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893,608
오늘방문 : 9967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8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8-09 (금) 00:39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820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의 복(신 30:11-20)


아마 우리나라 사람만큼 복 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밥상이나 밥그릇에조차 ‘복(福)’ 자가 있어야 하니까요. 아니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바램이 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나 복 받는 것을 싫어할 사람이 없지요. 물론 복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내려야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복이라고 하면 이 세상에서 평안하게 장수하는 것을 말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구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 거기서 좋은 것을 누리며 장수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으면, 율법의 말씀을 지키면 그 복을 허락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는 복이 그런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복에 구약에서 말하는 복을 포함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그런 복만이 복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을 뿐입니다. 아니 더 중요한 것이 영적인 복이라는 말씀입니다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 신령한 복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평안과 장수의 복을 허락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복이 하나님 백성들 가까이에 있다고 합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11절)고 하십니다. 즉 16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고 다시 말씀하고 있지만, 이 말씀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 “먼 것”이라는 단어는 거리상으로 먼 것(신 13:7)과 시간적으로 오랜 것(왕하 19:25), 그리고 전혀 친하지 않은 것(시 22:1)을 말할 때 사용하였습니다. 어쩌면 11절에서는 이 세 의미를 다 포함하면서도 거리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12-13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지키는 것이 어렵지도 않고, 멀지도 않다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을 듣고 지키며 살기에 불가능한 말씀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14절)고 하였습니다.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늘 외우고 살았으며, 손목에 그리고 미간에 붙이고 살았습니다. 그러니 그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다면 얼마든지 행하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너무 흔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냥 그대로 마음으로 믿고 행하며 살아가면 되기에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이 복을 놓쳐 버렸을까요? 어쩌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만 외우고 붙들고 사는 것이 너무 따분하고 시시하게 보였는지도 모릅니다. 세상 학문이나 지식은 많이 알면 알수록 똑똑하다고 인정받으며 유명해지는데,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며 마음에 둔다고 해서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유명해지는 것도 아니고 단지 죄 짓지 않고 평범하게 살 뿐인 것으로 생각했다고 여겨집니다. 세상은 날로 변해가는데, 고리타분하게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있으니 너무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아무 유익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바보들이나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말씀을 버렸습니다.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교인들 가운데서도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조금 세상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면 얼마든지 이 세상에서 출세하고 유명해져서 성공할 수 있는데 왜 ‘바보’ 같이 고리타분한 하나님 말씀만 붙잡고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신비스럽게도 하나님의 복은 소위 ‘바보’ 같은 그런 사람들이 받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게 변함없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붙들며, 그 명령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복을 허락하십니다. 할렐루야!

   이어서 15절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이 세상의 생사화복은 우리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가 달려있지요. 그런데 이것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16-19절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우리의 미래에는 사는 것, 죽는 것, 화를 당하는 것, 복 받는 것이 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것은 그냥 막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받고 복을 누리며 살든지, 아니면 화를 당하고 망하든지 죽든지 하는 것입니다.
   물론 믿는 우리들에게는 미래에 사망이 없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복을 받느냐 아니면 화를 당하여 망하느냐가 결정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화나 복은 우리 편에서 생각할 때에 화나 복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화나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잘못 판단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복인 것 같은데, 하나님 편에서는 화인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어 순종하고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유혹은 누구나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사탄, 마귀의 거짓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주면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을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상의 미래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지만,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고, 우리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바로 알고 믿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우선 큰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고, 우리는 이 말씀 때문에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신앙을 그 무엇과도 바꾸면 안됩니다. 이 세상이 우리 눈에 보기에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 해도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철저하게 언약의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심히 연약해서 다른 사람이 때리면 맞을 수 밖에 없고,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자꾸 넓은 길로 가는 것을 막을 힘이 없습니다. 주제 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선택하라고 합니다.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19절하-20절)고 하였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억지로 명령에 순종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선택을 그들이 하도록 자유 의지를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스리시며, 섭리 안에 있지만 우리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망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어느 목사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면서도 불순종하는 것을 영적 지뢰를 밟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심령이 산산조각이 나든지, 큰 부상을 당합니다. 과일이 부패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러나 생선은 하루 만 그냥 두면 부패합니다. 그런데 믿는 자들이 부패하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영적 지뢰를 밟는 순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겠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순간 부패해 버립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 만사가 잘 됩니다. 사탄, 마귀가 돕기 때문입니다. 근데 그 길은 내리막길입니다. 신앙이 떨어지는 데에는, 하나님을 멀리 하는 데에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불순종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는 다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남은 일은 복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 복이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까이에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가까이에 있다고 하면 말입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 말씀을 가까이 하시는 분들인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가까이에 있는 신령한 복을 많이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영혼에,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늘 말씀을 듣고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그 길이 멀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다스려서 주님께 고정하면 은혜를 주셔서 얼마든지 명령을 지키며 살 수 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시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망하는 길이나 저주의 길로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 거짓에게 속지 마십시오.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고 살아 하나님의 축복의 길을 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75 수요설교 언약을 증거하는 노래와 율법책(신 31:19-30) 한태일 목사 2013-10-03 1753
574 주일설교 신앙 양심의 증거(고후1:12-14) 한태일 목사 2013-09-30 2034
573 주일설교 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 1:1-11) 한태일 목사 2013-09-23 1884
572 수요설교 말씀을 배우고 지키는 공동체(신 31:9-18) 한태일 목사 2013-09-19 1844
571 주일설교 사랑으로 행하여야 할 일들(고전 16:15-24) 한태일 목사 2013-09-16 1859
570 주일설교 능력있는 삶(고전 16:13-14) 한태일 목사 2013-09-09 2120
569 수요설교 두려워 말라(신 31:1-8) 한태일 목사 2013-09-05 1588
568 주일설교 주님의 일은 주님의 방법으로(고전 16:5-12) 한태일 목사 2013-09-02 1550
567 주일설교 성도를 위하는 연보(고전 16:1-4) 한태일 목사 2013-08-26 2139
566 주일설교 사망을 이기고(고전 15:50-58) 한태일 목사 2013-08-19 1815
565 주일설교 부활의 유익(고전 15:29-34) 한태일 목사 2013-08-12 1923
564 수요설교 가까이에 있는 하나님의 복(신 30:11-20) 한태일 목사 2013-08-09 1820
563 주일설교 부활의 완성(고전 15:20-28) 한태일 목사 2013-08-05 2117
562 주일설교 만일 육체의 부활이 없으면(고전 15:12-19) 한태일 목사 2013-07-29 2111
561 주일설교 부활의 명백한 증거들(고전 15:1-11) 한태일 목사 2013-07-22 1943
560 주일설교 방언의 은사(3) (고전 14:34-40) 한태일 목사 2013-07-18 1843
1,,,5152535455565758596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