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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2-12-04 (일) 07:07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38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요일 1:1-4)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의 삶의 가치는 무엇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많은 일을 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목숨, 건강, 물질, 시간 등을 의미 있게, 가치가 있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로몬이 노년에 고백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12:8) 라고 하였습니다. 죽으면 그만입니다. 아니 죽은 후에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우리들에게 권면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 12:1)고 하였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사랑을 느끼며, 그 사랑 때문에 사는 사람,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사는 사람의 인생이야 말로 의미 있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요한서신으로 불리는 요한일서부터 요한삼서까지는 사도 요한이 그의 인생 말년에 기록하였습니다. 소아시아 지역 에베소교회에서 목회하다가 핍박을 받아 밧모 섬에 유배를 당하고, 거기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난 후 에베소로 다시 돌아와 주후 95년 경부터 100년 사이에 기록한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로 불리는 요한이 당시 예수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믿지 않는 영지주의(Gnosticism) 혹은 가현설(Docetism)와 같은 이단 사상이 난무한 가운데 참된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에 기초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영혼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선하지만, 육체는 더럽고, 추하고, 악하다는 사상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성육신을 믿지 않고, 부활의 육체도 믿지 않습니다. 2000여년 전에 오신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 사람인 것 같으나 실제로 육체로 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가현설).
요즘도 그와 비슷한 사상이나 New Age Movement, 동양철학 사상을 전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사탄 마귀의 영들이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참된 진리를 붙들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요한일서 서론에서 우리에게 이 참된 진리인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거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1절)고 합니다. 물론 생명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고 하였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에게서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냥 눈으로 보는 정도가 아니라 자세히 주목하였고, 또한 부활의 예수님을 손으로도 만져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이 실제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즉 생명의 말씀이 탄생하신 바로 성탄을 말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상)는 말씀을 들었고,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마 4:4)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바로 생명의 말씀입니다. 또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새생명의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생명의 말씀이 우리에게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2절)고 하였듯이,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강림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그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어 인간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고 믿으면, 그 모든 죄를 사하시고 새로운 생명을 주십니다. 마치 에베레스트산에 오르다가 떨어져 버린 등산대원들을 구하기 위하여, 광신이 무너져 막혀버렸는데 그 안에 갇힌 광부들을 구하기 위하여 본부에서 구조대장을 보낸 것입니다. 심각한 위험에 빠져 다 죽게 되었는데 그들을 능히 구할 수 있는 구조대장이 온 것입니다. 그의 말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사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왜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까? 당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거짓 선지자나 선생들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좀 낮은 인간이라고,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있던 아들도 아니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저 추상적인 인물로서 영물 중 하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태초부터 계셨으며,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려고 분명히 인간의 몸을 입고 성탄하신 하나님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죄가 해결될 수 없고, 영원히 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3절)고 합니다. 요한이 지금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거하는 이유는 독자들과 사귐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 사귐(koinwn,a, fellowship)은 교제를 말합니다. 관계를 통한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교인들이 교회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는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Christianity)와 사람이 만든 다른 종교와의 큰 차이입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비인격적입니다. 그들이 만든 신과 인격적인 교제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과 실제적이고 인격적인 대화가,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귐이 가능합니다. 생명의 말씀과 성령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사귐입니다. 그런데 무슨 신비한 현상을 경험해야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예언의 말씀이 바로 해석이 되고, 설명이 되면 성령을 받은 새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나누는 것이 바로 진정한 사귐, 교제입니다. 우리들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니라,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는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보통 관계(사이)가 아닙니다. 아주 친밀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이런 관계 아래 우리는 사귐(만남)을 통하여 신앙공동체인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고 하였습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가 바로 생명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된다는 말이 서로 사귐으로 주 안에서 교회를 이루게 된다는 뜻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생명의 말씀으로 사귐을 통하여 우리를 빚어 가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전으로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자신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거하는 이유 또 하나를 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4절)고 합니다. 곧, 생명의 말씀은 사람을 변하게 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기 때문에 기쁨(Joy)을 가져다 줍니다. 전하는 사람이나 듣고 변화를 받는 사람이 모두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주님 사랑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신 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요 15:11)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라”(롬 14:17)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다릅니다. 우리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이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과 다릅니다. 주님 주시는 성령 안에서의 기쁨은 환경이나 상황이 열악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기에, 영생의 소망이 있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의 말씀과 만나고 사귀는 기쁨은 사탄 마귀가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성령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기에, 삼위의 하나님과 사귐으로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유명한 마르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기쁨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기쁨은 매우 깊고 심오한 것으로 전인격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러한 참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이다. 주님은 내 정신과 마음을 만족시킨다. 내 모든 갈망을 만족시킨다. 주님의 위대한 구원은 우리의 전인격을 다 포함한다. 그래서 나는 주님 안에서 온전해진다. 즉, 기쁨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 지식에 대한 영혼의 반응이다’ (Martyn Lloyd-Jones, Life in Christ: Studies in 1 John, Wheaton, IL., Crossway, 2002, 30. 필자가 의역.)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 분과 사귐이 있습니까?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오늘 우리에게 그 분에 대하여 증거해 주었습니다. 생명의 말씀인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인간의 몸, 육체를 입고 성육신, 성탄하신 분입니다. 역사적으로 태초부터, 영원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 변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듣고 체험한 사람에게 새생명을 주십니다. 성령님을 허락하십니다. 진실로 주님을 만난 분들과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관계를 맺고 인격적인 사귐, 교제를 하십니다. 비인격적인 신이 아닙니다. 생명의 말씀을 나누며, 믿는 사람들이 서로 사귀며 연결되어 교회를 이루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과 교제하게 되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그런 기쁨을 누리며 사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올바로 알고 믿으면 그런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능력 있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생명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예수님과 사귐이 없는 분이 있습니까? 지금 확실히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죄를 사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부활하셔서 사도들과 교제하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이 진리를 믿고 영원한 생명 가운데 기쁨을 누리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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