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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1-12-05 (일) 02:2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650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고전 4:1-5)


사람들은 어느 사회에서든, 어느 공동체에서든 계급 혹은 순위를 정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우리 사회 자체가 경쟁사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서조차 그런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분상 정해진 호칭들임에도 불구하고 ‘계급화’ 하여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직분 안에서도 나름대로 판단하여서 누가 더 낫고, 누구는 더 못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일꾼, 주님의 종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판단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종들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purpose)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우선 일꾼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누구냐’ 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1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첫째로, 앞서 3장 22절에서 언급한 아볼로나 게바나 자신이 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여기 “일꾼(u`phre,thj, servant)”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가장 천한 노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당시 큰 배, 전함의 맨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을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상관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권리가 전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일하는 모든 일꾼들은 그리스도의 노예, 천한 종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인되신 주님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섬기지만,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섬기지 않는 한, 사람들도 올바로 섬길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알지 못하면 주님도 올바로 섬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 모두는 다 예외 없이 주님의 노예임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에 중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불러 권면할 때에 자신이 주님께 사로잡힌 노예임을 알았기에 모든 겸손과 눈물로 여러 가지 시험을 참고 이기면서 주님을 섬겼다고 그들에게 고백하였습니다(행 20:19).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고, 놀라운 기적과 능력을 나타내고, 예언(계시)의 말씀을 받았던 ‘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주님의 노예로 알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자신을 알아주기 원했습니다. 노예는 결코 다른 노예들보다 높은 대우를, 높임을 받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또한 바울처럼 모든 겸손과 눈물로 여러 시험들을 참고 이기면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지 않으려고 하고, 높임을 받지 않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저 자신을 주님의 노예로 여겨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복음의 비밀, 구속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를 뜻합니다(엡 1:9). 더 나아가 하나님의 특별 계시인 성경 말씀 전체를 뜻합니다. 그리고 “맡은 자(oivkono,moj, steward)”의 헬라어 원어는 집안의 관리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집의 재산, 소유한 땅, 재정, 모든 식물과 짐승들, 심지어 집 주인이 소유한 노예들까지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말에 ‘청지기’로 번역하는 것이 맞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고 하였습니다.
    물론 본문 1절에서는 하나님의 비밀인 계시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담대히 전해야 하는 자인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중에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후 4:1-2)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맡은 자가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사상으로 혼잡하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주로 이단들이 하는 것이 성경 구절 하나만 가지고, 그것도 그 말씀의 문맥이나 성경 전체의 흐름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교리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성경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사상을 증명하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가 담겨 있는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만인제사장들인 우리가 바로 이 진리의 말씀을 맡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한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다양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힌 사람들이 찾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필요를 직접 채워주는 곳은 아닙니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돕는 것은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간접적인 사역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꾼, 즉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었고,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충성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충성(faithfulness, trustworthy)”이라는 단어는 신실함, 믿음직스러움을 뜻합니다. 이 세상 모든 왕이나 지도자들은 그 종들이, 신하들이, 혹은 따르는 자들이 믿을만하기 원합니다. 신실하기 원합니다. 변함없이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를 원합니다. 옛날에는 그런 자들을 충신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충신은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충성하기 원합니다. 신실한 종이기 원합니다. 믿음직스러운 일꾼이기 원합니다. 사실 노예, 종, 청지기들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단어가 신실함, 충성됨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노예도 아니고 청지기도 아닙니다. 단어의 정의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우리 주인되시는 예수님께서 종된 우리에게 충성하라고 교훈하신 말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한 예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달란트 비유입니다(마 25장). 그 전 문맥에서도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마 24:43-50). 그리고 나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해 주시는데 신랑 예수님을 맞는 신부들 가운데 깨어 기름을 준비한 신부들과 그렇지 못한 신부들 이야기를 하시고(마 25:1-13) 난 후, 달란트 비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달라트를 맡기시는 것도, 나중에 판단하시는 것도 다 주인의 권한입니다. 재능에 따라 세 사람에게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은 지혜롭고 충성스럽게 일을 하여 각각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일을 하지 아니하고 그냥 땅에 묻혀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에게 나중에 꾸중을 들었습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뿌리지도)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 . .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5:26,30)고 말입니다. 충성스럽게 일하지 않은 종을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셨으며, 전혀 무익하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연하지요. 그러나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은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 23)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얼만큼 맡았는 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양에 관계없이, 크고 작던 간에 충성했기 때문에 칭찬을 듣고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말씀과 성령과 은사(선물)들을 가지고 우리는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신실하고도 믿음직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어서 3절 이하에 자신도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일꾼들은 다른 사람에게 판단 받는 것에 대하여 신경 쓰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판단을 하실까’에 신경을 쓰라고 합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3-4절)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누가 자신의 일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사소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이 자신의 일에 대하여 평가를 내리고 반성해보고 고칠 것은 고치면서 더 나은 결과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자신의 삶과 일에 대한 평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여기 “판단하다(avnakri,nw, judge)”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심판하다, 조사하다, 의문을 가져본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담대하게 말하기를 자신은 양심껏 일해 왔기 때문에 스스로도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한 일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판단은 오직 주님께서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도 판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판단하여 비난할 때에 마음 아파할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사람이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 잘했다 칭찬할 때에도 크게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에게 판단을 받아야 하고, 주님에게만 영광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초점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칭찬들을 만한지 아는 것은 어떤 사람이 그렇게 판단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다고 인정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기를 신경 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판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5절 하반절에서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게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앞에 문맥의내용입니다(고전 3:10-15).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는데 문제는 무엇으로 세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재료로 짓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불 시련에 견디는 든든한 재료냐 아니면, 다 타버릴 재료로 짓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선적으로, 외식적으로 했던 일들은 다 드러나고 말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쌓았는지, 아니면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쌓았는지 다 드러날 때가 옵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하나님만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속내, 속 사람의 마음의 뜻 혹은 동기로 판단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고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의 깊은 동기와 야망 같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판단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다 알고 계십니다. 어떤 말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할 때 왜 하는지를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일을 맡은 청지기로서 일을 할 때에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가 옵니다. 그 마음의 뜻을 보시고 칭찬해 주신다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순수하게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했다면(고전 10:31) 반드시 칭찬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잘 했다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칭찬을 들을 날이 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다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주님의 종들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사로잡힌 노예들이 맞습니까? 하나님의 집의 일을 맡은 청지기들입니까? 진리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아갑니까?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일을 하고 있습니까?
가장 먼저 여러분 자신이 누군가 하는 정체성을 늘 잊지 않고 살기를 바랍니다. 만약 잘 알고 계신다면 주님께 충성하셔야 합니다. 신실한 일꾼, 믿음직스러운 청지기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판단, 심지어 내 자신의 판단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시는 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속 마음의 뜻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의 일을 감당하시는 동기를 보고 알고 계십니다. 정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주님 사랑으로 모든 겸손과 눈물로 여러 시험을 참아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칭찬을 받을 날이 옵니다.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영광스러운 칭찬을 만왕의 왕께 들을 날이 곧 옵니다. 그 날을 사모하면서 오늘도, 내일도 충성스럽게 모든 일들을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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