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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3-01-28 (월) 11:16
분 류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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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809    
고난을 두려워 말라(계 2:8-11)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 소아시아 지방(터키)의 일곱 교회 가운데 어떤 책망도 받지 않고 칭찬만 듣는 교회가 둘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에베소 교회에서 35마일 북쪽에 위치한 오늘 본문의 서머나 교회입니다. 서머나는 소아시아에서 에베소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일곱 도시 가운데 유일하게 오늘날까지 Izmar 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는 도시입니다. 에게 해안에 자리잡은 상업도시로 무역이 왕성했던 서머나는 너무도 아름다웠이기에 ‘아시아의 아름다움, 아시아의 영광’ 등으로 불리우기도 했습니다. 로마제국에 아주 충성했던 도시로서 과학과 의학이 발달했었고, 많은 그리스 신전들과 원형경기장, 도서관, 야외극장 등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저자인 Homer 가 태어났던 곳입니다.
   성경에 나타나지 않기에 이 곳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졌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모릅니다만 성경학자들이 추측하기로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에베소를 지나 마게도냐로 가는 도중 서머나에 들러서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가르쳐 주듯이 서머나 교회 성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하나는 로마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기에 황제 숭배를 하지 않는 성도들이 핍박하던 일과, 권력자들과 손잡은 극성스러운 유대주의자들의 핍박이었습니다.
   하지만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신앙을 지켰기에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듣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상숭배의 강요 속에서도, 사탄의 공격 속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러하였기에 2000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그 도시는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도시 전체 인구의 1/3 가까이가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자 하며,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면 서머나 교회처럼 사방에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탄의 세력을 경계해야 합니다. 받을 고난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오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통하여 우리를 미워하는 사탄의 세력을 이길 수 있는 길을 배우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서머나 교회처럼 주님으로부터 칭찬만 듣는 교회가,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기를 원합니다.
   서머나 교회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한 이유는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약속하시는지를 분명히 알고,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우리 예수님은 영원한 창조주, 주권자이시며 죽음까지도 이기신 분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8절)라고 하십니다. 당시 서머나 교회의 사자는 사도 요한의 제자, 유명한 초대교부였던 폴리갑 감독이었던 것으로 여깁니다. 그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시기를 먼저 스스로 “처음이요 나중이요”라고 하십니다. 이미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계 1:8; 참고- 사 44:6,48:12)고 하셨고, 나중에 21장 6절에도, 22장 13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우리 주님은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신 주인으로서, 이 역사의 주권자가 되시는 영원한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으로서, 이 세상의 어떤 일도 그분의 손 아래서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결국 이 모든 것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분은 주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다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 아닙니다. 다 중간에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그 주님은 이 세상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다가 십자가 죽음을 당하셨지만 살아나신 분입니다. 사탄의 가장 큰 무기인 죽음도 그를 어떻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사탄이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도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과 궁핍과 사탄의 훼방까지도 아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9절)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지속적으로 당하는 환난을 다 아셨습니다. 당시 로마 황제 Domitian 을 숭배하지 않음으로 모든 것을 다 빼앗기며 핍박 당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마치 일제시대에 일본 황제 숭배를 거절하였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핍박을 아셨던 주님과도 같이 말입니다. 그 핍박으로 인한 궁핍함, 극한 가난도 아셨습니다. 정말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고생하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른 체하시는 주님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그런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하십니다. 마치 우리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고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처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약 2:5)라고 야고보 사도가 흩어진 디아스포라 성도들에게 한 말씀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의 풍성함은, 부요함은 현재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 은혜의 통로에 막힌 것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즉 성도들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 성도의 부요함입니다. 외적인 환경은 열악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체험이 풍성하며, 성도들 사이의 사랑이 풍성할 때 우리는 분명히 부요한 자들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또 다른 어려움은 극성스러운 유대인들의 훼방이었습니다. 신구약 성경의 여호와 하나님과는 거리가 먼,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유대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육체로만 유대인이었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기에 주님께서 실상은 선택 받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주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을 훼방하였습니다. 여기 훼방했다(blasphemy)는 말은 욕하고 비방했다는 뜻입니다. 거짓 고소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사탄의 회, 즉 마귀들의 모임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다 사탄, 마귀들의 무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주님께서 성도들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어떤 어려움도 다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몰라 주어도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변함없는 사랑의 주님이시니 위로가 됩니다. 사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자체보다도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혼란스러움 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럴 때 말씀을 붙드셔야 합니다. 말씀이 가르쳐 주는 분별력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옳으며, 사랑의 주님께서 반드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정말 믿는다면 어떤 어려움이든지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셋째로, 어떤 고난 가운데서도 두려워 말고 죽기까지 충성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10절)고 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참된 성도들에게는 어떤 모양으로든지 고난이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미 고난 가운데 살고 있는데, 주님은 그들에게 앞으로 더 큰 고난이 다가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일제시대처럼 성도들이 옥에 갇히기도 하여 시험을 받게 된다고 하십니다. 단순히 감옥에서 고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 중에 순교를 당하는 자들도 있기에 죽도록 충성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래도 겁내거나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회피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길지 않기 때문입니다. 길다면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10절에서 10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연히 문자적으로 꼭 10일이 끝나면 고난이 그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끝나는 시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10일 정도의 고난이라는 뜻입니다. 정해진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 10일을 자신을 영적으로 거룩하게 하며, 정결하게 하는 시간으로 해석하면 좋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이 있어서 허락하시는 고난으로 해석하시기 바랍니다. 욥도 고난이 끝나는 시간이 분명히 있을 줄 알고,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 가운데서도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죽기까지 충성하라, 신실하라’는 말씀입니다. 악한 사탄, 마귀들이 우리의 육체는 죽일지 몰라도 영혼은 죽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죽을지언정 하나님과는 바른 관계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시험 중에도, 시련 중에도 주님을 배신하지 말고 신실하라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내놓더라도 신앙의 정절을, 순결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마치 옛날 여자들이 자신의 정조를 지키기 위하여 은장도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여차하면 목숨을 끊을지언정 정조를 더럽히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즉, 세상과 마귀들과 타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당시 원형경기장에서 이긴 선수들이 받던 상, 면류관을 잘 보았기에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핍박이든지 참아 내고 순결을 지켜서 결국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상급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11절). 둘째 사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후 영원한 운명이 갈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맞는 죽음이 전부가 아닙니다. 죽은 후에 영생과 영벌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한 번 죽은 것이 아니라 두 번 죽습니다. 한 번은 육신의 생명이 죽는 것이요, 다른 한 번은 영혼의 죽음을, 지옥을 맞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계 20:14-15)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이 두려워 주님을 부인하면 그는 정말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진짜 신자가 아니지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마지막 11절에 에베소 교회에게 말씀주실 때와 마찬가지로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시는데 우리 모두 잘 듣기 원합니다. 올바른 믿음 때문에 이 세상이 주는 고난, 핍박은 오히려 영적인 부요함의 첩경이 됩니다. 얼마나 우리 주위의 이민 교회들이 많은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습니까? 저는 교회가 말씀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고 한다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교회가, 성도들이 참된 믿음 때문에 오는 핍박이 없기에, 적당히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봅니다. 진실로 주님을 따른다면 사탄, 마귀들과 싸워야 하는데 이 싸움을 잘 싸우며 인내하면 교회가, 성도들이 죄에 빠지는 일이 없고, 오히려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은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릴 영원에 비하면 정말 경점과도 같이 짧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참고 인내하면서 순결을 지키면, 신앙의 정절을 지키면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본문에 교회의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늘 사탄, 마귀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먼저 시험하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사를, 전도사를, 장로를, 안수집사를, 권사를, 교사를 먼저 시험합니다. 이유는 그들이 시험에 쓰러지면 그 여파가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들이 솔선수범으로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들은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잘 믿는 것 때문에 어떤 핍박이나 고난이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도 없습니까? 그러면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편안한 미국에 살고 있지만 정말 믿는 신자들은 사탄 마귀들이 잠시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난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주님께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군인은 싸워야 합니다. 적이 전쟁을 일으켜서 쳐들어 오고 있는데 싸우지 않고 도망하는 군인은 이미 군인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인한 어려움이나 좀 힘든 것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신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 어떤 핍박 가운데서도 주님께 충성하십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님께 대한 충성에는 변함이 없습니까?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그 분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우리 주님은 영원한 분입니다. 창조주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죽음까지도 이기신 분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당하는 어떤 고난도 다 아십니다. 앞으로 다가올 어떤 고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죽기까지 충성하셔야 합니다. 신실하셔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의 증거요, 주님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비록 상처가 나고, 뼈가 부러지고, 목숨을 잃어버린다 해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죽기까지 싸울 수 있는 좋은 군사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으로부터 칭찬도 받고, 면류관도 받습니다. 영생의 축복과 아울러 큰 상급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확실히 믿고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겨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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