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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1-06-13 (월) 05:01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615    
부활과 생명(3) -돌을 옮겨 놓으라- (요 11:38-44)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 교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삶이 역동적이지 못하고 그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마지못해 사는 듯한 느낌 말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다면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보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 보았습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 아주 가까이 살아계심을 믿으십니까? 오늘 본문은 믿는 성도들이 그런 역동적인 삶을 사는 비결 하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썩기 시작합니다. 요즘에야 장례 절차 때문에 약품 처리를 하고 냉동시켜서 며칠 동안은 잘 썩지 않도록 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유대 땅에 사시던 당시는 냉동시설이나 약품이 발달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날씨까지 더워 사람이 죽으면 금방 시체가 부패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방 무덤에 묻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과 이 세상에서 맺었던 모든 관계가 다 끝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과 함께 민망히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신 후에 나사로의 무덤을 찾아가셔서 누이동생 마르다에게 막아놓은 돌을 옮기라고 명하십니다(38-39절). 당시 유대인들의 무덤은 굴(cave)이었습니다. 그래서 굴에 시신을 안장한 후에 돌로 막아 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죽어서 장사를 지낸 사람의 무덤을 다시 여는 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유대인들은 시신을 가까이하면 부정하게 된다는 율법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무덤을 열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상식 밖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무덤의 돌을 치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주여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39절)!
즉 ‘이미 다 끝난 일인데 무덤을 열어서 어떻게 하자는 것입니까?’라는 의미입니다. 마르다가 그렇게 말한 이유는 23절에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역시 믿지 못하는 인간의 이성적인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합니다.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웁니다. 인간적인 계산, 합리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인 생각과 감정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래야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의 믿음 없는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40절)!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네 생각과 다르더라도 그냥 따라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어느 정도 따라오다가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물러서려고 하지 말고 좀 끝까지 믿으라고 요구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 나사로가 죽을 병이 들었다고 전갈을 받았을 때에 이미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4절)고 하셨습니다. 즉 처음부터 이 문제를 예수님 자신에게 맡길 것을 요구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꾸중을 들은 마르다는 하는 수 없이 돌을 옮겨 놓습니다(41절상). 그러자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먼저 이미 드린 기도를 응답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41절하). 그리고 왜 나사로를 살리기 원하시는 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42절)!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무엇인가 분명히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분이,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세상이 믿도록 하기 위하여 지금 나사로를 살리신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다른 기적들과 다 동일한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예수님을 자신이 사명을 감당하라고 이 땅에 보내셨던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지옥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모든 권한과 능력을 가지시고 오셨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분으로 믿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는 기도를 마치자마자 열린 무덤을 향해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아마 주위에 아직도 곡하는 사람들이 많아 소란스러워서 큰 소리로 부르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43절)! 마치 그냥 잠자는 친구를 깨우듯이 그의 이름을 부르셨고, 그 음성에 죽은 자가 사망의 잠에서 깨어 다시 산 사람처럼 무덤에서 걸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 사건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의 말씀은 이미 죽은 자라도 불러서 다시 살게 하는 능력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말씀 만으로도 수많은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무덤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자의 이름을 불러 다시 살게 한다는 말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이 말씀이요, 이 말씀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 멘!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부르시니 그가 무덤에서 나옵니다. 장사 지낼 때의 모습 그대로 베로 짠 수의로 그대로 동인 채 말입니다(44절). 수족을 베로 동여 매었으니 당연히 거동이 자유스럽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얼굴도 수건에 싸였으니 앞을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풀어 놓아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어떻게 죽은 지 나흘이 지나서 부패한 냄새가 나는 사람이 다시 살아서 무덤에서 걸어 나왔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보여 주십니까? 주님의 말씀은 단지 죽은 지 나흘이 지난 사람만이 아니라 수 개월, 수 십년, 수 백년이 지난 사람들도 이름을 불러서 살려내실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불러서 살려 내십니다. 이미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영원히 다시 죽지 않는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산 것이 아닙니다. 죽기 전의 몸으로 다시 산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끝날이 오면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다시 살게 됩니다. 생명의 부활은 다시는 죽지 아니하고 죄와 슬픔을 모르는 영화로운 몸으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성령의 감동으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 15:13)고 하였습니다. 물론 심판의 부활은 믿지 않고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부활이 확실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우리는 반드시 부활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죽는 것은 모든 삶의 끝이 아니라 더 구체적이고 더 완전한 삶을 새로 시작하는 출발인 것입니다.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그런데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돌을 옮겨 놓아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을 해야 합니다. 즉 돌을 옮길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돌을 옮겨 주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이 어떤 분입니까? 얼마든지 말씀 한 마디로 돌도 움직일 수 있고, 다시 살아난 나사로가 스스로 돌도 움직이고 나오게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마르다에게 돌을 옮기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능력을 막는 돌이 무엇입니까? 이 돌이 막고 있는 이상, 돌을 옮기지 않는 이상 “나사로야 나오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는 놀라운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내려 놓아야 할 것들을 믿음으로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억지로 짊어지고 있는 모든 보따리들을 풀어 놓아야 합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나의 기쁨을 빼앗아 가는 불행했던 과거들, 지금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죄스러운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대로 과거에 이루어놓은 업적을 자랑하며 집착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막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이성적인, 합리적인 사고에만 머물러 있어서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 인간적인 생각을 믿음으로 내려 놓아야 합니다. 아니면 아직도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체면이라는 돌 때문에 능력의 말씀을 듣지 못한 분이 계시지는 않습니까? 혹은 교회에 나와서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이 열리지 않아 딴 생각만 하다가 돌아가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 세상적인 생각의 돌을 믿음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혹은 언제 좋지 않은 일이 자신에게도 닥칠 지 몰라서 늘 염려하며 사시는 분들이 계십니까? 죽을 병에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떨게 합니까? 그 돌을 빨리 옮기시기 바랍니다. 자신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사실 그게 믿음이지요. 그러면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됩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위대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 놀라운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경험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죽음 앞에서 절망해서도 안되며, 더 이상 되는대로 사는 허무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나이를 더해갈수록 더 알차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다가 깰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세력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지 않고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며, 부활 생명의 주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들어주십니다. 그런 까닭에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완전히 자유로운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할 일은 믿음으로 이 축복을 막는 돌을 옮기는 것입니다. 돌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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