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등록 비번분실

전체방문 : 5,121,498
오늘방문 : 4897
어제방문 :
전체글등록 : 3,866
오늘글등록 : 0
전체답변글 : 2
댓글및쪽글 : 18

좌측_배너 배너 001

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23-01-08 (일) 04:2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343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요일 2:1-6)



어떤 모임이나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간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왕의 초청을 받는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 초청을 받는다는 대단한 것입니다.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전능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되는 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상속자가 됩니다(갈 3:39; 4:7).
오늘 본문은 그 놀라운 축복,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을,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느냐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올해 우리 교회 표어 “다음 세대와 함께 자라가라”(벧후 3:18) 라는 말씀을 나누면서,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우리의 2세, 3세들과 함께 자라가자고 하였습니다. 자란다는 것은 변화가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open mind 로 개혁해 나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지난 수요예배에서는 믿음이 더해갈수록, 주님의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갈수록 사랑이 더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엡 5:1-2). 구체적으로 긍휼을 베풀며, 관대하게 아량을 베풀며, 용서하는 사랑이 더해가야 합니다. 또한 희생하는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동일한 맥락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실로 사랑의 증거가 있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배우기 원합니다.

우선 사도 요한은 자신이 왜 서신을 쓰게 되었는지 설명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1절상)고 하였습니다. 마치 아비가 자녀에게 편지를 쓰듯이, 영적으로 아직 자라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쓰고 있다고 합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없기에 죄를 지을 수도 있으나 더 이상 죄의 노예는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니라서 죄를 이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모를 때에는 죄가 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죄를 이길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믿고 난 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가 무엇이고, 어떻게 죄 문제가 해결되고, 죄를 이기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이제 의의 종이 되었다. 사탄 마귀가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강조하면서,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4, 17-18)고 하였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상 죄의 종으로 살지 않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만약 연약하여 죄를 짓게 되면 우리에게는 변호인이 있습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1절하)! 여기 “대언자(Advocate, Counselor, Defense)”는 법정 용어로서 죄인을 위하여 옆에서 대신 말해주는, 변호해주는 사람입니다. 성령님을 뜻하는 ‘보혜사’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요 14:16). 우리가 죄를 지을 때 고소하며 정죄하는 자를 향하여 재판장 앞에서 자신이 그 죄를 위하여 대가를 치렀다고 변호해주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이 완전한 화목제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2절)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주 중요한 단어 “화목제물(propitiation)”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속죄제물(atonement)와 비슷하지만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속죄’는 다른 사람의 죄를 일방적으로 용서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죄값을 대신 치러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피해를, 상처를 주었을 때 복수하고 싶지만, 넓은 아량으로 긍휼히 여기면서 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서 없었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덮어주는 것이 속죄입니다. 상대방이 이 사실을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둘 사이가 꼭 좋아진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화목’이라는 것은 양쪽이 다 해당됩니다. 어느 한쪽이 죄를 지어서 서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데, 누군가 중간에 화해를 하도록 중재해서 양쪽이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게 하는 것이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중보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화목은 속죄보다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모든 죄가 덮어질 뿐만 아니라(속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사랑받는 자녀가 됩니다(화목).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중보자, 예수님에 대해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죄의 종으로 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언자(변호인), 중보자를 위해 살려고 합니다. 물론 초신자일 때에는 자꾸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으면 죄를 짓고 회개한 후 또 다시 죄를 짓고 회개해야 하는 일을 반복하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도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우유병을 빨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전거를 탈 때나 스케이트, 스키를 탈 때 처음에는 자주 넘어지지만 연습과 훈련을 거쳐서 넘어지지 않게 되듯이 말입니다. 아니 자전거로 하이킹을 하거나, 피겨 스케이팅까지 멋지게 하고, 높은 산 위에서도 아래까지 넘어지지 않고 스키를 타고 내려오게 됩니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배훈련, 찬양과 기도훈련, 전도훈련, 섬기는 훈련 등을 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게을러서는, 훈련이 없이는 자랄 수 없습니다. 변할 수 없습니다.
2절 하반절에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니라”고 한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좁은 의미로 지역적, 사회적으로 가까운 우리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도 미친다는 뜻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절상) 라고 하였듯이 말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변호인이며 화목제물 되심을 말씀하시고는 갑자기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3절)라고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 교회에 등록하여 교인이 되면, 마치 ID 만 있으면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또 “안다”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지난 주일도 그렇고, 몇 번씩 말씀드렸듯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앎이 아닌, 경험적인 앎 말입니다. 정말 주님을 아는 사람으로 사도들이 증명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을?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물론 성경 전체의 계명을 말하지만, 그 많은 계명을 다 지키는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요한일서의 문맥에서 ‘계명’은 예수님도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입니다. 성경 전체 계명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 입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입니다. 앞으로 요한일서에서 계속 말씀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사랑이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정말 ‘그리스도인’ 이며, 하나님의 ‘자녀’ 임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4절) 하였습니다. 즉 믿는다 하면서, 교인이라고 하면서 사랑이 없으면 가짜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 진리가, 복음이, 성령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직분이 목사라도, 장로, 권사, 집사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다 가짜입니다. 위선자들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행하지는 않는 자들로서 자신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마 21:28-32).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큰 아들이 입으로는 ‘가겠습니다’ 하고는 가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한 것이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에게 똑같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싫습니다’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뉘우치고, 회개하여 포도원에 일하러 갔습니다. 가는 것이 아버지가 기뻐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거부했지만, 아들로서 그러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누가 진짜 아들입니까?
사도 야고보는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약 1:22-24) 하였습니다. “도”는 계명을 말합니다. 사랑을 말합니다. 듣고 입으로 말하지만 행하지는 않습니다.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서는 금방 잊어버립니다. 진리가 속에 없어서 그렇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속사람이 변하지를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DNA가 없는 것입니다. 진짜 자녀라면 하나님의 DNA, 사랑이 있어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5절)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사랑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게 드러난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랑이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마지막 권면이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6절) 입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고 하면, 정말 하나님의 자녀이면 주님이 행하시는 대로 자신도 따라서 행한다, 사랑합니다. 마치 우리 주님이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의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고 하셨듯이 말입니다. 바로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단어의 정의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주님이 행한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가든교회 교우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 만왕의 왕께서 초청하셔서 그 부르심에 믿음으로 반응하여 이 잔치 자리에 앉아 있다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맞습니다. 보혈의 공로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이,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구원, 영생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영원히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지을 때 대신 재판장에게 변호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다시 하나님과 교제를 하게 됩니다. 사랑과 신뢰가 회복됩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인도하십니다. 기도를 들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런 복을 받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 특권에 따르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의 계명을,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 안에 진리의 씨가 떨어졌기에, 생명력이 있기에, 성령님이 역사하시기에 자연스럽게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려고 합니다. 사실 사랑을 하라고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그 큰 사랑을,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고, 먹이고, 입히고, 돌보면 우리 안의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더 은혜와 복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며 용서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하시고, 자신을 닮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십니다. ‘그래 너는 정말 내 자식이로구나!’ 인정하십니다. 아니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다 인정합니다. 칭찬합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님 앞으로 나아옵니다. 믿는 사람들은 도전을 받습니다.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을 행하고 있는가’ ‘나도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 라고 말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빛이고, 소금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 모두 올 한해 작은 사랑이라도 행하는 모습이 더해 가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305 수요설교 열매 있는 자가 되라 (벧후 1:1-11) 한태일 목사 2023-03-09 565
1304 주일설교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 (요일 3:10-18) 한태일 목사 2023-02-26 731
1303 수요설교 마귀를 대적하고 고난을 견디라 (벧전 5:8-15) 한태일 목사 2023-02-24 304
1302 주일설교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일 3:4-9) 한태일 목사 2023-02-19 556
1301 수요설교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7) 한태일 목사 2023-02-17 341
1300 주일설교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 (요일 2:28-3:3) 한태일 목사 2023-02-12 597
1299 주일설교 적그리스도와 참된 그리스도인 (요일 2:18-27) 한태일 목사 2023-01-29 415
1298 주일설교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요일 2:12-17) 한태일 목사 2023-01-22 426
1297 수요설교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 5:1-4) 한태일 목사 2023-01-19 373
1296 주일설교 빛 가운데 있다 하면 (요일 2:7-11) 한태일 목사 2023-01-15 397
1295 수요설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함이 영광이라 (벧전 4;12-19) 한태일 목사 2023-01-13 288
1294 주일설교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 (요일 2:1-6) 한태일 목사 2023-01-08 343
1293 수요설교 사랑 가운데 행하라 (엡 5:1-2) 한태일 목사 2023-01-06 294
1292 주일설교 다음 세대와 함께 자라가라 (벧후 3:18) 한태일 목사 2023-01-01 376
1291 송구영신예배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출 15:22-27) 한태일 목사 2023-01-01 369
1290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8-20) 관리자 2022-12-29 404
12345678910,,,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