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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7-20 (목) 06:00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307    
영의 직분이기에 (딤전 4:7-11)
사도 바울은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을 인하여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고후 3:6-8)고 하였습니다. “의문(letter)”이라 함은 문자, 즉 모세 언약의 율법을 말하며, 옛 언약과 달리 새 언약은 교인들의 심령에 새겨지는 것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렘 31:33).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 곧 율법은 사람의 죄를 지적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복음은 성령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라는 했습니다. ‘의문’은 어느 정도 사람이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을 살려내지는 못한다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타락해버린,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음, 성령의 역사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능력은 성령께서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율법의 옛 언약보다 성령의 새 언약이 더 낫고, 더 큰 영광인 것이 당연합니다. 즉 의문의 직분보다 신약교회에서의 영(Spirit)의 직분이 훨씬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직분은 대단한 직분입니다.
여기 “직분(διακονία, ministry)”은 사역을 말합니다. 섬김을 말합니다. 이 단어에서 ‘집사’(deacon)이 나왔습니다. 일하는 사람, 섬기는 사람을 집사라 합니다. 그러므로 제직은 영의 직분이기에 아주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ministry)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고 하신 것처럼, 이 직분을 주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라고 주셨습니다.
그런데, 영의 직분자로서 모든 섬김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교회의 영원한 표어를 기억하십니까?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1절 하반절에도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하였습니다. 이제 살펴보겠지만, 직분을 맡아 섬길 때에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해야 할 이유가 바로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영광의 직분을 받은 자로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먼저 몸을 성결하게 해야 했습니다. “또 여호와께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로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출 19:22)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들을 치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입는 옷도, 에봇으로 성결하게 하였습니다. 신약의 제사장들인 우리에게 적용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영의 직분을 감당할 때마다 구별된, 경건한 마음과 몸으로, 깨끗한 영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정결해야 합니다. 무엇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니라”(딤전 4:5)고 한 것처럼, 말씀과 기도로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7절)고 하였습니다. 그 때보다 지금은 더 악한 세상입니다. 그러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은 두려워 떨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고, 중심을 똑바로 잡고, 주어진 상황을 잘 판단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환상이나 몽상 가운데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올바로 성숙하게 드리는 기도입니다.
   또한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 말은 부주의한 기도가 아니라 주의 깊게 온 정성을 기울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자신을 절제하여 드리는 기도를 말합니다. 게으르게 다른 데 시간을 다 써놓고 그저 자투리 시간 날 때, 생각날 때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시간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온 마음을 다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표현되어 있지 않으나 원어인 헬라어에는 기도가 복수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자주자주 기도해야 함을 뜻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떠합니까? 얼마나 기도합니까?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자주 말씀을 붙들고 기도합니까?
기도할 때 무엇을 가장 먼저 기도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하여, 형제 자매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의를 위하여, 즉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거룩한 행실, 경건한 삶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 답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이 모든 것’은 마태복음 6장의 문맥에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의미합니다. 의식주를 말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 거할 곳을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의 직분자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 둘째는, 열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8절)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살펴보는 요한서신서에서도 강조하듯이, 아니 성경 전체가 우리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큰 계명입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자기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이유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극치를 이루고 그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사하여진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서로의 죄를, 추한 부분을 덮어주며, 용서함을 의미합니다. 즉 사랑은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흉보며 손가락질하는 것은 영의 직분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사랑은 이해하고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입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느니라"(잠 10:12)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마 6:12)에서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하는 것처럼, 또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하였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서로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열심으로(at full stretch)’라는 뜻은 ‘나 자신을 최대로 사용하여, 정말 힘 닿는 데까지’ 라는 말입니다. 적당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하여 뜨겁게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서로 대접하는 것입니다(9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당시에는 떠돌아 다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핍박에 못 이겨 이리저리 방황하며 도망 다니던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러한 성도들을 만나면 숙식을 제공하며 대접하여 사랑을 표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낯선 이가 우리 교회를 찾을 때나, 낙심되고 방황하는 성도들이나, 우리 교우들 중에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 외로운 성도들을 기꺼이 초대하여 대접하는 것이 영의 직분자의 도리입니다. 바쁜 이민 생활 가운데 어려운 일 일른지 모르나 사랑이 있으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그저 가까운 사람들이나 초대해서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이 필요한 자들을 초대해서 베푸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 되다고 하셨습니다(행 20:35).
   그런데 원망없이 하라고 하셨습니다(9절). 이 말은 말없이, 중얼중얼 거림이 없이, 불평없이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즉, 대접하되 말이 많고 불평하며 하는 것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씀입니다. 진심으로, 사랑으로 우러나서 대접하면 이런 일이 없을텐데, 어떤 의무감이나 억지로 하게 될 경우에 이렇게 되지요.
   여러분은 최근에 힘들고 어려워하는 누구를 사랑으로 대접했던가요? 말없이, 불평 없이 사랑으로 대접한 것이 언제이었나요?

셋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청지기로서 신실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중요한 단어가 “선한 청지기” 입니다. 이 말은 받은 은사가 내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의 선물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청지기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누구에게나 은사를, 특별한 은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고유한 은혜일 수도 있고 공통적인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은혜이던 간에 자기의 분량대로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의 맡겨진 것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잠시 주인께서 내게 맡겨주신 선물을 공치사(功致辭) 없이 거저 남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신실한 종으로, 청지기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 주위에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의 주인인양 행세함으로 좋지 않은 말을 듣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느니라”(잠 16:2)고 하였고, 예수님도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8)고 하셨습니다. 여기 ‘참되니’가 바로 진실하니(truthful), 신실함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영의 직분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다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정직합니다. 충성합니다. 믿음직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주인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그렇게 살도록 설득을 당한 것입니다. 이 ‘충성’ 혹은 ‘신실함’ 이란 원어에서 나온 말이 ‘설득을 당하다’ 입니다. 마음이 주님에게 항복을 당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신실하고 진실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넷째로, 영의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섬길 때 고난도 기꺼이 감당합니다. 사탄 마귀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섬기는 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고난이 있습니다(롬 8:17). 그래서 바울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1:8)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11절상)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섬길 때 말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야고보 사도는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고 하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말을 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은혜스러운 말만 한다면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습니까? 정말 우리는 말을 꺼내기 전에 한 번 생각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생각한 후에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을 절제하는 사람은 몸도, 행실도 절제합니다.
   또한 일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내 힘으로 하는 것같이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지 내가 가진 것이 있어서, 잘나서, 내가 힘이 있어서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오로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에 감사하며 봉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려면 앞서 언급하였듯이 말하기 전에, 봉사하기 전에 기도를 먼저 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를 하고 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영의 직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하여 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제직원 여러분! 교우 여러분!
시작보다 끝이 훨씬 중요합니다. 여태까지 잘 해오셨다면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잘 했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하였습니다. 한 순간에 넘어지면 그 동안 쌓은 것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음을 알고 늘 긴장해야 합니다. 깨어 경성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마라톤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영의 직분을 잘 감당하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1)    늘 말씀과 기도로 구별된, 경건한 마음과 몸으로 깨끗한 영혼을 유지하십시오.
2)    열심으로 사랑하십시오. 우선 하나님을 온 마음 다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주위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식었으면 어디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 회개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첫 사랑을 버린 에베소교회에게 지적하셨듯이 말입니다(계 2:4-5).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교회를, 형제와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3)    선한 청지기로 신실하십시오. 진실하십시오. 그래서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키십시오.
4)    고난을 기꺼이 감당하십시오. 인내하십시오. 유종의 미를 거두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이 다 보고 계시며, 상 주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눅 6:23)고 예수님 말씀하셨고, 비방과 환란 가운데서도 잘 견디는 성도들에게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히 10:35)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주님을 만나면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서도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딤전 3:11)고 하였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에게 그런 복을 주시는데, 하물며 목사, 장로, 권사, 전도사 이겠습니까? 확실히 믿고 영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기 바라며 축복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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