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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11-23 (금) 00:58
분 류 수요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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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764    
참 제자가 됩시다(마 10:32-42)





제자도(discipleship)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10장 24-31절에 이어 오늘 본문까지 계속됩니다. 제자도의 특징은 첫째, 우리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며(24-25절), 둘째,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26-31절). 하나님을 더 두려워하기에, 敬畏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언젠가 모든 것이 다 드러날 날이 오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참 제자의 특징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 주님의 참 제자인가? 아니 참 제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참 제자는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합니다(32-33절).
   32-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어떤 제자가 사람들 앞에서 의지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면 곧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를 참 제자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가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기에 전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유는 주님의 구속사역이 아니고는 이 썩어져 부패하여 가는 세상에 구원이, 소망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 이후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주님을 시인하며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제자들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이야말로 가장 신실하며, 효과적인 제자 삼는 자들이었습니다.
   여기 "시인하다(oJmolovgew)"의 뜻은‘동의하다, 확인하다’로, 단지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시(identify)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마귀들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는다고 하였지만(약 2:19), 그를 참으로 시인하며 믿는 것은 전혀 아니지요. 우리도 단순히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인정(acknowledge)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세주(Savior)로, 주님(Lord)으로 영접하며 믿고 시인하지 않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고 하였고, 또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4:15)고 하였습니다. 참 제자는 어디에서든지, 누구 앞에서든지 공적(公的)으로 주님과 하나됨을 시인합니다.
   그런데, 사실 자유롭고 편안한 때 주님을 시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현재 미국 생활과 같은 좋은 환경 속에서도 주님을 시인하지 않는다면 신자가 아니지요. 제자라 할 수 없지요.
   문제는 북한처럼 신앙생활하기에 열악한 환경이나, 개인적인 환란의 시간이 닥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편안하고 모든 것이 잘 될 때에 주님의 몸인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자들이 많지만, 세상이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주고 힘들게 할 때에도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섬기겠다는 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부활을 체험하지 못하고 성령을 받지 못한 베드로는 핍박이 올 때에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에는 참 제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어떤 환란 가운데서도 주님을 시인하며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인 33절 말씀은 우리를 섬뜩하게 합니다. 이 경고는 누구든지 겉으로는, 입으로는 주님을 인정하면서도 시험이 올 때에 부인하는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아마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잠잠하든지, 증거하지 않든지 하여 별로 드러나지 않기에 친구들이나, 이웃이, 심지어 가족들 조차 의심하는 신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적어도 주일성수, 기도 생활, 십일조 생활과 같은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것이 안 된다면 정말 주님을 시인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입으로는 예수를 시인하더라도 행동으로 부인하는, 삶의 목적이나 가치가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33절 시제가 미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심판을 뜻합니다. 지금은 잘 모를 수 있어도 참 제자와 거짓 제자가 갈라질 것입니다. 아마 모든 참 목자들이 때때로 염려하는 것이 자기 양들 가운데 교회 출석도 잘 하고, 도덕적으로 살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으나 혹시라도 참 제자가 아니라 영원한 형벌을 받을 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희 교회에는 그런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참 제자는 가족들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34-37절).
   34-37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그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하였습니다. 즉 참 제자는 이 세상 모든 것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즉 모든 것을 주를 위하여 버릴 줄 아는 자란 것입니다. 자기 식구들까지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덜 사랑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대망하고 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해방을 시켜주고, 의와 평강의 영원한 나라를 세워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메시아를 평강의 왕으로 알았습니다(사 9:6).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전에 맛보지 못한 주님께서 주시는 내적 평안을 경험하였습니다. 복음은 정말 평화의 소식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죄인과의 평화를 허락하였습니다. 이 평화를 맛본 제자들이 다른 제자들과도 평화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악하고, 타락한 인간의 죄성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평화는 계속 배척을 당하고,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까지 미쳐서 때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36절). "불화하게" 한다는 것은 둘로 자른다는 뜻으로 때때로 완전히 영영토록 분리됨을 말합니다. 어떤 때는 신자들과 불신 가족 사이의 틈은 평생 화해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제자는 그 대가를 기꺼이 치릅니다.
   하지만 가끔 남편들이나 아내들이 그들의 배우자와의 틈이 두려워 예수께로 온전히 나오지 못함을 봅니다.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거슬리는 것이 두려워, 부모는 또한 자녀들에게 미움을 살까 봐 두려워 참 제자가 되지 못함을 봅니다. 물론 한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어 온 가족을 주께로 인도하는 경우가 많기에 그 두려움에 대하여 우습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한 사람이 참 제자가 되면 불신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에게 미움이 되어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 살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한 영혼이 구원을 받고, 주님의 주권 하에 삶을 맡기는 것이 너무도 큰 일이고, 중요한 것이기에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그 어떤 것이라도 치르라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라도 주님보다는 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하여 그런 고통 속에 살지만 남편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헤어지자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성경은 말합니다(고전 7:14-15). 그 성도의 평안을 위하여 갈라져도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 땅에 완전한 평화의 나라를 세우시고, 평강의 왕께서 친히 다스리시기에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허나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제자들에게 내적 평안을 주는 복음은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참 제자들은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어떤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주어지지만 이 믿음이 진실된 것이라면 주께 헌신되어 있음으로 이 세상의 어떤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내 보여집니다. 성도는 그 가족을 희생적으로 사랑합니다. 참 제자인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으며, 자식들에게 헌신되어 있습니다. 또한 제자인 자녀들은 부모들을 사랑하고 공경하며 돌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참 제자의 주께 대한 헌신은 그런 가족 관계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뜨거운 것이어서 만약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런 가족들조차 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참 제자는 그 생명까지 주께 드립니다(38-39절).
   38-39절에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너무 사랑하는 것이 종종 주께 헌신하는 데에 커다란 장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목숨을 내 놓기까지 나 자신을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로마 제국 아래 팔레스틴 지역에 살던 사람이면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는 잔혹함, 고문의 극치를 의미합니다. 아니 죽음을 뜻합니다. 아무리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는 것이라 하더라도 십자가에 비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잔인한 남편, 패역한 자식, 죽을 병, 심지어 내 집이 불에 타거나 물에 떠내려 가는 시험들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은 아닙니다. 생명을 내 놓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께 합당한 자는 자기 생명을, 목숨까지 드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생명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이 생명이 전부인 줄 알고 붙잡는다면 잃어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취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를 위하여 이 세상 잠깐 누리는 생명까지 버린다면 그는 기념비적인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순교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하여 포기할 수 있는 자가 참 제자라는 말씀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참 제자는 상급을 받습니다(40-42절).
   40-42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참 제자의 특징은 제자가 무엇을 하는 것을 말하지 않고, 그가 무엇을 받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가장 긍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눈에 보이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서는 매우 조금 밖에 경험할 수 없는, 하늘나라에서야 완전히 경험할 것이기에 지금은 믿음과 소망 안에서 누리는 즐거움, 기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거부하지만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제법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 복음을 전해준 사람들을 받아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하나님의 사자, 대사, 혹은 대리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께로 인도하는 모든 제자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도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증거를 영접하는 자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사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아들,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아버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독생자 예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한 선지자들을 상 주실 때에 그 선지자들을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영접한 이들도 그 상을 주신다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신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상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찬가지 원리를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의인의 상을 주고, 제자의 이름으로 소자(小子)에게 필요한 물 한 그릇을 주어도 그 상이 반드시 주어진다고 하십니다. 반대로 소자라도 그를 영접하지 않으면 주님께서도 그를 영접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 소자라 함은 사람의 눈에 별 볼일 없는 중요하지 않은 신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성경을 배우지 못해 잘 모르는 신자, 혹은 새 생명을 얻고 난 후 잘 넘어지는 신자, 평생 주를 위하여 수고하였지만 사람 눈에는 잘 띄지 않는 자 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요점은 주님의 이름으로 어느 신자에게든 어떤 작은 봉사를 하더라도 그것은 곧 주님께 하는 것이요 상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랑과 봉사를 모르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축복의 근원이 되면 우리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언제든 다른 성도가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다 주는 근원이 된다면 그는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작은 성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극히 작은 일을 해도 큰 자와 축복을 함께 나눈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참 제자는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한다고 하였습니다. 참 제자는 또한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들보다도 더 주님을 사랑하기에 때때로 가족들에게 미움을 당하거나 버림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목숨까지도 주님을 위하여 내 놓는다고 하였습니다. 기꺼이 고난의 십자가를 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정말 그런 제자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런 제자들에게는 반드시 상급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땅에서보다 저 하늘나라에서 큰 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별로 드러나지 않는 성도들에게까지 베푼 작은 수고, 희생으로 그들의 필요를 채워준다면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상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이던, 의인의 이름이던, 제자의 이름이던 예수 믿는 믿음 때문에 희생하는 어떤 수고도 반드시 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확실히 믿고 그대로 행하여 큰 상급을, 축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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