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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12-05 (월) 07:33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08    
주님의 기도(2) - 남은 제자들을 위하여(요 17:6-19)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에 어느 다락방에서 길게 제자들에게 교훈과 소망과 위로의 말씀을 주신 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대로 처음에는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셨습니다(1-5절). 3여 년 동안의 삶도 그러했지만, 십자가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대제사장적인 기도를 하시는데, 오늘 읽은 본문에서는 남겨두고 가는 11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크게 세 가지 내용을 기도하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남겨두고 가는 11명의 제자들이 누구며, 어떤 제자들인지 하나님 아버지께 보고를 하십니다(6-10절).

   우선 강조하고 계신 것이 저희들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6-7절).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자로 선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시며(6절), 주신 말씀들을 저희들에게 주었더니 저희들이 말씀을 믿고, 정말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을 알고 믿었다고 합니다(8절). ‘아버지의 이름’이라고 하면,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던 ‘여호와’입니다. 즉, ‘스스로 존재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른 모든 신들은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입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 자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놀라우신 성품을 말하는데, 그것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사역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믿고, 참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원래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나님의 소유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9절)!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내 것’’나의 소유’라고 말씀하십니다(사 43:1, 벧전 2:9). 이것이 얼마나 감동스러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주님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까? 자신에게 주신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애착심을 가지고 말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는, 실제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이 기도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바램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저희들을 보호해주셔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이신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여기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삼위의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저희들도 이 세상에 있을 동안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예수님의 바램입니다. 이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면 앞으로 세워질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서도 또 반복하십니다(21-22절).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됨은 우리가 획일적인 조직으로 하나로 묶여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마치 천주교회처럼 온 세계 교회를 한 조직 아래서 움직이는 그런 단체로 만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진리와 사랑으로 겸손히 이미 하나가 되었음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를 주장하여 겸손해지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3)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 전에,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하-3)고 하였습니다.
   즉 진리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바로 알아서 그 지식과 믿음에 있어서 하나가 되는 것, 하나됨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하나됨을 지키려면 똑 같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알고 믿는 진리가 동일해야 합니다. 믿는 바가 다르면 결코 하나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나 이단과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12제자들 가운데 가롯 유다가 빠진 것이 그가 멸망의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12절). 마귀의 자식과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또한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어진 말씀(시 109편)의 성취임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랑으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아무리 믿는 바가 같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진리는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교만입니다. 진리를 가지고 폭력을 휘두르며 상대방을 다치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입니다. 몸이 하나됨을 지켜가려면 각 지체가 사랑 안에서 서로 세워주어야 합니다. 사랑의 띠로 묶여져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아무데도 나 홀로 신앙생할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든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반면 진리가 없는 사랑은 위선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어리석은 것이며, 나중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진리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며, 사랑으로 하나됨을 지켜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가지길 원하셨습니다(13절). “내가 지금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됨을 지켜가면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이 기쁨은 승리의 기쁨입니다. 사탄 마귀들의 역사를 이기고 난 후에 오는 기쁨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고 난 후에 오는 기쁨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이미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주님 주시는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뜻은 우리가 항상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데살전 5:16). 할렐루야!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는 구별된 삶으로 거룩하게 되기 원하셨습니다(14-19절).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한다고 하십니다(14절). 여기 미워한다는 헬라어 원어의 뜻은 차등을 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 믿는 자들을 열등시민으로 여기며 싫어한다는 뜻입니다. 이유는 예수님은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기에, 제자들도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미워한다는 것입니다(16절). 즉 우리가 속한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살이는 잠시 나그네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갈 본향이 따로 있습니다.
   여러분께서 다 아시다시피 이 세상은 악한 곳입니다. 잠시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이 오늘도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죄악에 빠지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시기를,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5절)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죄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룩해져야 하기에 저희를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십니다(17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여기 ‘거룩하게 하다’는 말은 ‘구별하다, 혹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헌신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성도로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계속 보존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중요한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잘 가르쳐주는 기도내용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우리의 목표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의 목표는 높은 자리에 있든지 낮은 자리에 있든지, 돈을 많이 벌든지 적게 벌든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죄를 덜 짓고 사는 성화의 삶을 원하십니다. 어떻게? 진리의 말씀으로 말입니다.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19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가 있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 자신도 구별된 삶으로, 제자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감당하려고 한다는 고백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거룩해지기 원하신다면 진리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면 어떻게 됩니까? 속에 들어 있는 죄는 전부 다 토해내게 되고, 밖에 붙어있던 죄는 다 씻겨지게 되어 정결해집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죄가 싫어지게 되고,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교제와 거룩한 성도들과의 교제가 좋아지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최고로 비싼 것이 ‘깨끗한 양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정말 깨끗한 양심의 가치는 수 백만 불을 주고도 못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고로 가치가 있는 것은 죄에 물들지 않는, 하나님 앞에 떳떳한 양심입니다. 우리는 약간의 돈이나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나도 엄청난 손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양심을 속이고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임기응변으로 힘든 현실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죄로 더럽혀진 양심의 가치는 정말 쓰레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인생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 피로 우리의 더러워졌던 양심이 깨끗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 피가 아니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완전히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안팎의 죄가 다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죄 가운데 우리를 집어넣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하면 또 깨끗하게 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고 나서 그 축복을 누리게 되면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르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은 얼마든지 축복하고 상처를 치료해주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서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을 밟고 올라서야 성공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은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고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서 최고의 것을 누려야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훨씬 더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우리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사랑하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고 남겨두고 가는 제자들을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님 아버지께 그렇게 기도하면서 매달리신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계속 이대로 살아도 되겠습니까?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서 겸손히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사랑함으로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심을 지켜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바라보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깨끗한 양심의 비밀을 가진 자답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죄악이 가득찬 이 세상에서 살지만 좀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바라보시며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큰 상을 주실 것입니다. 이생에서뿐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 가서도 말입니다. 그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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