도 유다와 같은 가짜 신자일까요? 이미 살펴보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서는 유다를 가리켜 도적이라고 합니다. 그는 마음에 탐욕이 가득차 있음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돈과 명예가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기대에 완전히 어긋난 상황이 눈 앞에 벌어지니 실망을 하고 은 30전이라도 챙기고 주님을 팔아 넘긴 것입니다. 마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 밭 위에 떨어진 씨와 같았습니다. 태양 빛을 받자 그만 타버리고 만 것입니다. 자기의 원대로 안되자, 유혹과 시험이 오자 실망하고 넘어지고 맙니다(마 13:5-6, 20-21).
또한 가짜 제자는 그의 삶이 속임과 위선으로 가득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님에게 헌신된 사람처럼 행동하였습니다. 사람의 눈으로서는 정말 잘 구별하기 힘듭니다. 마치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가라지와 같습니다 (마 13:24-30, 36-40). 비슷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별해 내십니다. 유다처럼 겉으로는 주님 사랑하는 척 입맞춤도 합니다.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위선입니다. 언제 표시가 납니까? 주님을 따라가는 것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때에 표시가 납니다. 주님을 위해서 희생하지 못합니다.
교회 역사상 어느 시대에든지 그런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교회를 다닙니다. 근본적인 이유, 그 동기가 만약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라면 가롯 유다와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죄 사함을 얻는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고, 그의 영광을 위하여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짜입니다.  

한편,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11제자의 모습을 보면서 미성숙한, 결함이 있는(defective) 제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함이 있는 물건을 사신 후에 실망하고, 후회하며 그 물건을 만들은 회사나 사람들을 욕해보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관심과 사랑을 쏟으며, 기적을 베푸시며, 주옥 같은 말씀으로 가르치셨건만 결국 큰 무리가 와서, 자신들을 잡아가려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주님을 잡고자 하니 다 도망가는 제자들의 모습이 미성숙한 결함이 있는 제자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가롯 유다와 같은 가짜 제자보다는 조금 낫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정직한 신자들은 때때로 자신들도 그렇게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수치를 당하는 경우나 피해를 보는 때, 비겁하고 불신앙적으로 행동한 경우들이 종종 있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연약해서 실수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로서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데 그 대가가 너무 클 경우에 약해져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관대해서는 곤란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계속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변해야 합니다. 성숙해져야 합니다.
11제자들의 모습에서 미성숙한 결함이 있는 제자들의 특징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경계하여 참된 제자들로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첫째는, 그들은 사탄 마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도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3제자를 포함하여 모두가 겟세마네 동산에 함께 갔지만, 다들 자고 말았습니다.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슬퍼 낙심하면서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험이 올 때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자가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게으르면, 즉 사탄 마귀와의 전쟁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시험과 유혹에 약해지고, 두려워하며, 실수, 실패하게 됩니다. 둘째로, 일시적인 감정을 따라 충동적이며 즉흥적입니다. 혈기를, 기질을 드러냅니다. 11제자들 가운데 특히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에 의존하기 보다는 감정을 따라 혈기를 부리며 행동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관점에 비추어 행동하기 보다는 불완전한 자신의 감정과 이해에 의존하여 행동합니다. 이러한 신자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지 않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참을성이 없습니다. 인내하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와 약속의 말씀을 마음에 담기를 거절한 제자들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자신들이 기대한대로 되지 않을 때에 그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염려만 하면서 도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삶의 주인으로 살려고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어려움으로부터 헤쳐 나가려 할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선하신 뜻이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습니다.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넷째로, 그들 삶은 영적이 아니라 육신적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기 보다 육적으로, 세상 나라 방법으로 살려고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고 말한 것처럼, 육신에 속한 자처럼 행동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모습이 전형적입니다. 자신의 검으로 예수님이 체포되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주님의 길, 주님의 방법,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 자신의 검을 의지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가짜 제자와 미성숙한 제자의 특징들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신자’와 ‘제자’ 단어를 섞어 가며 사용하였습니다. 이유는 참된 신자라면 예수님의 제자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 제자도의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신앙에 차이가 있겠습니다만, 예수님을 진실로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신자는 진짜 제자입니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목사로서 우리 교회에는 가짜 신자가, 가짜 제자가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가롯 유다와 같이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을 속이며, 위선이 가득찬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정말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동기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그 정도 차이는 있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주님 사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고, 이웃을 위하여 신앙생활하시는 진짜 신자, 진짜 제자이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미성숙하여 결함이 있는 제자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탄, 마귀와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늘 패배하는 제자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를, 혈기나 기질로 신앙생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리지 못하는, 참을성이 없는 제자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육신적으로 해결하려는 제자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육신의 검이 아니라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결함이 없는 성숙한 제자! 조금 부족하고 못나고 화려하지 않아도 결함이 없는 제자,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주님을 닮아가려고 애쓰는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성숙하여 결함이 있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이 임하신 후에 모두가 변화를 받아, 고침을 받고 돌이키어 온전한 제자들로 주님을 따르는 데에 어떤 희생도, 어떤 대가도 치렀던 그들의 삶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도 매일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하여, 결함이 없는 성숙한 제자이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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