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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 태일 목사
작성일 2010-08-10 (화) 09:39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888    
[8/8/10] 은혜를 막는 것들

은혜를 막는 것들 (요한복음 5:9하-16)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고자 하시는데, 인간 편에서 막아버리는 것입니다. 부어주시는 은혜를 그대로 받으면 참 능력의 삶,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어버림으로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아니 이미 부어주신 은혜를 쏟아버리는 경우입니다.
    바로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38년이나 된 병자가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고침을 받는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받은 은혜를 계속 유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은혜를 저버리며 배신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자그마치 40년 가까이, 젊은 시절을 온통 중병으로 고생하며 누워있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그 얽매였던 것으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일이 어디에 있을까 할 것입니다. 정말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을 것처럼 살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어떻게, 받은 이 엄청난 은혜를 저버리며, 부어주시는 은혜를 막아버릴 수가 있을까 생각됩니다만, 아직도 이 사람을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은혜를 막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며,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는 케케묵은 전통입니다.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대대로 내려오던 관습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에다 사람들이 덧붙여 놓은 여러 규례들, 규정들입니다. 율법이 소중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담겨있는 말씀이지만,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다고 믿기에, 즉 자신들이 선한 일을 많이 하여 자기 의를 쌓아야 구원에 이른다고 믿었기에 비성경적인 많은 규정들을 만들어서 유대인들에게 지킬 것을 강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병을 고침 받은 날이 안식일 임을 지적하며, 잘못된 일이라고 말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꾸짖음에 아무 말도 못하고, 이 병자는 오히려 고쳐주신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합니다. “이 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9절하-11절)고 하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39가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가서는 안 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아마 원래 의도는 장사나 이사하는 것을 막으려고(참고- 렘 17:22) 그런 규정을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어떤 물건이라도 안식일에는 들고 갈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병자였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깔고 있었던 자리를 들고 간 것이 문제가 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병자가 38년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다가 자기가 깔고 있던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광경을 목격한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춤을 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님께서는 이 일로 인하여 양문 곁 베데스다 동네를 비롯한 예루살렘 전체 영적 부흥을 보기 원하셨을 것입니다. 마치 사마리아 수가성의 한 여인의 회심으로 말미암아 온 사마리아 동네 사람들이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을 보신 것처럼 말입니다. 즉 무려 40년 가까이 중병으로 누워지내던 사람이 고침을 받고 일어났다면 그보다 못한 병자들이 얼마든지 치료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 가의 사람들뿐 아니라 그 소문을 들은 온 예루살렘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들 모두 어떤 병이든지 치료를 받으며 대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막은 것이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안식일 규정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정해놓은 이 안식일이라는 것은 세상 일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면서 은혜를 받는 날이었는데, 그냥 아무 것도 못하는 날로 규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의가 드러나서 하나님께 칭찬을 듣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마 이 날 사람들이 이 병자였던 자에게 ‘당신은 왜 안식일에 이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요?’라고 단지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는 38년 동안 중병으로 이 자리에 누워 있었는데 능력의 말씀으로 치료를 받고 치워 버리려고 들고 가는 것입니다’라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에 대한 증거도 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무조건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가면 안 된다. 당신은 안식일 규정을 어겼으니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책망을 하니까, 그 사람은 나름대로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오. 나를 고친 사람 책임이요’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 위기를 모면하고자 자신을 치료해준 사람을 고자질한 것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케케묵은 전통이, 오랜 관습이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하나님의 은혜를 막고 있었습니다. 사실 율법의 정신은 죄인을 무시하며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고 도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죄와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니까 긍휼은 없고 율법 자체, 그 형식만 강조합니다. 편견과 교만으로 물들어 자신도 병자임을, 죄인임을 모르니 다른 사람만 판단하며 힘들게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이런 케케묵은 전통이나 오랜 관습,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갖고 있던 세상 사상들이나 신념과 편견으로 말미암아 그 은혜가 막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은혜의 통로에 조금이라도 이런 불순물이 끼면 은혜가 막히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도들은 오직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야 하고, 그 말씀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혹자는 신앙생활이 아무런 재미, 흥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며,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날이 안식일인 것을 왜 모르셨겠습니까?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안식일에 관하여 39가지 규례를 추가했던 내용을 모르셨겠습니까? 아시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공적인 장소에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들을 더욱 화가 나게 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다음 주일에 살펴볼 말씀에서 확실하게 가르쳐 주듯이(17-21절),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님의 권위를,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나타내 보이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오늘날의 안식일인 주일(Lord’s Day)을 말 그대로 주님의 날로 구별하여 지내야 합니다. 주일의 주인이 예수님이기에 온전히 주님을 위하여 보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율법주의자들처럼 온갖 규례를 정해놓고 지켜야 자신의 의가 드러난다고 생각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것이지만, 또한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처럼 그저 예배만 드리고 나서는 나 자신을 위하여 그 어떤 일도 해도 괜찮다고 여기며 마음대로 주일을 보내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것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지내야 합니다. 옛 청교도들이 그렇게 주일을 보냈습니다. 온 가족이 예배를 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며 보냈습니다. 오락을 금하고, 병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심방하며 보냈습니다. 물론 주일만 거룩하게 지내고, 평소에는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이중적인 삶도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함으로 주일을 사모하며 예배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참 성도들이 평소에 그렇게 세상에 빠져 자기 멋대로 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막는 또 하나는 죄의 욕망입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본문의 38년 된 병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주님께서는 상대방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병 낫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믿음을 확실하게 하고 축복해 주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병자의 경우에도 비록 그가 믿음이 없지만, 병부터 먼저 고쳐주시고 믿음을 갖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주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고 나서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다시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14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들은 병자의 반응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사람이 예수라고 한다고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15절).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기 시작합니다(16절). 즉, 그 오랜 병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았다고 한다면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았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그 동네에 가서 주님을 소개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기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라고 한 사람이 예수님이기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처벌해야 한다는 식입니다. 참으로 기가 찰 일입니다. 주님 편에서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습니까?
    38년 동안이나 중병으로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조금도 그 크신 은혜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다른 영혼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유는 죄의 욕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로 인하여 얻은 병으로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냈음에도 어리석게 또 다시 달콤한 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분들이 우리 주위에 있습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고,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유는 애초부터 믿음을 갖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의 병자도 자기를 고쳐준 주님을 유대주의자들에게 예수님을 고발함으로 핍박을 받게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욕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참 믿음을 가진 자들은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권면한 것처럼,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와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1-13)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욕망을 버리고, 의를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이유는 이미 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무 하고 싶은 것도 십자가의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고, 내가 너무 하기 싫은 것도 십자가의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비록 그렇게 살 때에 핍박이 있더라도 주님 당하신 고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오늘도 그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그러나 계속적으로 은혜를 누리고 살려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고 살려면, 은혜를 막는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은혜의 통로를 무엇인가가 방해하고 있다면 그것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율법주의적인, 형식적인 종교생활의 모습들을 버려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려고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외적인 모습보다도 내적인 모습에, 여러분의 속 사람에 관심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중심이 정말 하나님을 경외하느냐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옆에 앉은 성도님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서 주님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요일 4:20).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의 욕망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고통을 참아주시며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을 생각하며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합니다(히 12:4). 방탕한 생활을 버려야 합니다. 정욕적인 삶을 버려야 합니다. 잘 해결이 안되면 될 때까지 주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돕는 보혜사 성령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금식하면서라도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속적인 주님의 은혜로, 말씀의 능력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많은 경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신앙으로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나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나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라는 기도가 얼마나 좋은 기도인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 나는 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나이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감당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야 합니다’라고 고백하며 전적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해 놓고 나서도 ‘내가 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누워 있는 자를 살리고, 영혼을 치유하는 주님의 능력의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은혜를 막는 것을 제거하고, 계속해서 허락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며, 부흥의 불길을 일으키는 작은 불꽃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참된 부흥을 체험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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