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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10-01 (일) 07:3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287    
재림의 약속 (계 1:7-8)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주어진 그 시간만큼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대로 덜 하지도, 더 하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이 땅에서의 우리 삶에 대한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 땅의 남은 ‘사람들’에게 받는 평가라면 정확하지도 않고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에게 받는 평가라면 엄청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을 내리시고 영원한 벌을 주시는가 하면,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히 살게 해 주시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내려집니다. 주님의 일을 방해한 사람들, 하나님 자녀를 업신여긴 자들, 믿지 않는 모든 권력자들 등 불신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어진 시간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믿는 자답게 살았다면 칭찬과 함께 분명한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언제? 이 세상 종말이 오는 날, 즉 우리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말입니다.

오늘 본문 7절에 우리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주님 다시 오실 때에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성경에 나타난 구름을 타고 온다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단 7:13상) 라고 재림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구약에서는 대부분 메시아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많지만, 가끔 이렇게 재림에 대한 예언도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께서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직접 통치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Slide 1-1]
물론 지금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다스리십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는 주님 재림하고 나서 임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 안에 내주하고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즉,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주님의 몸된 교회는 머리 되신 주님께서 직접 다스리십니다. 그 백성들을 세우시며, 사용하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 하반절을 보면,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 멘” 하였습니다. [Slide 1-2]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당시에 살아있는 자들만 아니라, 모든 죽은 자들도 다 살아나서 보게 됩니다. 이 지구 상에 존재했던 모든 자들이 다 볼 수 있게 오십니다. 그래서 각인(everyone)의 눈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던 사람들, 창으로 찌른 사람들도 다 봅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찌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핍박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못 살게 굴던 모든 사람들 다 포함합니다. 주님을 찌른 것과 같은 동일한 짓을 한 사람들 모두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주님 앞에 각자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 이 세상에서 평생 악한 일을 하고 살았어도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어떻게 저런 악한 사람들은 끝까지 편안하게 잘 살까?
그러나 부러워하지도, 불평하지도 마십시오. 그들도 다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있습니다. 반드시 심판의 날이 다가옵니다. 물론 누가 악한 자인지, 선한 자인지 분명하게 판단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들을 정죄하고 판단할 자격은 없습니다. 겉은 그렇게 보여도 속이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재림의 날을 소망하며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너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일이고, 그 사람 시간이고, 그 사람 물질입니다. 때가 되면 그 사람도 주님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Slide 1-3] 그런데 주님 재림하실 때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믿지 않던 온 세상이 통곡을 한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해, 주님을 믿지 못한 것에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불 심판 속에 애통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우리 믿는 사람들을 원망할른지 모르겠습니다. 왜 좀 더 간곡히 전도하지 않았느냐고 말입니다.

8절에서는 하나님 스스로 자신이 어떤 분인지 계시하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은, 재림의 약속은 성취될 것을 강조합니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4절에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라고 이미 하신 말씀을 반복하시면서, 거기에 자신이 전능한 자(Almighty God) 임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알파(A)’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이며, ‘오메가(W)’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Slide 2-1] 즉 하나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앞으로도 영원히 자존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피조물은 다 유한합니다. 그 시작이 있고, 끝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탄도 끝이 있습니다. 로마황제도, 왕들도 세움을 입은 때가 있는가 하면 내려올 때가, 그 생명이 끝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아니 해와 달, 이 지구를 창조하신,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무한하시며, 영원 무궁히 존재하십니다.
[Slide 2-2] 그런데 장차 올 자,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표현하면서,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주님이 ‘전능한 자(Almighty God)’ 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모두 10번이 나오는데, 계시록에서만 9번이 나오고, 다른 한번은 내가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8)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에서는 보통 ‘만군의 주 하나님(El Shaddai)’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즉, 그의 권능을 아무도 이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약속을 신실하게 지킬 전능한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알파요 오메가라, 처음이요 나중이라, 영원히 자존하시는 분으로서 전능한 자라고 강조하실까요? 이유는 지금 초대교회 당시의 성도들에게 로마제국이 영원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 황제도 영원히 신처럼 굴 것 같습니다. 교회에 대한 핍박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도들이 로마황제가 두려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애굽의 바로 왕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듯이, 자신이 스스로 존재하며 영원하고, 전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성도들에게 강조하면서 로마황제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하신, 영원히 동일하신,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만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이겨 나가라는 것입니다.
사실 웬만한 신앙이 아니면, 대체로 신자는 모든 것이 잘되고, 편안할 때는 주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어려움이 찾아오면, 핍박이 오면 주님보다 사람을, 환경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성도들이 사람을, 환경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면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반면에 교회가, 성도들이 가장 능력을 발휘할 때가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으면 위기 가운데서도 여유를 찾을 수 있으며, 주님께서 반드시 이기게 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교회는 주님만 경외(두려워)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돈이나, 권력에 무릎을 꿇어버리면 이미 교회로서의 순수함을 잃어버린 것이며,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모습만 드러날 뿐입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만 경외(두려워)하는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언제나 신앙양심이 깨어 있어서, 양심을 거스리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외식적인, 위선적인 신앙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눈치를 보며, 그들의 반응에 따라 움직이며 그냥 대세를 쫓아 갑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은 더욱 주님만 두려워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필요합니다.그 어떤 피조물도 두려워하지 않는 성도들로 교회가 가득차야 그 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감히 사탄, 마귀가 어떻게 하지하지를 못하게 됩니다.
어찌하든지 세상의 위협과 핍박 앞에,  권세 앞에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주님께서 처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때와 나중에 다시 오실 때의 모습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의 초림은 마구간에서 비천하게 나셨습니다. 소수의 목격자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사적으로 지내셨습니다. 마지막 3년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냈습니다. 또 그렇게 드러내셨을 때 주님을 거부하고, 박해하고, 찌른 사람들이 있었으며,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으실 때 주님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군중들은 기뻐했습니다.
[Slide 1] 그러나 주님의 재림은 영광스럽게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데살전 4:16). 모든 세상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임할 것입니다. 즉 공적으로 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거부하고 박해한 사람들, 찌른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애곡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주님께서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그 때, 그 영광의 순간을 늘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그 순간에 우리도 주님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백보좌 심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계 20:11). 죄 문제를 해결했기에 벌을 받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판단을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받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충성된 종으로 살았는지,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을 행하지 않고 살았는지 주님 앞에서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순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심판대 앞에서 옳다고, 잘했다고 인정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잘못했다고 판단을 받거나 전혀 무익한 것인지 생각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주위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고, 나를 이해하지 못해도, 아니 비난하며 욕을 한다 해도 그 날에는 다 낱낱이 드러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날에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칭찬을 받게 되고, 당연히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은 이미 상을 받았기에 그 때에는 아무 상도 없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산상수훈 설교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마 6:1)고 하셨으며, 이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으니라”(마 6:16)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전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그저 주님만 바라보며 숨어 충성한 자들이 그 때에 주님께 인정을 받으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정말 힘들게 살았습니다. 핍박이 너무 심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만나면 서로 주고 받는 인사가 ‘마라나타’ 였습니다. 번역하면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라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주 어려운 삶 속에서 서로를 그렇게 격려한 것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의 고난을 이겨내고 믿음을 지킵시다. 핍박이 있어도 말씀대로 삽시다.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날을 기대하고 사는 것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그 시간에 대한 바램이 있다면, 주님을 다시 만난다는 소망이 확실하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잘 참고 인내하면서,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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