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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4-28 (일) 10:48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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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29    
성령을 훼방하는 죄 (막 3:20-30)



하나님은 그 속성상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구약에 그 용서하심의 가르침이 풍성합니다(출 34:6-7; 시 86:5; 103:3; 단 9:9; 미 7:18-19). 사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죄 용서하신 예가 너무도 많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비롯하여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이, 모세가 죄를 범하였을 때에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사사 시대, 왕정 시대의 이스라엘이 반복하여 죄를 범하더라도 용서하셨습니다. 마지막에 할 수 없어서 징계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용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신약의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용서의 하나님으로 묘사됩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 1:7) 하였으며, 요한은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요일 2:12)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그 죄가 심각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 아들까지 죽이는 죄를 범했더라도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그들의 죄 용서를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눅 23:34). 죄가 아무리 크고 중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비는 용서를 베푸실 수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죄도 하나님의 은혜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상숭배자도, 살인자도, 간음한 자도, 언약을 깨뜨린 자도, 자기 의를 세우는 자도 용서하심을 봅니다. 사실 주님을 거절한 죄도 나중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을 영접한 후에 회개함으로 용서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에 주님을 거부한 적이 다 있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아무리 작은 죄라도, 아니 아무리 큰 죄라도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하는 영원한 죄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밤낮으로 찾아오는 무리들로 인하여 몹시 피곤하셨던 예수님은 그들을 멀리하고, 산에서 철야기도를 하신 후에 12제자들을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이 훈련을 받아 앞으로의 사역을 준비하도록 하신 후(7-19절), 어느 집으로 들어가십니다(20절). 그런데 거기서도 무리가 모여들어 예수님과 제자들은 식사할 겨를도 없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친속들(family)이 예수님을 붙들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직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모르기에, 아마도 당시에 권력이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충돌하여 그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하겠구나 생각하고,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붙들고 집으로 데려가려고 한 것 같습니다. 또 어쩌면 이전에도 자칭 메시아라고 주장했다가 지나가 버린 사람들도 보았기에 자신이 메시아라고 하니 미쳤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들은 불신자들 보기에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정상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 베스도 총독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행 26:24)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도, 존 번연도, 존 웨슬리도 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들 눈에는 비정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정상으로 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들과 비슷하게 살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참된 성도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미친 사람들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또 기적을 행합니다. 마가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 병행구절에 의하면,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마 12:22)고 합니다. 그 전에도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지만, 이 경우는 귀신도 들리고, 눈도 멀고, 말도 못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을 그에게 데려오자 이전처럼 고쳐 주십니다. 그러나 영의 눈이 어두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 능력의 근원인 성령님이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이 "저가 바알세불을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22절)하며 예수님을 고소합니다. 당시 그들의 위선과, 전통에 근거하여 진리를 저버리며 불의를 행하는 것을 꾸짖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이며 시기, 질투로 고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메시아, 다윗의 자손의 정반대는 귀신을 다스리는 바알세불이었기에 예수님을 그 사탄의 종으로 무리들 앞에서 고소하는 것입니다. 바알세불(Beelzebul or Beelzebub; lord of the flies)은 고대 가나안 땅의 우상신의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의미는 ‘왕이신 바알’ 혹은 ‘파리떼의 왕’ 입니다(왕하 1:2). 즉 사탄의 동의어입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엑소시즘은 희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수님을 고소할까요? 아마도 예수님은 지금까지 그 누구보다도 훨씬 크게, 자주 귀신을 쫓아내었고,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비난을 들은 예수님은 그러한 고소에 대해 23-27절까지 비유의 말씀으로 논리적으로 응답합니다. 첫째,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는 그 고소는 불합리한, 합당치 않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불러다가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스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이에 망하느니라"(23-26절)고 하십니다. 즉 저들이 고소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당치 않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제외하고는 사탄이 가장 영리한 영물인데 어떻게 서로 분쟁하며 쫓아내느냐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라도, 집도 스스로 분쟁하면 망하게 되어 있는데, 사탄이 그렇게 서로 싸워서 자기 나라를 무너뜨리는 사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사탄이 혼란과 무질서의 장본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그렇게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오게 하려는 것이지 자기 사탄의 나라를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그러한 고소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지 않고는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치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27절)고 하였습니다. 마태는 병행구절에서 더 구체적으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 12:28-29)고 하였습니다. 즉 그들의 고소 뒤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에 의하여 귀신을 쫓아낸 것인데,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였고 메시아가 와서 이미 다스리기 시작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강한 자로 설치는 사탄을 결박하고 나서야 그 집을, 그 나라를 빼앗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사탄의 나라를 물리치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탄은 하지 못하는, 죄를 사하는 권세까지 보이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사탄보다 자신이 더 세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사탄의 종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고 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과의 관계,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오직 두 가지만 가능합니다. 함께 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양을 함께 모으지 않으면 헤치는 자라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하나님 편이 아니면, 사탄 편인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한다면 곧 영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결국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저주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28-29절)고 하십니다. 여기 훼방(blasphemy)이라는 말은 죄의 극단적인, 하나님 모독을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일반적으로 죄가 전반적인 모든 부도덕과 불경건한 생각과 행동을 대표한다면, 훼방은 하나님 자체를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의지적으로, 공개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항하며 악하게 말하거나 모욕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그러한 죄는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습니다(레 24:16).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는 다른 모든 죄와 같이 그러한 훼방도 자백하고 회개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딤전 1:13-14)라고 고백하면서, 이어서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15절)고 유명한 말씀을 남겼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저주하며 훼방하였으나(막 14:71) 나중에 용서를 받고 회복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도 때로 심지어 주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말이나 생각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공평하심, 신실하심, 사랑과 자비 등을 의심하는 것도 훼방죄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자들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일 1:9)의 말씀처럼 자백하고 회개하면 죄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죄와 훼방을 용서하시지만 예외가 하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바울처럼 예수님에 대하여 잘 모를 때에 주님을 말로 거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알면서도, 아니 잘 모르면서도 성령을 훼방하며 말로 거역하면 그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2제자들의 경우에도 3년을 따라다녔어도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완전한 계시를 보여줄 때까지는 주를 부인하며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회개하여 용서받고는 크게 쓰임을 받지 않았습니까? 주님 이 땅에 살아계실 때에 그렇게 말로 거역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성령님을 보내주신 후에 성령님께서 계시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를 부인하며 훼방하면 그 죄는 용서함 받지를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29절에 “성령을 훼방하다”는 동사시제는 원어를 살펴보니 미완료(imperfect)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계속, 지속적으로 훼방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그들에게 수 차례 성령님의 역사를 보여주시고 메시아임을 나타내셨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탄의 종이라고 고소하며, 하나님을 대항하고 거역하면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많은 증거를 보여주며 모든 귀신을 쫓아내시며, 사람의 죄도 사하심을 보고도 사탄이 하는 짓으로, 속이는 것으로 거짓 고소하며 예수님을 향하여 NO 라고 함은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죄가 영원한 이유는 자신들의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는, 축복의 기회를 만나서 심지어는 그 은혜를 체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나님을 향하여 등을 돌리면, 하나님도 그를 향하여 등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참고- 사 5:1-6). 예수님 당시 성령을 훼방한 불신앙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스스로 끊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충분히 보여주셨지만, 거역하며 성령의 역사를 오히려 사탄의 능력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 2:3-4)라고 경고하시며, 나중에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가 주어졌음에도 거역하는 자에게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고 아주 심각한 경고를 더하고 있습니다. 정말 오늘날은 완전한 계시인 성경 66권과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온 교회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훼방하며 그 진리의 말씀에 끝까지 거역하며 등을 돌리는 사람은 구원으로부터 자신을 영원히 잘라내어 버리는 것입니다. 영원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이 전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이 들려지고,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주님께로 인도하시기 원하시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거역하시면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아직도 성령께서 마음을 두드리시는 데도 불구하고 열지 않으시는 분 계십니까? 마음을 여시고 지은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받아 주십니다.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 1:12).
아니 이미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여러분! 참으로 귀한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기 전, 그 밤이 오기 전에 주의 일을 하셔야 합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아직 믿지 않는 자에게, 듣지 못한 자에게,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한 자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아니면 영원히 그들을 놓치고 맙니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고 하였습니다.  계속 완전한 빛을 거역하는 자는 더 이상 빛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용서함을 받지 못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복음을 전하는 입술들이, 복된 발걸음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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