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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4-12 (금) 05:34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75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들 (빌 2:19-30)
우리 주위에 진실한 믿음의 친구가 있는지요? 혈연관계의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로 신뢰할 수 있는 돕는 자들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이지요. 그러한 친구들은 우리를 도울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변화(transform)를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지내면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마치 “속지 말라 악한 친구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라고 한 것처럼, 그 반대로 선한 친구들은 좋은 성품, 용기, 겸손, 리더십, 신실함, 기쁨 등을 북돋아 줍니다. 진실한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 17:17)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선한 친구들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잘 참고 견디어 이기도록 도와줍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형제보다 더 가까운 그런 진실한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처럼 말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바나바, 실라, 마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여집사 뵈뵈 등이 있습니다. 로마서 16장에 그런 인물들을 열거해 놓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두 친구에 대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에게 그들은 큰 위로와 격려, 힘과 용기를,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바로 영의 아들과도 같은 디모데와, 형제라고도 불리는 에바브로디도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19절) 하였습니다. 빌립보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기 원했던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어 주 안에서 그들의 사정을 알고 싶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위로를 받기 원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들은 젊은 디모데보다 더 나이도 많아 경륜이 있고 알려진 사람이 오기를 바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모데가 어떤 사람이기에 바울은 그렇게 신뢰하고 있나요?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20절)고 하였듯이, 디모데는 바울과 뜻을 같이 하여 자신 스스로 먼저 빌립보교회에 가기 원했던 것입니다. 로마에서 빌립보까지 가는 길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나 바울의 마음을 헤아려 자원하여, 아니 바울처럼 그들의 사정을 진실로(genuine) 알기 원하는 관심이,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Slide 4-1] 즉,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는 우리에게 정말 관심을 기울이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자입니다.
또한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1-22절)고 하였습니다. [Slide 4-2] 즉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일, 즉 복음을 위하여 일하기 보다는 자기 일을 먼저 하려고 하지만, 디모데는 연단 속에서도 바울과 함께 자기 일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헌신한, 복음을 위하여 수고를 다했다고 합니다.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헌신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수고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영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처음 만난 것은 실라와 함께 그의 2차 전도여행을 할 때였습니다(행 16:1-2). 루스드라에 도착했을 때 신자들이 한 젊은 청년을 칭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이방인이지만, 유대인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 (딤후 1:5; 3:14-15) 아래서 구약성경을 배우고 자랐습니다. 신실한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믿음을 전수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만나 동행하면서 그 진실한 믿음이 성장했습니다. 훈련을 잘 받았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였습니다(딤후 3:14). 청결한 양심으로 3대에 걸쳐 믿는 하나님께 눈물의 감사를 드리며 살던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딤후 1:3-4). 바울이 마게도니아, 특히 데살로니가 교회나 그리스의 어느 교회를 보내도 그 교회를 든든히 하고 격려하는 디모데였습니다(데살전 3:1-2; 행 19:21-22).
그래서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23-24절)고 한 것입니다. 비록 그가 젊지만 연단을 받은 사람으로서 빌립보교회에 보내기에 적합한 자신의 아들과도 같은 자라고 하면서, 자신도 속히 가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디모데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자라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믿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바울의 두번째 친구는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입니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25절)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기 전에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빌립보교회에서 온 사자였습니다. 목회자였습니다. 로마 감옥에까지 바울의 쓸 것을, 필요한 것을 가지고 온 것이었습니다. 먼저 그를 보낼 이유는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26절)고 한 것처럼, 로마에서 꽤 오래 있으면서 중병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가 죽을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빌립보교인들이 듣고 심히 근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실망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을 돕기 위하여 로마까지 갔는데 하나님께서 죽을 병을 허락하셨는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크게 실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면 어떤 이들은 그가 로마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는데 가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는 식으로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에바브로디도가 심히 근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낫게 하셨습니다.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27절). 자기를 돕기 위하여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찾아왔는데 그만 죽을 병이 걸려서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바울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마 바울이 즉각 안수하여 고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또한 바울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근심을 면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28-29절)고 빌립보교회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걱정하고 있을 빌립보교인들을 생각하고 급하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냅니다. 그러니 다시 에바브로디도를 만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이 그를 보고 기뻐하며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Slide 5-1] 즉 에바브로디도는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는 친구요, 동역자인 것입니다. 바울은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30절)고 합니다. 자신을 섬기기 원하는 빌립보교인들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목숨도 마다하고 고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라고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를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25절) 라고 한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과 함께 로마 감옥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함께 군사된 자라는 뜻은 함께 고생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도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고 한 것입니다. [Slide 5-2] 즉 에바브로디도, 바울의 진실한 친구요 동역자는 친형제처럼 함께 수고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돕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방문은 바울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온유전도회원 여러분!
여러분에게 이런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가 있습니까? 디모데처럼 진실로 여러분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사랑하는 자가 있습니까? 자기 일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고 수고하는 자가 있습니까? 에바브로디도처럼 고난이 있어도 자기를 돌보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헌신한 자, 친형제처럼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하며 돕는 자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요, 제자인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이 그런 진실한 믿음의 친구요, 동역자입니까? 목사의 진실한 친구요 동역자입니까?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는 귀한 일꾼들의 친구요, 동역자입니까? 여러분 때문에 누군가가 힘을 얻고,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제자로 살아간다면 오늘의 바울처럼, 디모데처럼, 에바브로디도처럼 주님에게서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또한 행복한 친구요 동역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 이런 진실한 친구가 있습니다. 죄인의 친구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옆에 있습니다. 그래서 아일랜드 출신으로 25세 때 홀로 캐나다로 이민을 간 Joseph Scriven 이 1855년 고국에 계신 어머니가 슬픔을 당했을 때 보낸 시가 바로 What a Friend We Have in Jesus 찬송시입니다. 자신도 결혼식 전날 약혼자가 익사하는 슬픔을 경험하면서 말입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시험 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 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 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친구였습니다(대하 20:7; 사 41:8). 모세도 하나님이 친구처럼 이야기하셨습니다(출 33:11).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 그의 친구라고 하였습니다(요 15:14). 우리 모두 주님의 친구가 되며, 우리의 친구이신 주님이 곁에 항상 있음을 잊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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