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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11-09 (화) 04:0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56    
[11/7/10]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면 (요한복음 7:14-24)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깨닫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오히려 반항하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이유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 본문에서 한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000여 년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사역하실 때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믿지를 못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초막절을 맞이하여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14절). 말씀을 듣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랍비 학교도 다니지 않고, 배우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지 기이히 여겼습니다(15절). 당시 유대인들을 가르치는 랍비들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그런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어떤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자 배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어느 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사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마치 여러분이 잘 아는 사도 바울도 주님 만나기 전에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율법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는데, 그의 가르침에 무리들이 놀라와 했음을 마가는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 1:22)고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배운 적도 없는데 가르친다고 수군거리며, 어디서 배웠느냐고 묻는 그들에게 답하시기를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16절)고 말씀하십니다. 이 선언은 복음서에 자주 반복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게 가르쳐준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진리는 사람에게 배우지만 하나님의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을 풀어 가르치시며, 진리를 가르치시는 것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진리보다 가장 중요한 진리인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하는 말씀이며,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가 아닌 인간 스스로 말하는 진리라면 어떤 것일까요? 18절이 답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사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발견한 진리들도 다 하나님께서 흩어 놓으신 것으로서, 그것 가지고도 사람들은 굉장한 권위를 인정하고 영광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인정해주고, 높입니다. 물론 그 중에는 다아윈의 진화론과 같은 가짜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를 찾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만이 참되며 불의가 없다고 하십니다. 즉 인간의 인정을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를 깨달아 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17절)고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맞을까 틀릴까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죽일까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왜 자기를 그렇게 미워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전통을 무너뜨리며, 규례를 어기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참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율법을 온전하게 지키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의 율법도 온전히 지키지 못함으로 좌절하게 되는 사람들이 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거부합니까? 이유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예로 모세의 율법은 명백하게 살인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 가운데 그들의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것은 바로 살인이었습니다(19절). 그들의 모든 자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사악한 마음은 바로 자신들이 율법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정곡을 찌르는 예수님의 언급에 대하여 그들의 반응은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20절)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려 하는 이야기 같습니다.

    또 다른 한 예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안식일의 근본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례를 어기면 무조건 정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1-24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21절에서 말하는 한 가지 일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신 것이었습니다(요 5:5-18). 그것을 가지고 미워했습니다. 자기들이 정해놓고 지켜오던 관습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께서 어기심으로 반발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22-23절에 할례를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안식일에도 할례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들을 낳으면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금요일에 아들을 낳으면 할례를 지키기 위하여 그 다음 토요일인 안식일에 할례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할례도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고 합니다(22절). 즉 율법을 받은 모세가 있기 훨씬 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한 것이 할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할례와 안식일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할례가 더 중요하니까 안식일에도 행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있어야 안식일을 지키지, 이스라엘 백성도 없는데 누가 안식일을 지키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안식일 이전에 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구원을 허락하시는 능력이 있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는 무슨 안식일이 있어서 지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고, 능력인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해방, 자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정해놓은 안식일의 규례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보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피상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24절). 즉 사람의 겉모습을 가지고 좋다 나쁘다, 참이다 거짓이다 하지 말고 그 중심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는지,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지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겉모습이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상관없습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스패니쉬든, 동양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잘 생긴 사람이든 못 생긴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병든 사람이든 건강한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사람의 겉만 보고 판단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환경과 배경이 훌륭한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한 자리에서 자기 의를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변화를 받아 정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사람이 주님을 닮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누구든지 진리의 말씀을 구경만 하는 사람은, 듣고 행하려고 하지 않는 자들은 이 진리의 말씀이 가진 무궁한 가치를 알지 못하지만, 이 진리 안에서 행하며 살고자 하는 사람은 그 무궁한 가치를 알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즉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긴가 민가 따지면서 연구의 대상으로만 진리를 가진 자는 결코 진리를 깨닫지도 못하고, 그 무궁한 가치도 모르게 되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그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앉아서 생각만 하는 것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깨달은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게 하십니다.
    사탄 마귀들이 그것을 알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움직이지 않게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 생각 저 생각만 하게합니다. 그러다 보니 미움이 생기고, 좌절이 생기고, 더 나아가 낙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은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시간은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시간을 길거리에서, shopping center 에서 막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니면, TV나 컴퓨터 앞에서, 혹은 옆 사람과 수다 떨떨며 남 예기 하면서, 아니면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잠으로 낭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중한 생명과 건강을 충성의 기회로 주셨는데, 그것들을 허송세월로 다 보내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만 죄가 아니고, 나머지 십의 구조도 내 마음대로, 정욕대로 사용하는 것이 죄이듯이, 주어진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도 죄일 뿐만 아니라, 나머지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앉은 자리에서, 혹은 누운 자리에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즉각 행동으로 옮기는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려고 열심히 주어진 일을 감당합니다. 땀 흘리며 일합니다.
    물론 그렇게 일하다가 때로는 큰 장애에 부딪치기도 합니다. 큰 바윗돌 같아서 아무리 흔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찾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런 분들이 정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싸우다가 내 힘으로는 안 되는 것을 알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위하여 엎드리는 자, 이런 분이 진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정말 소중한 분들입니다.
    교회에도, 성도들에게도 두 종류의 교회가, 성도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혹은 성도와 기도하지 않는 교회 혹은 성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께 충성하지 않는 교회에는, 성도는 기도가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자기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세상과 싸우지 않는 교회, 성도들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탄 마귀들과 싸우지 않는데 무슨 기도가 필요합니까? 그래서 일하지 않는 교회는 당연히 기도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만약 기도한다 하더라도 자기 축복, 자기 정욕을 위하여 하는 기도일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자 하는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기도합니다. 부딪쳐보니 잘 안되거든요. 안되니까 자신들의 최선인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함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시면 그 말씀이 능력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러분의 삶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최선을 다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기도해야 합니다.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철저하게 모든 것을 기도로 해결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집을 지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철저하게 믿음으로 집을 짓고, 말씀으로 집을 지을 수 있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세상의 모든 허영과 욕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도록 반석 위에 집을 지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모든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충성스럽게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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