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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11-28 (일) 04:4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89    
환란과 핍박 중에도 (눅 21:12-19)


신앙생활하시면서 누구에게 핍박을 받아 보신 적이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가 누구에게 조롱이나 수모를 당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참 믿음이 있다면, 존귀한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로서 그 이름 때문에, 믿음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헤롯 대왕이 중건한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이 파괴되리라는 예수님의 충격적인 선언에 제자들은 그 시기와 징조를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주후 70년 그 성전파괴 전에 일어날 일들은 물론 세상 종말, 마지막 때에 나타날 큰 표적, 징조(Sign)들을 말씀하셨습니다(눅 21:5-11). 무엇보다 많은 적 그리스도 혹은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는 징조들을 말씀하시고, 땅과 하늘의 징조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징조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전쟁, 큰 지진, 기근과 전염병 등과 하늘의 징조 등 말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서두에 “이 모든 일들”이라 함은 앞서 말씀드린 징조들을 말합니다(8-11절). 성도들이라고 해서 전쟁이나 지진, 기근, 전염병 등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이 세상이 주는 환란과 핍박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했으니, 그를 따르는 우리도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인하여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12절)라고 합니다. 당시 사도들과 많은 성도들이 로마제국 이래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기 때문에 어떤 핍박이 온다고 합니까? 첫째, 다른 종교로부터의 핍박입니다. “너희에게 손을 대어 핍박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그랬듯이, 사도행전에 기록이 되어(행 4장, 5장, 8장, 12장, 16장, 22장, 26장) 우리가 아는 대로 유대교로부터,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핍박을 받은 사도들입니다.
오늘날도 다른 종교를 믿는 무리들이 진실한 성도들을 얼마나 핍박합니까? 어떤 종교는 예수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 조롱하며 수많은 성도들을 억압하며 고문하고 옥에 가두고 죽이거나 추방하지요. 모슬렘교도, 힌두교도, 많은 이단들도, 무신론자들도 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을 핍박합니다. 심지어 남미의 천주교도 기독교인들을 엄청 핍박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개척해 놓고 떠났더니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행 20:29) 하였듯이 말입니다.

둘째로, 정부로부터의 핍박입니다. 12절에 계속해서 “임금들과 관장들 앞에 끌려 가려니와”라고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로마 제국의 임금들과 총독들에게 얼마나 사도들이 핍박을 받았습니까? 그런데 이 일이 도리어 예수님에 대한 증거가 된다고 합니다.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13절)고 하셨습니다. 마치 바울이 헤롯 왕에게(행 12장), 아그립바 왕에게(행 26장) 고문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었듯이 말입니다.
교회 역사상 얼마나 많은 나라가, 정부가 교회를, 성도를 핍박하였습니까? 오늘날도 공산주의 나라인 중국과 북한은 1년에도 수많은 신자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처형합니다. 무신론자들이며, 독재국가이기에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주님으로 섬기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중동 지역의 모슬렘권 나라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사탄, 마귀의 앞잡이가 되어서 아무리 서방나라에서 압력을 가하여도 듣지를 않습니다. 종교의 자유와 인권을 허락하라고 하지만 듣지 않습니다. Christianity Today 기독교 매거진의 ‘Open Doors’ 와 ‘World Watch List’ 라는 단체의 보고에 의하여 올해 초에 발표한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나라 순서는 작년과 동일하게 북한입니다. 그 뒤를 이어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리비아, 파키스탄, 에리트리아, 예멘, 이란, 나이지리아, 인도가 2위부터 10위라고 합니다.  이 보고서의 통계에 의하면 매일 전세계적으로 13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고 합니다. 한달에 400명 정도가 순교를 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엄청난 극도의 핍박을 받는 나라들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3억 9백만 명인데, 이는 작년의 2억 6천만 명에서 4천 9백만 명이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핍박 속에서 예수님이 증거되고 전도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그렇게 끌려가 핍박을 받을 때에,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연구치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재와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14-15절)고 합니다. 무슨 말로 그들 앞에서 변호할 것인지 미리 연구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대항할 수 있는, 말로는 그들에게 지지 않을 능력, “구재와 지혜”를 주시겠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병행구절에서는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고 하였습니다. 즉 핍박이 올 때 어떻게 무슨 말을 할까 염려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유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많는 순교자들이 마지막 얼마나 힘있는 증거를 하고 죽어갑니까?

셋째로, 가족들과 친지들로부터의 핍박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에 몇을 죽이게 하겠고”(16절)고 합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마 10:21)고 하였습니다. 성도들이 자기 자신들의 가족들로부터 핍박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다고 고발하여 죽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5-36)고 하셨습니다. 주후 2-3세기에 로마 제국의 핍박이 너무 심할 때에 많은 신자들이 그 형제나 아비, 자녀들, 친지의 고발에 의하여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도 믿는 성도들이 진실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다 부모나 형제, 자녀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주님을 더 사랑하는 자가 주께 합당하다고 합니다(마 10:37).

이어서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치 아니하리라”(17-18절)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 모든 사람이 세상 사람 누구나 다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과장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속한 사회에서 어느 나라든지, 어느 인종이든지, 어느 계층에 속했던지 무론하고 진실한 성도는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게 됩니다. 18절에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 육체의 고통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16절에서 죽게 되는 사람도 있다고 했는데 상반되는 말이 아닙니까? 이 뜻은 이미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고 말씀하신 것처럼, 몸은 죽이고 영혼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을 지옥에 던져 넣을 권세가 있는 예수님을 두려워 하라고 하였듯이, 우리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육체의 생명을 빼앗아 갈지 몰라도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우리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거짓 종교는 사탄 마귀에 의하여 조종되기 때문에 신실한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지금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이 조종하는 나라나 정부도 성도들을 핍박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신 가정이나 경건치 못한 가정도, 사회도 의로운 성도들을 용납하지 못하기에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미움을 받는다고 하여서 마음 아파할, 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 팔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사실 그런 핍박에서 견디는 자가 참으로 구원을 받은 자인 것을 믿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핍박을 참는 것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에서 참는 것은 구원받은 증거가 됩니다. 참으로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롬 2:7) 하였으며,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 3:14)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에서 어떤 핍박도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의 믿음이 진실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핍박 속에서 견디지 못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산다면 그것도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진실한 믿음인지 의문이 갑니다. 아마 마지막 때가 되면 온 세상에 누구나 할 것 없이 큰 핍박이 올 것입니다. 그 때에 교회의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될 것입니다(고전 3:12-15). 그저 입으로만 신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작은 핍박에도 이기지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큰 핍박이겠습니까? 그러나 진실한 성도들은 어떤 핍박에도 견디어 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19절)고 하였고,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고 하였습니다. 환란과 핍박 중에 어떻게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견딜 수 있을까요? 우리의 앞서 가신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끊을 수 없다는 말씀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 37-39)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고 하여서 의도적으로 핍박을 자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마 10:23)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이 말씀대로 사역을 하였습니다(행 12-14장, 17장). 한 곳에서 핍박이 너무 심하면 거기서는 사역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없기에 거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핍박이 두려워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이 있기에 떠나는 것입니다. 그는 한번 돌에 맞아 죽을 뻔하였습니다만, 절대로 팝박자를 시험하기 위하여 고집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쩔 수 없어서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 나라 일을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처하여야 합니다. 정말 떠나야 한다면 떠나야 하겠지요. 다른 곳에서 더 효과적으로 주님 위하여 사역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핍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기를 부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기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단의 뿌리는 일제시대 믿음을 지키고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를 한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우리 교단을 세웠습니다. 이런 교단에 속한 교회의 교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신앙을 본받아 살기를 바랍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 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옥중에 매인 성도나 양심은 자유얻었네
우리도 고난 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아 멘

어떤 교인들은 환란을 당할 때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인들은 극심한 환란 가운데서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갑니다. 이유는 어려울 때 자신을 위로하며 힘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견디기 때문입니다. 환란으로 인하여 오히려 믿음이 더 깊어집니다. 그래서 저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의 믿음이 편안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보다 훨씬 탁월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인으로 섬기고 산다면,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핍박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점점 핍박이 심해질 지 모릅니다. 하나님 말씀 붙들며 믿음으로 잘 견디시기 바랍니다.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삶이 편안하지는 않습니다.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신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이 아직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시시 틈틈이 성도들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핍박, 어려움에서도 우리 위하여 죽음 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오늘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셔서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으로 신앙의 지조와 절개를 지키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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