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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태일 목사
작성일 2010-04-29 (목) 04:45
분 류 주일설교
ㆍ조회: 1925    
[4/25/10] 어떤 믿음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어떤 믿음의 반응을 보이십니까? (요 2:23-25)

‘믿음’이라고 해서 다 똑같지 않음을 봅니다. 사실 별의별 믿음이 다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을 믿는 믿음도 있고, 자연 과학을 믿는 믿음도 있고, 어떤 사람들을 믿는 믿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다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도 봅니다.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같은 믿음이 아닌 것을 봅니다. 이단을 믿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요한복음 2장을 결론 짓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떤 믿음을 갖고 있는지 질문하고 있습니다. 2장에 나오는 세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은 각각의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의 반응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을 보았으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나 제자 몇 사람 만이 그를 믿었다고 하였습니다(11절). 지난 주일 살펴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희생 제물 짐승을 팔며, 돈 바꾸는 장사꾼들을 몰아내시면서 자신의 아버지의 집을 청결하게 하시자, 종교지도자들은 도대체 예수님이 무슨 권세로 그런 일을 하는지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였을 때,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일으키겠다는 말씀에 어떻게 46년 동안 짓고 있는 성전을 3일만에 세우느냐고 화를 낼 뿐이었습니다(20절). 오늘 본문 23절에도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표적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더니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표적들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기적들을 가리킵니다(참고: 요 20:30, 21:25). 그들은 아마 예수님이 선지자 중에 하나로, 아니면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줄 메시아로 믿었을 것입니다.
즉 여기 세 사건을 통한 사람들의 믿음이 22절에서 말하는 믿음과는 차이가 있다라는 말씀입니다. 피상적(superficial)이고도, 지식적인 얕은 믿음은 진짜 믿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4절에서 예수님께서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의 우리말 번역이 그 뜻을 자세히 나타내고 있지 못한데, 헬라어 원어에 의하면 여기‘의탁지 아니하였다’는 단어와 23절에서‘믿었다’는 단어는 똑 같은 단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그들이 표적을 보고 생긴 믿음이 참 믿음이 아닌 것을 아셨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제대로, 올바로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믿지 않으셨다는 말입니다, Jesus had no faith in their faith. 그리고 자신이 어떤 분인가에 대하여 그런 사람들의 증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25절하).
비록 많은 사람이 자기를 믿는다고 하지만 그저 피상적으로, 지식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으로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들도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아십니까(약 2:19)? 마치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돌작밭이나 가시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처음에 말씀을 들을 때에는 기쁨으로 받지만(마 13:20), 심령이 변화되지 못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거나(마 13:21),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인하여 넘어져버리는 믿음과 같은 것입니다(마 13:22).
또한 성경은“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말씀에 은혜도 받고, 무슨 체험도 하고 하여 반짝 믿음이 있는 것 같이 하다가 타락하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애초부터 참 믿음이 아니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설교에서도“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하였습니다. 여기“주여(Lord)”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감히 입에 담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름“여호와”를 대체하는 호칭입니다. 즉 입으로‘주여 주여’하고 하나님을 부른다고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 구절의 문맥에서의 issue 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구원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믿고 따르던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요 8:31하) 하였습니다. 또,“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합니다. 그들이 그 동안 나름대로 주를 위하여 한 모든 일이 다 헛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라고 부르며 따랐는지는 몰라도 그들의 마음은 불법, 즉 반역이었다는 것이 불순종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에서 그런 열매가 열릴 리가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런 믿음을 성경은 산 믿음과 대조하여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약 2:17-19).
물론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라고 하여 죄 없이 완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자백하고, 주님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여 돌아서서 의를 추구하는 변화된 삶이 우리가 하나님께 속했다는, 참 믿음이 있다는 증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성도의 삶이 완전함에 있지 아니하고, 완전함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성령을 의지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나이다”(마 7:22) 하더라도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 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2-25)고 하였습니다. 즉 주님을 안다고 고백하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자는 앞서 히브리서 6장에서 살펴본 것처럼, 잠깐 주님의 사랑과 새 삶을 맛 볼지 몰라도 그런 것들이 금방 없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은“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4-6)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 1:15-16)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아무리 표적을 보았다 하더라도 피상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 참 믿음이 아닌 다른 믿음은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속 마음을 다 알기 때문입니다(25절). 이미 1장에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그런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나다나엘을 만나셨을 때 그가 정직하며 속에 간사가 없는 사람임을 아셨습니다(요 1:47).
정말 구원 받는 믿음은 피상적이거나 지식적인 믿음을 뛰어넘어 온 마음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주님으로 받아들여서, 자신의 삶의 주권자로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기에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며,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함을 아는 믿음입니다.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이 되셔야 함을 아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아드리는 삶입니다.
보처트라는 주석가는 이 본문을 해석하면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으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했음을 알고 있었다. 요한은 또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버리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버릴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으실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이 요한에게는 기정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요한복음을 읽어나갈 때, 이 내용들이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말씀은 오늘날까지 각 세대마다 벌어지는 현상이다. 살아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기에 모든 사람들의 믿음을 다 받아주시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우리들에게 경고가 되는 말씀인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경향가든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믿음의 반응을 보입니까?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험해 보십시오. 정말 주님을 구세주로 믿는다면 성령이 그 안에 내주하셔서 확신시키시며, 그 믿음의 증거들이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으로 계속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증거합니다(롬 8:14-16). 그래서 다음 주일에 살펴보겠지만 사도 요한은 이어서 3장에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참으로 거듭난 사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눈 것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겉으로는 구원 받은 것 같으나, 그 사람의 속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서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은혜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나 가정(persumtion)을 가지고 구원 받은 것으로 여깁니다. 자신이 짓는 명백한 죄에 대하여 별 죄책감 없이 하나님 은혜가 덮어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고 하였으며, 성찬식을 대할 때에도 자신을 살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1:28). 그런 시험은 우리의 속 마음과 동기,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향한 갈망이 있는지 점검하는 것을 말합니다. 심지어 가장 어리고 연약한 초신자라도 참 믿음이라면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의를 추구하려는 어떤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비록 육신이 약하여 다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입으로 신자라고 하면서 현재 짓고 있는 죄에 대하여 해결할 마음이 없다면 구원을 받았는지, 그의 과거 죄가 씻음을 받았는지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입으로 신자라 고백하면서 습관적으로, 회개치 않고 ‘죄’임을 알면서 계속 죄를 범한다면 그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3:6-10). 왜냐하면 성경은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내가 나에 대하여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고, 남이 나를 판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시면 무엇이라고 하실 것 같습니까? 혹시 입으로는 주를 고백하면서 주님의 뜻을 행하려 하지 않고 살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원을 받았는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 구원 받지 못한 것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상적인, 지식적인, 가짜 믿음이 아니라 참으로 구원 받은 믿음이라고 한다면, 그 믿음에 대한 반응은 주님의 뜻을 행하고 살려 하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을 내어 버리는 희생을 감당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너무도 크기에 내가 치러야 할 희생을, 대가를 기꺼이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치루어야 할 대가가 싫어서 감당하지 않는다면 정말 구원 받은 사람인지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열매, 행실을 보고 구원이 확실한지 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잘 구별을 못할지 몰라도 폭풍이 몰아칠 때가 옵니다. 마지막 심판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인생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약의 선지서를 살펴보면‘남은 자’라는 말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다 구원 받는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 망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가 부패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하심을 받고 참 믿음대로 살려고 한 자들이 결국 남는 자가 되어 구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적인 방법, 인간적인 방법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하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살면서, 그들의 인생에 하나님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인정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더니 구원하실 뿐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우리가 입으로‘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적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알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의 반응으로 나타나야 할 순종과 헌신이 보여야 참 믿음입니다.
결단하십시오. 참 믿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하며 추구하겠다고,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여 속이는 자가 아니라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결심하십시오. 정말 구원 받은 여러분들이라면 성령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감동을 주셔서 그렇게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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