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2,532
오늘방문 : 5931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7-30 (일) 02: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56    
사랑을 증거하는 자 (요삼 1:1-8)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일 4:21)고 하였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증거가 있다면,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럼 어떻게 형제, 자매를 사랑하고 있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하고 있습니까?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참 사랑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18). 행함과 진실함(in truth)으로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진리 안에서 실제로 사랑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요한3서도 요한2서처럼 한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주제가 ‘진리(Truth)’ 입니다. 아마도 사도 요한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요한2서를 쓴 후에, 바로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쓴 서신이 요한3서입니다.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1절)고 시작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2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장로라고 하면서, 가이오(Gaius)에게 편지한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가이오라는 이름이 본문 외에 4번 등장합니다(행 19:29; 20:4; 롬 16:23; 고전 1:14). 그러나 당시 로마제국에 가이오라는 이름은 가장 흔한 이름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가이오인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소아시아 지역 교회들 중 한 교회의 유력한 인물(장로?)로서 사도 요한이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절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무척 사랑하는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곧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두번 반복하였으며, 또한 2절에서도 “사랑하는 자여” 라고, 그를 축복하며 위하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그를 위하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고 합니다. 초신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잘 아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러면서도 잘못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 구절을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 혹은 기복신앙을 주장하는 자들이 즐겨 사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번영신학이나 기복신앙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이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 번영한다는, 잘 살게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영광과 함께 고난을 받는다고 합니다(롬 8:17; 고후 1:7, 딤후 2:12; 행 14:22 등). 예수님의 산상수훈 팔복에서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마 5:10). 사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이 세상에서 부자로 건강하게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건강의 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 분을 즐거워하며 찬양하도록 우리를 택하시고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사 43:21; 고전 10:31; 엡 1:6).  할렐루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게 하고, 건강하게 하시고, 편안하게 살게 하신다면 정말 감사하며, 그 은혜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 사도 요한이 가이오를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은 무슨 뜻입니까?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말한 그대로 단순한 문안 인사로 사랑하는 양을 위한 목회자적 바람(desire), 소원입니다. 참된 목자라면 그의 목양을 받는 양의 영혼이, 심령이 신령한 복으로 충만하여 평안한 가운데 이 세상에서 어떤 고통도 받지 않고, 병치레 하지 않고 건강하여 하는 일마다 잘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저도 우리 가든교회 교인들이 모두 다 그렇게 되기를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의 심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가득하여 범사가 잘되며,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문안인사에 이어서 가이오를 칭찬합니다.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3-4절)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형제들이 와서 가이오에 대해 소식을 전합니다. 5절에 형제를 나그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아마도 순례하던 사도(전도자)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제국의 핍박을 피하여 순례하며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가르치는 사도(목사/교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요한에게 와서 가이오가 진리를 증거하며 산다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너무 기뻤던 것입니다. 사도에게 가장 큰 기쁨이 그의 영적 자녀들이 사도가 가르치는 진리를 깨닫고, 믿어 진리에 순종한다는,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그의 서신을 받을 자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그렇습니다. 목회자에게 가장 기쁜 것이 우리 교인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누구에게 들을 때입니다.  제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고, 돌봄을 받는 교인들이 진리대로, 들은 말씀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더 힘을 내서 목회를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똑같은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고, 늘 위하여 기도하는 데 조금도 변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불순종하며 죄를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보다 더 큰 슬픔은 없습니다. 제 자신에 대한 실망과 목회를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하나님께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얼른 ‘목회를 그만 두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말 여러분 모두는 목회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양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가이오가 보여준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그의 형제들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5절)라고 합니다. 곧 순례하는 낯선 사도들을 잘 대접한 것입니다. 그것이 신실한 일, 믿음의 일이라고 칭찬합니다. 가이오의 참된 믿음은 지나가는 낯선 사역자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곧 진리 가운데 행하는 구체적인 사랑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6절상)고 하였습니다. 그 순례 사역자들이 사도 요한의 에베소교회 앞에서 가이오의 사랑을 간증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고 하였듯이, 가이오는 본을 보인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이 대접하는 사랑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멜기세덱 제사장을 대접하였고(창 14:18), 지나가던 세 천사를 대접하였다가 아내 사라의 임신할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듣기도 하였습니다(창 18:1-8). 수넴 여인은 낯선 엘리사를 대접했다가 아들을 낳게 되는 복을 받기도 하였습니다(왕하 4:8-17).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70인 전도인을 둘씩 보내면서 그들을 기꺼이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그 집에 평안이 머물게 되지만, 박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0:1-12). 사도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대접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행 10:24-33, 48). 바울은 선교여행 중 자주장사 루디아의 대접을 받았고, 그 결과 빌립보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으며(행 16:14-15), 브리스길라과 아굴라 부부의 집에서도 대접을 받았습니다(행 18:1-3). 지난 번 제직헌신예배 때에도 살펴보았듯이,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벧전 4:8-9)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사랑의 증거가 있습니까? 교역자들이나, 성도들에게 대접을 잘 하십니까? 잘 모르는 낯선 형제, 자매들도 영접하십니까? 집을 열고 기꺼이 사랑으로 대접하십니까? 이민생활이 힘들지만,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의 형편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늘 친한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만 대접하지 마시고, 잘 모르는 분들도 초대하십시오. 사랑으로 대접하십시오. 어쩌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그들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될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용하시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런 사랑의 증거가 하나님께 합당하다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6절하-7절)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순회 교역자들이나 낯선 성도들을 대접하여 보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다는 말입니다. 이방인들, 즉 불신자들은 그들을 대접하지 않을 것이니 우리 믿는 자들이 관대하게 사랑을 베풀라는 말입니다. 믿는 자들이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주의 이름을 위하여서 입니다(7절).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곧 그의 영광을 위하는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고전 10:31; 골 3:17).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0-41)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 믿는 자들이 그렇게 사랑의 대접을 하면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즉,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것이야 말로 함께 진리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는 동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 모두는 늘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 다하여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위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 주위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가 되십시오.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을 실제로 행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하여 힘쓰는 목회자들, 교역자들을 사랑으로 대접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목회할 수 있도록 동역자들이 되십시오. 뿐만 아니라 새 교우들이나 낯선 형제, 자매들을 대접할 수 있기 바랍니다. 믿는 자라면 나그네조차 사랑으로 영접하시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하셨습니다. 물론 상을 받기 위해서 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당연히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눅 17:10)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자로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영혼이 더욱 신령한 복을 받아, 범사에 하는 일이 형통하며, 건강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37 내가 밟는 땅(여호수아 18: 11-20) 관리자 2023-09-25 317
1336 주일설교 삼위의 하나님을 찬양 (계 1:4-6) 한태일 목사 2023-09-10 406
1335 수요설교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 (벧후 3:14-18) 한태일 목사 2023-09-07 454
1334 특별설교 기쁨의 본질 (눅 10:17-20) 관리자 2023-09-06 215
1333 주일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계 1:1-3) 한태일 목사 2023-08-27 312
1332 주일설교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책임 (유 1:17-25) 한태일 목사 2023-08-20 303
1331 수요설교 주님 재림하시는 날 (벧후 3:8-13) 한태일 목사 2023-08-17 297
1330 주일설교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 1:1-16) 한태일 목사 2023-08-13 312
1329 주일설교 선한 것을 본받으라 (요삼 1:9-15) 한태일 목사 2023-08-06 382
1328 수요설교 재림을 믿지 못해 조롱하는 자들 (벧후 3:1-7) 한태일 목사 2023-08-04 379
1327 주일설교 사랑을 증거하는 자 (요삼 1:1-8) 한태일 목사 2023-07-30 356
1326 주일설교 진리를 지키라 (요이 1:7-13) 한태일 목사 2023-07-23 410
1325 수요설교 영의 직분이기에 (딤전 4:7-11) 한태일 목사 2023-07-20 307
1324 주일설교 진리에 행하는 자 (요이 1:1-6) 한태일 목사 2023-07-16 350
1323 주일설교 우리가 확신해야 하는 것들 (요일 5:13-21) 한태일 목사 2023-07-02 248
1322 수요설교 그래도 우리는 진리대로 살자 (벧후 2:12-22) 한태일 목사 2023-06-29 237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