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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1-07 (월) 07:52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568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요 16:16-24)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리 어려운 시련을 만나도 그 끝이 보이면, 시련이 얼마 있지 않아 끝날 것이라는 소망이 있으면 잘 참아냅니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으면, 소망이 없으면 그 시련은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입니다.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소망이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기에 시련을 겪고 있는 그의 자녀들을 위로하십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3-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란 중에 있는 자녀들에게 현재 당하는 고통은, 슬픔은 그들의 영적 성숙을 위하여 허락하는 것이며, 잠시 잠깐이지 오래 갈 것이 아니라고 위로하십니다(고후 7:6-11).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주님께서 그들을 떠난다고 하니 제자들이 근심과 슬픔에 잠겨있으나, 또 잠시 후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니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16-19절을 보면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의사소통(communication)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여 묻고 또 묻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슨 말씀이뇨”(17절하), 혹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18절하)고 하는 제자들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두 번 “조금 있으면”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사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입니다. 조금 있으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보게 된다고 16-19절에서 반복하여 강조하십니다. 제자들은 지금 전혀 모르고 있지만 불과 몇 시간 후에 예수님은 체포되셔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으시고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끔찍한 방법으로 처형을 당하게 되십니다. 비록 주님께서 이 전에 자신이 죽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을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주님께서 죽는 일이 벌어지면 제자들에게는 이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큰 근심과 슬픔에 잠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곡하고 애통하게 되며 세상은, 사탄은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20절).
하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엄청난 일이 일어나 그들이 주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님을 보내주시게 되면 그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처음의 “조금 있으면”만 생각하고 근심과 슬픔에 잠겨 있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조금 있으면”이 있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처음 ‘잠시 후’의 제일편이 아니고, 그 다음 ‘잠시 후’의 제이편인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환란을 당하여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후’ ‘잠시 잠깐’이라는 시간조차 길게 느껴질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사람의 시간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시간은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모든 것이 잠깐이라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겪는 고통의 시간이 길다 하더라도 우리 인생 전체, 일생과 비교하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리고 소망이 확실하다면 얼마든지 고통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임신한 여인이 해산하는 고통과 비유하여 말씀하였습니다(21절).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되면 받게 될 고통 때문에  근심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나면 그 아기로 인하여 기뻐하며 고통을 다 기억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물론 기분이 좋은 것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쁨과는 너무 다른 것입니다. 산모가 아기를 낳고 기분 좋아하는 것 아니지요. 아기를 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들이 무슨 기분 좋은 일을 만나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심령에 기쁨이 샘 솟는 것과는 다르지요.
즉,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깨달으면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릴 때는 인생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듭니다. 심지어 예수님 믿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이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이런 사탄, 마귀의 유혹에, 시험에 넘어가면 밑바닥에서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 신앙생활하는 이유를, 사는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면 해산을 앞둔 임신한 여인처럼 잠시 잠깐 근심하더라도 금방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미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게 쓰임 받는 존재임을 깨달을 때에 시련을 견디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왜 구원해 주시고, 자녀 삼으셨습니까? 믿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그 영광을 위하여 도구로 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일 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고난도 하나님 사역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 고난으로 인하여 더욱 성숙해 지고, 강한 주님의 군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늘 생각하고 사십시오. 고통의 정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통의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도 가운데 전혀 고난이 없는 성도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누구나 나름대로 겪는 고통이 있습니다. 내가 겪는 고통은 나에게만 크게 보일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고통을 잘 극복하는데 어떤 사람은 넘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통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렸다가 낫고 난 후의 기쁨과 아기를 낫는 해산의 기쁨은 다릅니다. 병이 낫고 난 후의 기쁨은 근심의 원인이 제거됨으로 찾아오는 기쁨입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는 기쁨은 해산할 때까지의 고통의 원인이 바로 기쁨의 원인으로 바뀌게 되어서 기쁜 것입니다.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22절)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날 때에 참으로 기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모든 비참한 것과 더러운 것과 실패한 것과 모든 악한 것들을 다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 정결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다시는 악한 마귀 권세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아직도 마귀는 굶주린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 발이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으르렁 소리는 지르고 있지만 우리에게 달려들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승리입니다. 비록 우리가 아직 죄성을 갖고 있고, 이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예수를 믿고 난 후에도 죄와 씨름하면서 고난도 받고 연단 당하기도 하지만 이는 마귀의 종이 되어서 당하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연단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성격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매를 맞아도 노예로 맞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서 더욱 자녀답게 되기 위하여 연단 받는 것입니다. 즉 어디까지나 자녀로서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훈련을 다 받고 나면 그 때는 아들로서 영원한 기업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뿐만 아니라 더 큰 축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3-24절)고 하셨습니다. 다락방 설교를 시작한지 벌써 세 번째로 동일한 말씀을 해주십니다(14:13, 15:16). 그 만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까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다고 한 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전혀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예수님께 직접 말씀을 드림으로 해결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든지, 누가 아프든지,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예수님에게 바로 말씀을 드림으로 해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아들과 같은 지위를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분이 바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노예가 주인에게 구걸하듯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해서 받게 되듯이 그렇게 당당하게 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치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기도를 기쁘게 받아 주시듯이, 우리의 기도도 기쁘게 받아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하나님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기도를 통하여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충만하게 될 수 밖에 없지요.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어떤 고통의 시간으로 근심하며 슬퍼하고 있습니까? 잠시 잠깐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말입니다. 소망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끝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보혜사 성령님께서 위로하셔서 근심과 슬픔이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사는 의미가 분명하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계신다면 말입니다. 잠시 후면 좋은 날이 옵니다. 미리 기뻐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큽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비록 옥중에 갇혀 있는 몸이지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아껴 쓰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충성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겠습니까? 인생은 짧습니다. 백 세까지 사신다 하여도 인생은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낭비하지 마시고,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 위하여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쓰임 받기 바랍니다. 잠깐 당하는 시험 때문에 그냥 무너지는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사탄 마귀와 맞서서 잘 싸우는 하나님 나라의 강한 군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환란 가운데 근심하지 말고 기뻐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무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적이 우리 앞에 있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이깁니다. 아무리 죽을 상황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삽니다. 성령님께서 도우셔서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기도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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