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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5-09 (목) 06:03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40    
푯대를 향하여 (빌 3:7-16)
우리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의 주제인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1절)는 명령 하였습니다. 이유는 빌립보교회에 어려움이 닥쳐서 교인들에게 기쁨이 사라진 것입니다. 교회를 힘들게 하는 무리들이 있었는데, 율법주의를 전하는 자들로서 율법을 지키는 육체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자신도 세상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은 너무 많다고 하였습니다(5-6절). 혈통을 자랑하였습니다. 지파도 왕족임을 자랑하였습니다. 또 예루살렘에 유학하여 정통파인 힐렐학파 가말리엘 수하에서 공부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에 능통하고 율법에도 능통하였음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613가지 율법 계명을 다 잘 지켰다고 생각하며 자기 의를 자랑했습니다. 열심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는 그런 자랑을 다 해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7절) 하였습니다.여기 ‘해’는 원어적인 의미에서 ‘손해(loss)’를 뜻합니다.
바울이 세상적인 모든 자랑을 손해로 여길 수 있었던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오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8-9절)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다음부터는 그 모든 세상 자랑을 잃어버리고, 아니 배설물(쓰레기)로 여기게 된 것입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얻게 됨은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믿기 전의 세상 자랑거리를 영적인 삶에서는 다 해로 여겨야 합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어 하나님의 의가 우리 안에 전가되어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게 된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10-11절)고 하였습니다. 원어에 의하면 이 문장의 본동사는 ‘알려고 한다’입니다. 이 동사를 수식하는 것이 ‘본받아’ 입니다. 우선 알려고 하는 것이 세 가지를 말합니다. 경험적인 지식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더 알려고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많이, 더 깊게, 더 친밀하게 아는 것을 말합니다. 알면 알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며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려고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능력, 죽어도 사는 능력 그 놀라운 능력을 더 많이, 더 깊게, 더 효과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Slide 2-3] 셋째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어떻게 동참하는 것인지 알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한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는지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기꺼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주님처럼 되기 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얼마나 그리스도를, 부활의 능력을 알고 있습니까? 그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온갖 고난 가운데 십자가에 죽기까지 낮아지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기 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 하였고, 이어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8-11)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죽으심 말입니다. 그리고 의에 대하여 살으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늘 나는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의에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 합니다. 여기 ‘여긴다’는 말이 아주 중요한 단어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는 줄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본받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려고 하면 고난이 찾아옵니다. 우리 예수님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에 참예함을 알기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11절) 하였습니다. 물론 미래의 부활을 말하고 있지만, 현재적으로 적용하자면 바울은 우리 믿는 자들의 육신이 죽어 있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감정이나 의지, 모든 육신적인 것은 죽었다고 여기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해서든지 육신의 유혹과 정욕을 벗어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합니까? 우리가 죄성을 지닌 몸을 지니고 있는 상태에서 유혹과 정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의 성령님을 따라 육체의 욕구와 싸우고 훈련하는(discipline) 과정을 통하여 우리가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상당한 수준까지 육체의 욕망을 죽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 때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주님을 닮기 위하여, 주께 나를 드리기 위하여 내 삶을 포기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지만 나를 포기할수록 엄청난 성령의 능력,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활의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 안에 있는 죄성과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절하-8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몸과 마음이 길들여지기만, 훈련으로 절제되기만 하면 성령의 능력은 얼마든지 우리 안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 사랑이 비결입니다. 사랑이 깊어지면 됩니다. 더욱 뜨겁게 사랑하면 됩니다. 그런데 자주 만나고 가까이 해야 사랑이 깊어질 것이 아닙니까? 자주 교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첫 사랑을 유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깊어지기는 커녕 첫 사랑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렇게 늘 주님을 가까이하면서 찬양을 드리고 살았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는 칭찬을 들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자주 만나면, 가까이하면 주님의 뜻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을 가까이하면 주님을 닮게 됩니다. 세상 자랑 다 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은 죽고, 주님께서 사시는 것처럼 살 수 있습니다. 변화 받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십니까? 우리가 자꾸 멀리 가니까 가까이 오게 하기 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편하면, 부하면 하나님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대로 가면 안 되는 줄 아시고 어려움을 주셔서 주님을 붙들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기 전에 주님을 붙들고 사는 자가 지혜로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14절)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저와 여러분을 택하셔서 부르신 까닭은 구원을 받아 천국에 이르는 것뿐만 아니라, 훗날 그 부름의 상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푯대, 그 부르신 부름의 상을 생각하며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 성숙해져야 함을 간절히 열망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12절상)고 하였으며,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13절상) 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주로 믿고 사는 성도는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상을 위하여 영적으로 성숙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완전히 닮는 그 날에 이르기까지 내가 영적으로 성장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 3:18). 육체적으로도 아이들은 자라기를 원하듯이 영적인 아이들도 자라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자신의 영적 상태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후서를 끝맺으면서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하였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영적으로 더욱 자라가야 합니까? 1)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2) 받은 구원이 진짜임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즉 구원의 확신을 가져다 줍니다. 3) 자라지 않아서 오는 슬픔과 고통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5)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가 참인 것을 나타내며, 잃어버린 자들에게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영적으로 자라가기 위하여 무엇인지 필요합니까?

첫째는, 최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12절)고 합니다. 여기 "좇아가노라" (press on) 하는 단어는 ‘뛰어간다, 따라간다’라는 뜻으로, 적극적으로 힘을 다하여 좇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지런히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생을 살아가는 바울의 목적이 그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같기에, 즉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심이니라"(롬 8:29)고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숭고한 목적을 위하여 오늘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한 가지 푯대, 초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13절)라고 하였습니다. 초점에 집중하는 것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경주하는 자들은 앞에 놓인 목적지에 눈을 떼지 말고 집중하여야 함을 잘 압니다. 만약 옆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나 TV 카메라에 시선을 자꾸 두기 시작하면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지금 내가 완전한 자가 되지 못하였으니, 아니 이 세상에 사는 한 내가 완전한 자가 될 수는 없으나, 온 마음을 다해 그 푯대를 향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딴 곳을 쳐다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처럼(약 1:8)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지나간 과거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뛰는 사람이 뒤를 쳐다보며 경주한다면 넘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회개를 위한 자기 반성이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회고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죄로 인하여 죽었던 자기 과거에 집착하여 현재 삶에 영향을 미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거나, 혹은 과거의 성공을 회상하며 현재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못하다고 하였습니다(눅 9:62). 우리 성도들의 경주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입니다. 죄된 과거는 하나님께 자복하고 회개하여 깨끗이 버리고, 과거에 받은 축복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영광을 돌리고,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에서 ‘잡으려고’하는 말은 앞서 말씀드린 최선을 다하여 내 근육의 한계까지 늘려서 목적지까지 뛰는 것을 말합니다. 현재에 머물러 안주하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니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고 목적지에 집중하여 뛴다는 것입니다. 만약 현재라고 하는 제자리에 멈추거나 주저앉아 버리면 지금까지 달려온 과거는 송두리채 없어지고 맙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을 잃고 맙니다.
셋째는, 올바른 동기(motivation)가 필요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좇아가노라"(14절)고 하였습니다. 이 상은 우리 성도들이 최선을 다해 경주할 동기를 제공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은 주께서 우리를 저 천국으로 인도하실 때에 주어집니다(참고- 마5:12; 눅 6:23; 고전 3:12-15). 마지막 결승점은 천국입니다. 바울은 임종을 앞두고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라고 고백하였듯이, 그 동안 부지런히 한 가지 목적에 집중하며 최선을 노력을 다하여 뛰어온 그에게 의의 면류관이라는 상이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마리아전도회원 여러분!
바로 오늘 주님에게, 하나님 나라에 헌신할 이유입니다. 부르신 부름의 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상을 받기 위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정말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노력하기 원합니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목적지인 푯대에 집중하여 달음박질하기 원합니다. 심령이 느슨해질 때마다, 헌신이 약해질 때마다 주님 만날 그 시간에 주실 부름의 상을 바라보십시오.
자랑할 만한 것들을 다 손해로 여기십시오. 뒤엣 것을 잊어버리십시오. 현재에 자만하지도 안주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계속하여 주님 만나는 그 시간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미래지향적으로 경주하여야 합니다. 목적지에 도달할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날마다 더해가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 푯대에 집중하여서 달려가야 합니다. 이유는 우리를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 우리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기에 오늘 주님을 의지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 토기장이 하나님께서는 종종 고난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빚으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고 하였습니다. 이미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까?
어찌하든지 우리 모두 더욱 힘찬 경주로 주님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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