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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4-23 (일) 04:00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23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2) (요일 4:13-21)


오늘 본문은 앞 문맥인 7절부터 12절에 이어, 계속해서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더군다나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이 있어,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그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13절)고 하였습니다. 약속대로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시기에 우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다고 하면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롬 8:6). 그래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4-15)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은 이 성령의 선물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입니다. 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천사보다 더 존귀하게 되었고,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전에, 먼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14-15절)고 하였습니다. 요한을 비롯한 사도들의 눈으로 보았던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면서, 2) 누구나 그 아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게도 그 아들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것도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과 같습니다. 왜 주셨나요? 그만큼 사랑하셔서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6절상)고 8절에서 한 말씀을 또 반복합니다. 그러면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리라”(16절하)고 15절 말씀을 또 합니다. 즉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사랑 안에 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 사랑 안에 거하려고 애를 쓰게 되어 있습니다. 철이든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알고 믿는다면 늘 부모와 함께 하며, 부모에게 잘하려고 하듯이 말입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었다면 그 사랑 안에 거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모든 필요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지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온전히 신뢰합니다. 오직 주님으로만 만족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우리들은 종말이 와도,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심판 날이 다가와도 담대합니다. 하나님 사랑에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졌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17절)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그 사랑 안에 거하기에 1) 심판날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며, 2) 이 세상에서도 주님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랑으로 희생하기에 담대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들로,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담대할 수 있습니다.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실천할 때 심판날에 담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면, 자아를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심판날이 와도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감당할 것들만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주 크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아주 작은 것 밖에는 나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릇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런 작은 것들을 희생할 수 있어야 실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희생하면 하나님은 그것을 크게 만드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작은 것도 희생하지 못하는 분들은 어쩌면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니 작은 희생의 사랑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찾고, 찬송도 하고, 예배도 드리지만 어쩌면 앞으로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누구든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지 않았습니까? 뭐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주님이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할 것입니다(마 7:22-23). 얼마나 아찔할까요? 나름대로 열심히 믿고, 직분도 받고, 봉사도 했다고 생각하는데 심판대 앞에서 주님이 너를 모른다고 “내게서 떠나라”고 하시면 말입니다. 그런 분들은 죽음이 두려울 것입니다. 죽음 다음에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즉 죽음이 두려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여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많이 사랑한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다 아시고 계시며, 자기는 죽어도 자신이 뿌린 사랑은 없어지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뿌린 사랑의 씨앗이 언젠가는 열매를 맺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18절)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을 비롯하여 그 사랑을 하는 자들은 후회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선택했다면, 결국 온전히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늘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믿는다고 하지만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주님 사랑이 아니라 염려와 근심이 그 사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때로 병들게 됩니다. 우울증이 찾아오곤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집 걱정만 하는 사람은 늘 불안합니다. 두려움이 그 마음에 찾아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 두려움과 불안 자체가 형벌일 수 있습니다.
결국 믿음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믿음으로 주님 사랑 때문에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동기를 체크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결론으로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19절)고, 10절에서 한 말씀을 반복합니다.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벌레만도 못한, 보잘 것 없고, 연약하고 추한 죄인들을 위해 그 아들을 보내신 그 크신 사랑을 먼저 하셨기에, 그 사랑 받은 사람이라면 첫째는 하나님 사랑하며,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20절)!
언젠가도 말씀드렸듯이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되면 관계가 맺어집니다. 우리 주님은 인격적인 분이기에 비록 보이지는 않아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목자가 되시며, 남편이 되십니다. 그래서 그런 관계가 성립이 되면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습니까? 바로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 입니다. 눈에 보이는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한다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나만 잘 믿으면 되지 다른 사람이 뭐 중요하냐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를 세우신 이유가 주님 사랑을, 믿음을 증명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혼자서 잘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은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통하여 증명되는 것입니다. 비록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용서함으로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되어 그 사랑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겸손해집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다 나와 똑같은 죄인이기에 사랑이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합니다. 용납합니다. 그도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조건이 없듯이 우리도 조건 없이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작년 12월부터 요한일서 강해설교를 시작하게 하시고, 약 한달 전에 바로 앞 문맥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첫 설교를 했는데, 금번 춘계 부흥사경회의 주제도 ‘하나님이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제가 강사 목사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고 부흥회 3주 전에 신문광고를 위하여 부흥회 주제와 설교제목, 본문들을 달라고 했는데 사랑의 주제를 주시고, 설교해 주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아, 하나님의 뜻이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마 지휘자들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찬양대 곡들을 준비하기 위하여 미리 주었거든요. 그리고 지난 주일 부흥사경회를 마치고, 오늘 주일 설교 본문도 사랑의 계명입니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한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의 가정들과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요한은 4장 마지막 구절에서 다시 한번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21절)!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면 계명을, 명령을 따르는 것은 의무입니다. 책임입니다. 즉 사랑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입니다. 그에 대한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그 큰 선물을 받은 자라면 의무라서 하기 보다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기꺼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을 특히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억지로가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 주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수고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수고해 주십니다. 심판날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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