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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3-26 (일) 08:3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14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1) (요일 4:7-12)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북쪽 나인이란 성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왔습니다. 그 성에 사는 과부의 독자였습니다. 죽은 아들 앞에 우는 과부를 보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울지 말라 하시며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능력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졌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눅 7:11-17). 이는 예수님이 독자를 잃고 슬퍼하는 과부에 대한 주님의 사랑의 소문이 퍼져서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들이 모여든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여러분에 대한 이웃들의 소문은 어떠합니까? 우리 교회에 대한 소문은 어떠합니까?

오늘 본문은 요한일서 전체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아가페 사랑을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7-11절까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를 증명하는 것이요, 3장 10-14절에서는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Sonship)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영을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말 오늘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을 베푸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이 아가페 사랑을 그렇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성경은 하나님 밖에 할 수 없는 것 같은 아가페 사랑을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처럼 완전하게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니라”(7-8절)고 하였습니다. 이 본문의 사랑은 아가페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말은 '사랑이 곧 하나님이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고 하여 그 사랑이 꼭 아가페 사랑이 아니지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의 거룩함이 사랑을 통하여 나타남을 말합니다. 죄에 대한 그의 징계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 거룩한 아가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롬 5:5). 즉, 이 구절들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은 거듭난 성도들은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는데, 이 사랑을 하게 되면 정말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며, 이 사랑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아가페 사랑의 은혜를 입고,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사람의 현재의 모습을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원래 근본적인 하나님의 형상의 아름다운 모습을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원래의 그 모습을 회복하도록 돕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죄인들은 외모가 아무리 멋있고, 권세와 명예로 장식했다 하더라도 원래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에 비하면 너무나도 비참하고 초라합니다. 아니 그 속 사람을 드려다 보면 추악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겉 보기에 착한 것 같아도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으로 하여금 그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원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 값을 지불하게 하신 것입니다(10절하). 화목제라 함은 하나님은 거룩하셔서 죄에 대한, 인간의 범죄에 대한 심판은 필요하고, 또 한편으로 사랑이시기에 저들을 용서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희생제물이 되셨음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그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너무나도 큰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거듭난 자라고 7절에 말씀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큰 사랑을 깨달은 사람, 그 큰 사랑을 힘입어 사는 사람들이나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 큰 사랑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탐욕스럽게 옛 모습으로 이기적인 사랑을 하고 사는 것에 대하여, 이 하나님 사랑을 조금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저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는 대단히 슬픈 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성도들이야 말로 다른 사람들을 그저 동정하거나, 혹은 이용하지 않고 이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 그의 자녀가 된 자들의 특징은 인간의 가치를 아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도 그 사람 안에는 너무나 존귀한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며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으로 그 형상을 되찾아 주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로서 이 하나님 사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하기 위하여 여러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훗날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여러분들이 판단받는 것은 내가 얼마나 이 세상에서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희생했느냐는 것입니다. 아가페 사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완전한 자기 희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희생하셨습니다(9절). 왜 예수님이 그렇게 위대합니까? 주님은 가장 많이 자신을 버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지옥에 가실 수 없는 분이 지옥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천사들과 이 세상 모든 것을 그 발 아래 꿇게 하셨습니다(빌 2:10). 그러므로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주님께 칭찬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형제, 자매를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무엇을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만큼 상을 받을 것입니다. 아니 백배를 받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만큼 인정받을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들은 나의 것이 아니라 전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롬 11:36). 하나님의 사랑으로 희생할 수 있는 모든 것, 즉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남에게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노력이나 건강, 물질, 힘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 이 사랑은 풍성해져서 고갈되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복되게 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귀하게 생각하고 남을 도우면, 자기 자신이 더 풍성해집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자원들은 무한대입니다. 그 분 뜻대로 구하면 모든 것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나의 희생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희생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셋째로, 이 사랑은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듯이(10절),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의 특징은 남을 먼저 사랑합니다. 먼저 손을 내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전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먼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찾아가서 말을 걸고, 무엇으로 관계가 불편해 있다면 먼저 사과하면서 용서를 구합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오늘 본문 마지막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11-12절)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너무 잘 아는 주님의 말씀,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시기 전날 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하셨습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여기서 새 계명이라는 사랑하라는 말씀은 처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처럼 하라”(레 19:18; 마 22:39) 하신 계명과 비교해 볼 때에 새 계명의 사랑에는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에서 주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하라” 하신 이 계명도 우리가 생각해 보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나 ‘나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했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구약의 계명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과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구약의 계명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표준이 됩니다.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내포된 뜻은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계명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가페 사랑이 표준이 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온전히 희생함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가페 사랑을 해야 합니다.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11절).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기에 반드시 사랑해야 합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합니다(13절).이런 아가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게되며,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하였습니다(12절). 거꾸로 우리가 서로 이런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 곳에 거하시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또 함께 교제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거하시지 않는, 그저 사람들만 모였다가 헤어지는 이름만 ‘교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옆에 있는 다른 사람 자체가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가치가 있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귀한 분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중요한 태도가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진실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아부하거나, 가난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할 때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대해주는 태도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사랑으로 대해주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무례하게 하면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한결 같은 태도로 대할 때 사람들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의 기분이나 이기적인 욕심으로 대한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아가페 사랑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무례히 행치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고 한 사랑을 말입니다. 연습하지 않으면, 훈련하지 않으면 실천이 안 되는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입었다면, 그 사랑이 우리에게 소낙비 같이 부어졌다면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바랍니다. 아무리 그 큰 사랑을 경험하였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주위에 나타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주님을 슬프게 만들 뿐입니다.
아가페 사랑을 경험하시면서 우선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이런 아가페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서로 얼마나 행복할까요? 서로에게 완전히 희생하고, 먼저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며 오래 참아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귀한 존재인가를 서로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늘 진실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믿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나 부모님들에게도 이런 아가페 사랑으로 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마음에 좀 들지 않는 말과 행동을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실망을 시키더라도 말입니다. 정말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대해 보십시오. 아마 그들의 마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의 피로 한 몸을 이룬 형제, 자매들에게 이런 아가페 사랑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아가페 사랑으로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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