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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2-08-30 (목) 23:36
분 류 수요설교
ㆍ조회: 1659    
욕망을 제어하라(신 19:14-21)
지난 수요일에 19장 1-13절까지 살펴보면서 도피성이 주는 교훈에 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억울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수인지, 고의로 한 것인지 사람들의 행동의 동기, 속마음을 보시고 판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도피성의 교훈은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데 대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직접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죽게 한 죄인 중 한 사람이라는 진리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직접 다른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마음속으로는 미운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했고 또 죽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성경은 누구를 미워했다면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 3:15). 이런 엄청난 죄를 지은 우리들이 피할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입니다. 주님에게로 나아가기만 하면 용서와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마치 도피성으로 가는 길이 멀지 않고, 잘 닦여져 있어서 신속히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죄인들은 누구나, 어디에서든지 쉽게 주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도피성인 주님 안에 있는 줄 믿습니다. 이제는 이 도피성 밖으로, 주님 밖으로 나가면 안 됩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거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보호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 안에, 그 은혜 안에 지속적으로 거하기 위하여 절제해야 할 욕망의 예를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평안히 거하면서 은혜 안에 있으려면 하나는 땅의 경계표를 움직이지 말아야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14절)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되면 레위 지파를 제외하고는 각 지파 별로 땅을, 기업을 나누어 주십니다. 지파에서는 각자마다 땅을 분배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주시는 땅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이라 하더라도 감히 다른 사람의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욕심을 내서 다른 사람의 땅을 차지하여 넓히고 싶어 했습니다. 왜냐하면 땅이 넓어야 농사도 더 많이 짓고, 목축업도 크게 하여 부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해 놓은 경계표를 움직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공평하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에 남이 것을 빼앗으면서 자기 욕망을 채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어기고 때로 경계표를 움직였습니다. 어떤 때에는 강제로 움직이기도 하고(예: 왕상 21장에서 아합왕),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몰래 옮기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어떤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해서 종으로 팔려가면 오랫동안 그 종의 땅이 놀게 됩니다. 그러면 주인이 자기 것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빚 대신해서 자기가 차지해 버리는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망할 때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왜냐하면 빚으로 팔린 사람들을 아예 돌아오지 못하도록 먼 이방 나라에 팔아버리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경계표를 움직이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에게 준 분복에 감사하고 살지, 다른 사람 것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권리를 존중해주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권리도 중요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의 경계도 잘 지켜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함부로 다른 사람의 것을 넘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은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어찌하든지 자기 욕망을 따라가지 살지 않아서, 다른 사람 것을 빼앗아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급을 빼앗기지 않게 잘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말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려면 재판을 공정하게 하여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죄에 대하여 증인이 나타나면 한 사람으로는 안되고, 반드시 두 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했습니다(15절, 마 18:19-20). 이유는 사람은 얼마든지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16-20절). 이 말씀도 십계명 가운데 제 구 계명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즉 위증해서 형제를 악한 행동을 한 것으로 증언을 한 사람이 거짓말한 것이 탄로나면, 그 위증한 사람에게 그 악에 대한 벌을 받게 했습니다. 만약 재판의 결과 생명을 잃게 한 것이라면 생명을 내 놓았어야 했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벌을 받았어야 했습니다(21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21절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적용합니다. 이 말씀은 당한 사람이 복수할 때에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나 제사장, 혹은 재판관이 가해자(범죄자)가 피해자에게 공정하게 보상할 때 적용하는 것입니다. 즉 가해자가 고의로 생명을 빼앗았다면 생명을 내 놓았어야 했습니다. 눈이면 눈으로, 이면 이로, 발이면 발로 말입니다.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20절)고 하신 말씀이 의도를 잘 깨달아야 합니다.
   재판할 때에 반드시 두 세 증인이 있어야 하고, 위증한 자는 악한 자로 벌을 받게 하는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슨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도피성의 교훈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억울하게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를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증언이 실수이거나 잘못일 경우가 있기 때문에 두 세 증인을 세우도록 해서 범죄자의 죄가 확실해야만 벌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때에 예루살렘 성이 고상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성 자체가 예쁘게 잘 지어져서가 아니라, 그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 안에서는 사기를 치거나 남을 헤치거나, 차별을 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재판은 너무 간단했습니다. 왜냐하면 왕 혹은 재판장이 피고든 원고든 물어보면 사실 그대로 솔직하게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재판이 복잡해지고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증언이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짓말을 너무 쉽게 잘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진실이 드러나면 자기에게 불이익이 오니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왕이나 재판장에게 잘 보이는 것보다, 자신들의 유익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것입니다. 우리의 속 마음을 다 알고 계시는, 모든 일을 다 보고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자를 전혀 가치가 없는 자로 여깁니다. 거짓말하는 자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계속 거짓된 것과 위선이 나오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야 합니다. 물리쳐야 합니다. 만약 져서 거짓말을 했다면, 위선적인 행동을 했다면 즉각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오늘의 예루살렘은 바로 교회입니다. 세상 밖에서도 물론이지만,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거짓 증언이, 거짓말이 없어야 합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어야 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자가 없어야 합니다.
   세상과 달리 교회 안에서 모든 일이 공평하게,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더욱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욕망을 제어하여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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