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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4-01-04 (목) 11:17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78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빌 1:19-21)
2024년을 시작했습니다. 올 한해 우리 앞에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우리는 안심하고 여전히 주 안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하고 산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최악의 경우를 미리 생각하며 스스로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미리 염려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미리 생각하며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다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 1장 12-18절 살펴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연금된 상태에서 핍박이 심해져서 수비대 안의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13절). 그럼에도 그 안에서 몇명을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2절). 그리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기뻐합니다(18절). 하지만 그도 인간인지라 분명히 죽음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불안한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바울이 기뻐할 수 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고로”(19절) 하였습니다. 우선은 자신을 위하여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기도해주는 것이 힘이 된다고 합니다. 바로 중보기도의 힘입니다. 누군가 기도해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가 우리를 불안해하게 하고 염려하게 할 때 진솔하게 마음을 토하는 기도를 해야 하고,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가 감옥에 있든, 이제 곧 사형을 당하여 죽게 되든 자신의 마지막을 주님이 붙들어 주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비참하게 끝나지 않도록 주님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6). 그 후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제자들은 모두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는 자살을 하고, 베드로는 살아 남았습니다. 변화를 받았습니다. 무엇이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놓았습니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난 후 양심의 소리만 듣고 큰 죄책감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음성이 생각났습니다. 비록 그도 배신하였지만,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네 영혼을 밀 까부르듯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32), 그리고 이어서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 22:34)는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것이 생각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렵고 힘들 때, 유혹이 다가올 때 우리도 약속의 말씀이 기억나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 아시고 계시니, 결코 나를 어려움 중에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는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감옥에서 죽음도 각오했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죽을 수도 있음을 담대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20절) 하였습니다. 만약 바울이 감옥 안에서 꼭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더라면 그는 불안과 염려를 떨쳐 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 안에서 살아도 되고, 죽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되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내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꼭 응답해 주셔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믿음은 주인과 종의 위치가 바뀐 것입니다. 내가 삶의 주인이며, 하나님이 종처럼 내 요구대로 해줘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가 되심을 인정한다면 모든 결정권은 하나님에게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생각해보세요. 자신이 왕이 된 후에 왕궁에서 편하게 지내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천막 안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아파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아들 솔로몬이 감당했습니다. 또 한번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간음하여 아이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아이를 데려가시려고 합니다. 그 때 다윗은 목숨을 걸고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며 골방에서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죽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이 이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까봐 그 소식을 알리기를 주저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담담히 금식을 멈추고, 얼굴을 씻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진정한 종의 자세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내 원하는 대로 응답해 주셔야 한다고 떼를 써서는 안됩니다. 기도하고 나서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NO 도 응답입니다. 하나님이 주권자이십니다. 항상 기도 후에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준 기도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현재입니다. 죽을 때까지 얼마나 부끄럽지 않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20절상) 라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는”(20절하)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한 순간의 생각에 따라 비겁해질 수도, 아주 비참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부끄러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싶은 욕망에게 지는 것입니다. 내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주기철 목사님 기억하시나요? 신사참배 거부하여 일본 경찰에게 붙들려 가게 되었을 때 사모님이 ‘살아서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믿음의 이야기입니다. 사실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가족인데, 나중에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차마 죽을 수 없을텐데 가장 가까운 아내가 죽어도 괜찮으니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하니 엄청난 용기를 주기철 목사님에게 부어준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살 때 가족들이 고통을 당할 것을 알고 주저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우리 걱정하지 말고 끝까지 사명을 다하라고 용기를 불어넣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느냐 죽느냐는 하나님 소관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늘 그리고 내일을 어떻게, 어떤 자세로 사느냐’ 인데, 바로 자신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존귀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면서 그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전과 같이 지금도 담대히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Slide 6] 그래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21절)고 고백합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아주 간단히 되어 있습니다. “내가 사는 것, 그리스도, 죽는 것, 유익”! 즉 1) 바울이 사는 목적은 그리스도를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고 한 것처럼, 그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었기에, 만약 죽게 되면 죽음을 통해서도 주님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다 주님의 은혜이기에, 만약 죽는다 하더라도 주님의 뜻이며, 죽음을 통하여 유익을 끼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함은 삶의 중심이 주님이 있는 것이며, 우리 인생의 운전을 주님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 인생의 운전대를 주님에게 맡기고 따라왔던 것입니다. 선하신 주님이 자신의 인생을 나쁘게 인도할 것은 아니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심지어 죽는다 하더라도 큰 유익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산 이후로 주님은 늘 신실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에게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고 사는 자를 절대로 부끄럽게 하지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데도 주시지 않는 것은 더 좋은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능하신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새해 첫날 일본 해안에서 강한 지진이 일어나 쓰나미와 함께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산더미 같은 해일이 덮치고, 엄청난 회리 바람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런 쓰나미가 몰려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힘을 다해 무엇인가를 잡는다고 해서 살아남을까요? 아니지요. 쓰나미에도 무너지지 않을 든든한 기둥 같은 데에 온 몸을 잡아매야 할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가끔 우리 마음에 밀어닥치는 불안의 파도는 이런 쓰나미와도 같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아무리 정신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결코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보다, 아니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강한 주님에게 자신을 붙잡아 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중심에 있다면, 주님께서 그 어떤 불안과 염려를, 우리의 미래를 잠잠하게 하실 것입니다. 죽음의 문턱에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산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사느냐, 언제 죽느냐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우리의 영혼과 몸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섬기며, 그의 구원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느냐는 데에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부끄럽지 않게 산다면 주님이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고 돌보실 것입니다. 확실히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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